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철을 타고 집에 들어 가다보니 몇번째 칸의 몇번째 문에서 타야
내가 내리는 전철역의 출구 계단과 바로 만나는지 알고 있다.
지하철이 생기기전부터 이 동네에 살았으니 모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매일 그 자리에서 지하철을 탄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역에 지하철이 멈추고 문이 열리기 무섭게
100미터 달리기 선수들의 출발처럼 힘차게 지하철 문을 박차고 나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준비된 선수는 누구보다 빠르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이 일을 나는 매일 반복한다.
하지만 그렇게 빨리 뛰어 올라가는데도 건너편 계단에선 누군가 나보다 먼저
마지막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무리 빨리 뛰어 올라가도 건너편 계단에선 누군가 그렇게
나보다 한발 먼저 뛰어 올라온다.
그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어느 날부터는 속도를 조금 더 내기로 했다.
종전에 2개씩 뛰어 오르던 계단을 3개씩 뛰어 오르는 전법으로 바꿨다.
그런데도 또 건너편의 계단을 박차고 올라오는 사람은 나보다 한발 더 먼저
마지막 계단을 딛는다.
내 나이 어느새 30대 후반이라고는 하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 축구를 하는 튼튼한 체력,
선천적으로 뛰어난 순발력,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준비된 선수라는 점이다. 나 말고 어느 미친 놈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그리도 황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간단 말인가.
아마 그런 사람은 소매치기거나 또는 소매치기를 쫓는 피해자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먹을 것을 숨겨둔 사람인데 겨우 집에 먹을 것 숨겨 두었다고
나보다 빨리 뛰어갈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나보다 빨리 뛰어 올라간단 말인가.
그 날도 또 늦었다.
화가 나서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온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요? 저요? 고등학생인데요? 음....그러니?
그 다음날도 누군가보다 늦게 올라갔다.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본다. 또 고등학생이다.
그 다음날도 나는 누군가보다 늦게 올라갔다. 역시 고등학생인데 이번엔 여학생이다.
보통의 충격은 이미 넘어섰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항상 남보다 한발 늦었다.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뛰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건너편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보다 일찍 뛰어 올라가려고
작정을 했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나는
필살의 주법으로 위층을 향해 힘차게 계단을 밟고 뛰어 올랐다.
그런데 또 나보다 먼저 올라온 사람이 있었다. 너무 화가나서 또 물었다.
너두 고등학생이지? 아닌데요? 응? 아니라구? 저는 중학생인데요? 나는 잠시 말을 잊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TV 뉴스에서 본
요즘 청소년들이 20년전에 비해 체격은 커졌으나 체력은 떨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기억났다.
그거 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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