내가 펜탁스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 사연은 매우 싱겁다.
당시 NIKON의 D70과 CANON사의 신제품 350D를 저울질하다
실물이나 구경하자며 평소 잘 가던 카메라숍을 찾은 것이
뜬금없이 펜탁스 카메라를 구입하게 된 충동의 시발이었다.
구입 후보 리스트에 이름도 없었던 펜탁스 카메라를 들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택시안에서 발견하곤
허무하고 황당한 웃음을 짓던 기억이 아직 새롭다.
생각지도 않았던 카메라의 갑작스런 구입과
평소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펜탁스 카메라의 등장은
잠시 생각할 여러가지 여지를 주었다.
왜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펜탁스 카메라를 냉큼 집었을까?
아마도 메이저급 메이커에 대한 無개성의 반발심리가 그 첫번째 이유였을 것이고,
조금 더 전문가 이미지에 가깝다는 두번째 이유는 자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카메라를 선택하는 것은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과 같다.
구멍가게에서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과 시설을 갖춘 회사의 자동차라면
달리거나 혹은 멈추는 기본기능에 대해서 만큼은
어느 회사 자동차던 어느 기종이던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자동차가 가지는 고유의 개성이 있어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반응이 곧 구매로 연결되는 것이다.
동급의 자동차가 승차감이 차이 난다고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으며,
내구성의 차이가 얼마나 크게 나겠냐는 것이다.
자동차 생산업체는 메이저급 회사가 있고 마이너급 회사도 있다.
이 또한 생산대수와 마케팅 전략에 의한 판매대수에 의한 구분이지
실제 자동차 성능의 기술력이나 모그룹의 규모로 따지면
메이저, 마이너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여기에 각 메이커별로 많은 차종이 있어
그 등급에 따라 가격도 달라지고 성능도 달라진다.
높은 등급은 비싸고 성능이 좋음은 당연한 일이다.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본 기능은 동급의 기종이라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좋은 기종은 비싸고 당연히 좋은 결과물을 만든다.
따라서 동급의 카메라를 놓고 저울질 할 때는 별 차이없는,
카메라가 가진 기능의 우수성보다 마음속에 담긴 메이커와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구입한 기종에 대해서는 동급의 다른 기종에 비해
우수함을 자신에게 주입하며 더 큰 애착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애정을 가졌던 메이커와 카메라의 수명이 다했을 시점에 이르러
다른 메이커의 카메라를 구입하는 것도
타 회사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카메라를 구입하고자 하는 지인들에게
카메라의 선택을 자동차 구입의 예를 들어 설명하곤 한다.
* * *
그래서 펜탁스 카메라를 샀다.
어떨결에 샀던 충동구매로 샀던 아무튼 이제 내 손안에 든 내 카메라다.
나름대로 펜탁스 카메라만의 좋은 이미지와 개성을 정립하고
타 기종과의 차별을 줘야 할 타이밍이 되었는데
동급 기종에서 딱히 큰 차별을 둘 만한 것은 없다.
그럴 때쯤 같은 기종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에 기웃거리게 되고
이런저런 정보를 찾다가 마음에 쏙 들어오는 핵심 문구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펜탁스는 감성의 카메라다."
마치 광고문구 같은 이 문장에 같은 기종을 사용하는 유저들은
문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좋은 느낌으로 동의했을 것이고
특히 아마도 나와 같은 이유로 펜탁스 카메라를 구입한 사람들에게는
무릎을 부서져라 손바닥으로 내려치며 환호했을 것이다.
왜? 도급의 다기종과 차별화하고 내가 가진 기종의 고유한 색깔을 찾았으니까.
자, 그럼 이 문장의 현실성을 따져봐야 겠다.
펜탁스 카메라와 관련된 많은 사이트에서 이 내용의 문장은 발견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무엇이 감성의 카메라인지,
무엇 때문에 감성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해석은 부족하고 궁색했다.
대부분 이 말을 이용하는 유저들의 해석은
'결과물의 느낌이 좋으니까....'라는 애매한 이유였다.
물론 결과물의 느낌은 참 좋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 오는 것을
아마도 유저들은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한다.
그러나 그렇게 애매한 표현은 타 기종에 적용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니콘은 이성의 카메라고 캐논은 감정의 카메라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펜탁스와 감성이라는,
상이한 두 단어를 두고 그 원인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내 느낌에도 펜탁스 카메라는 감성이란 단어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데
그렇다면 그 이유가 있는건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느껴졌다.
