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마사토

아하누가 2024. 7. 7. 00:55


마사토라는 흙이 있다. 

마치 돌처럼 생겼지만 손으로 조금만 힘을 가해도 모래처럼 부서지는, 

흙도 아닌 돌도 아닌 흙이다. 

그렇다고 보기 힘든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흙의 한 종류다. 

이 흙은 입자가 굵고 세균이 거의 없어 종자 파종시에 발아에 용이하고 

균에 의한 피해도 없고 농사에도 이용되며 

배수 또한 잘 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많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그거야 내가 알바 아니고 아무튼 마사토는 그냥 흙이다. 

 

 

강원도 횡성집 마당에 심은 잔디는 나날이 잘 자라고 있지만 땅을 잘 고르지 못해 

잔디 또한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누군가가 마사토를 잔디위에 덧깔아 평평하게 바닥을 다져야 한다는 귀띰을 했다. 

땅이 고르든 아니면 울퉁불퉁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섭리요 신의 뜻이다. 

생명유지를 위하여 농산물을 수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자연의 산물인 땅을 두고 하찮은 인간의 노력으로 

억지로 평평하게 펴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비장하고 숭고한 나의 사고는 

아내의 눈에는 단지 게으름으로 비춰지고 있을 뿐이다. 

 

 

"그거 요 앞에 가서 트럭으로 한차 퍼오면 간단하지 않겠드래요?"

 

 

옆집 이장님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는 별 대수롭지 않은 듯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말이야 간단한 일이지 이 뜨거운 한여름 뙤약볕에 

언제 트럭에 흙을 한삽한삽 퍼담겠으며, 또 언제 트럭위에 올라가 

그 흙을 한삽한삽 다시 퍼내린단 말인가. 

군대에서 그짓 참으로 많이 해봤지만 지금은 그게 할만한 일은 절대 아니다. 

군대에서는 이것보다 더 힘든 작업도 있었고 훨씬 더 힘든 훈련도 있었으며 

심지어 얻어맞는 경우도 있었으니 

상대적으로 흙을 한삽씩 퍼담는 일이 가볍거나 혹은 즐거웠을 지 몰라도 

지금 이순간 이 일은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이다. 

 

 

"거봐요. 흙만 퍼오면 간단하다잖아요."

 

 

그 복잡하고 험난하며 노동집약적인 그 과정을 알 리 없는 아내는 

이장님 말만 믿고 즉시 행동에 옮길 것을 요구했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눈으로 

이장님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기거나 배가 아프거나 혹은 

아침에 마신 막걸리에 취해서 낮잠을 자게 되길 절실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장님은 아침에 마신 막걸리 따위는 

전혀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말 나온 김에 얼른 갑시다. 요 앞에 가면 흙 많이 있다구!"

 

 

상황이 이렇게 진행되니 그것이 상당한 고통이 동반된 노동이라 할지라도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삽한자루를 들고 먼길을 따라 나섰다. 

 

 

* * *

 

 

"여기서 빨리 퍼 가자구!"

 

 

트럭을 타고 나서 도착한 곳은 집에서 5킬로미터쯤 떨어진 어느 도로변.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마사토는 산처럼 높이 쌓여있어 

퍼올 마사토가 없다는 기초적인 거짓말은 전혀 통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트럭을 주차하고 이장님과 나, 두 사람이 삽으로 마사토를 퍼담기 시작한지 불과 5분, 

그 힘든 작업의 결과물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한시간을 퍼담아야 트럭 한대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예상치가 나오자 

이왕이면 퍼담아가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뭔가 문제가 되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아스팔트를 새로 깔기 위해 도로공사를 하는 곳이었고 

일부 도로는 새로운 포장을 위해 이미 기존 아스팔트가 흉하게 벗겨져 있었다. 

그러니까 이곳에 산처람 쌓인 마사토는 도로공사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이곳에서 마사토를 퍼가는 것은 당연히 공무집행 방해 내지는 

절도에 해당하는 당당한 위법행위였다. 

사실이 이렇게 확인되자 

여기서 마사토를 퍼담지 않아도 되는 훌륭한 명분을 찾게 되었고 

작업 중단을 주장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장님, 여기는 마사토 퍼가면 안되는 곳인데요? 도로공사하는 데잖아요?"

"....?"

 

 

그러자 이장님은 곧 주위를 들러봤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 표정을 통해 유추한 이장님의 현재 생각은 

내가 상당히 한심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게 없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의 질문과 예리한 관찰력이 이장님의 작업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는지 

이장님은 이내 허리를 숙이며 다시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장님은 당당하게 내게 말했다. 

 

 

"그래서 빨리 퍼가자니깐!"

".......!"

 

 

 

* * *

 

 

 

도저히 삽질을 중단할 아무런 명분을 찾지 못한 채 하기 싫은 삽질을 하던 중 

또 한번 구세주가 등장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공사장 포크레인이 나타났다. 

평소 생활에서 자주 접해보지 못한 포크레인이 이토록 반가운 적은 

아마 살면서 처음있는 일이다. 

공사장의 공무를 담당한 포크레인 기사는 당연히 작업을 제지할 것이고 

결국 마사토를 퍼가는 작업은 여기서 중단될 것이다. 

삽을 집어 던지고 트럭으로 인해 만들어진 그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 작업은 끝이다. 

아니나 다를까 포크레인 기사는 작업중단을 준엄하게 지시했고 

이장님은 예의 그 투박한 말투로 작업진행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던 이장님의 대화중 귀에 쏙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아니, 이거 앞마당에 좀 깔려구 지금 삽으로 조금..... 어? 봉수냐?"

 

 

포크레인 기사는 이미 이장님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는지 

서로 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이장님과 안부를 주고 받은 포크레인 기사는 

자신이 현재 공무집행중이라는 본분도 망각한 채 커다란 포크레인으로 

무려 3번이나 마사토를 트럭위에 실어주었다. 

시골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법과 규정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 사회가 싫어졌다. 

그나마 안면 있는 포크레인 기사 덕분에 삽질 작업량이 줄어들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귀찮기만한 이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순조로왔을까?

 

트럭 위에 가득 실은 마사토 때문에 트럭 바퀴는 거의 지면에 닿을 정도가 되었고 

이미 트럭으로 그 수명을 다해가는 이장님의 트럭은 

더 이상 달리지 못한 채 길거리에 멈춰버렸다. 

두 사람이 트럭위로 올라가 길거리에 마사토를 다시 부어버리기 시작했고 

이어 트럭이 달리는 듯하다 또 멈춰 

또 다시 트럭위에 올라가 흙을 버리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결국 그 노동력이 그 노동력인 상황이 되었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지만 트럭 위에 올라서서 

군대 일등병 시절 연병장에 뿌리던 그 작업을 18년만에 반복하면서 

지금 내 허리가 그때 허리보다 튼튼하지 않다는 당연한 인생의 결론만 얻게 되었다. 

이렇게 잔디밭에 마사토를 뿌리는 일은 마무리되었다. 

 

 

* * *

 

 

시골 생활을 하면서 나는 가끔씩 준법과 불법, 

법규와 인간관계라는 묘한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곤 한다. 

지켜야하는 법규가 있지만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는 묘한 상황들을 자주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에서 나는 사람사는 냄새를 느낀다. 

그것은 평평하게 다져진 잔디밭의 인공적 아름다움으로 비교할 수 없는 

시골생활에서 얻게 되는 값비싼 선물이다. 

 

아름다운 것은 자연과 풍경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니 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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