이것이 논리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펜탁스는 감성의 카메라'라는 말이
타 기종에 비해 뭔가 부족한 기술적인 부분을
감성이란 부분을 건드려 얼렁뚱땅 무마하려는 억지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 * *
펜탁스 카메라를 손에 들고 나서부터
구매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이고 표면적인 이유는 큰 뷰파인더였다.
이렇게 큰 뷰파인더를 보다 타 기종의 동급 카메라를 보자면
그 답답함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뷰파인더가 크다고 해서 사진이 가지는 해상력이나 색상 표현력 등
결과물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차이가 전혀 없는 걸까? 그건 아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다는 것, 그것은 파인더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고
그렇게 보여진 세상을 나만의 감성으로 표현한 것이 사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에 시원한 뷰파인더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카메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지만 나는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느낀다.
그나마 펜탁스가 타 기종에 비해 자랑하는 기술적 부분인 펜타프리즘 방식,
이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감성에 큰 영향을 준다.
또 하나 사소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셔터음이다.
이것 역시 넓은 뷰파인더 만큼 사진에 감성을 담는 작업에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펜탁스 카메라의 셔터음이 다른 카메라와 커다란 차이가 있다거나
혹은 타 기종 카메라의 셔터음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펜탁스의 셔터음은 어느 것보다 맑고 청명하다.
타 기종 사용자들은 펜탁스 사용자들을 보며
결과물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셔터음 가지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소리를 반복한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셔터음 소리가 결과물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
사진이 찍히는 순간을 찍는 사람에게 유일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소리다.
그것도 셔터막이 닫히는 셔터음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이 사진을 찍었음이 확인되고
모델도 잡았던 포즈를 풀게 되는 매우 중요한 시그널이다.
사진을 찍는 순간 카메라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나온다 한들
펜탁스의 셔터음 처럼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순간을 확인시켜주는 맑고 청명한 셔터음.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을 렌즈를 향하게 하는 훌륭한 도우미다.
펜탁스는 사진에도 소리를 담는다.
하지만 위의 두가지 기계적 특징만으로 감성의 사진을 만드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기엔 뭔가 부족하다.
감성의 사진을 위해 사진을 찍을 때 눈이 환해지고 귀가 맑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감성 포인트는 말 그대로 가슴속에 우러나오는 묘한 느낌일 것이다.
이렇게 애매하고 추상적인 부분을 문장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 난해하고도 애매모호한 감성 부분을 확실하게 채워주는
펜탁스만의 특징이 있으니 그게 바로 수동렌즈, 이른바 장롱렌즈다.
뛰어난 펜탁스의 렌즈호환성은
일순간에 장롱속에 숨어 있던 수동렌즈를을 세상으로 불러냈다.
초점이 맞추어지는 순간에 들려오는,
징징거리며 굉음에 가까운 모터 드라이브 소리보다 손으로 조절하는 손맛의 느낌이
훨씬 좋다는 것은 수동렌즈를 이용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또한 셔터를 누르고 초점이 잡히는 순간 동안의 공백은
피사체의 감성에 변화를 줄 수도 있는 시간이다.
원하는 장면을 바로 찍는 것, 그게 감성의 사냥이다.
사진은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잡아내는 것이다.
수동조리개의 조절과 시간계산도 마찬가지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다시 한번 카메라의 조작을 점검하는 것,
그게 바로 사진에 담교지는 사진사의 감성이다.
요즘 내가 중고시장에서 4만원에 구입한 비비타 28mm/f1:2.8렌즈가
너무너무 좋은 것도 이런 이유다.
* * *
내가 쓰고 있는 렌즈군의 핵심인 50mm렌즈는
아버지께서 주신 카메라에서 꺼낸 smc a50mm f1:1.7렌즈다.
중고시장에 판다면 10몇만원 정도 할 것이다.
이 렌즈를 나는 아직 잘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본다.
그 세상은 내 아버지께서 뷰파인터를 통해 보시던 그 세상과 같을 것이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때의 나는 이미 수동의 감성을 넘어
아버지께서 바라보시던 그 사물과 그 세상의 감성을 느낀다.
이렇게 만들어진 내 사진을 남들이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해도
나는 사진속에 담겨진 내 감성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펜탁스는 사진만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감성도 살찌워준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