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아하누가 2024. 7. 7. 00:09



저녁에 '일요일 일요일밤에'을 보고 집 앞에 있는 마트에 다녀왔다. 

아이들 우유며 세탁할 때 쓰는 피죤이며 나 먹고 싶은 거 대충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귤 3,000원 어치 사오라던 아내의 말이 생각이 났다. 

서둘러 귤이 잔뜩 널려있는 청과물 코너에 가니 귤이 100g에 155원이라던가? 

도무지 내 머리로는 3,000원어치를 맞출 자신이 없었지만 

비닐 봉투에 하나하나 담아야 하는 방식이어서 하는 수 없이 귤을 하나하나 담고 있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잔뜩 쌓아둔 상품도 있었지만 

껍질이 얇은 걸로 하나하나 골라 담아 오라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남편'이라는 자격을 가진 사람 중에 마누라가 껍질 얇은 귤을 

3천원 어치 사오라는데 두다리 뻗고 '니가 갔다와!'라고 할 사람은 불행히도 많지 않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청과물 매장에서 잔뜩 쌓아둔 귤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귤을 고르던 아줌마 한사람이 자꾸 나와 손이 맞닿는다. 

귤은 넓게 퍼져있으니 저쪽으로 가서 고르면 될 것인데 

하필이면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귤을 고르고 있었다. 

처음 한두번은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서너번 반복이 되니 

직감적으로 이 여인이 내가 맘에 들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장에서 귤을 고르다 눈이 맞았다는 소리는 한번도 못들어봤지만 

어차피 영화의 주인공들도 아니니 시장에서 귤 사다 알게 되었든, 

시장에서 굴에 초고추장 바르다가 알게 되었든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또 한번 손이 맞닿았을 때 귤 사는 아줌마에게 말을 건넸다. 

 

"아줌마, 시간 있으면 어디 가서 귤이나 같이 까먹을까요?" 

 

내 말이 끝나자 그 아줌마는 소 닭 보듯 쳐다보고는 야채 파는 매장쪽으로 사라졌다. 

집에 오며 곰곰히 생각하니 내가 말을 잘못했던 것 같다. 

어디 가서 귤을 까먹자는 제안은 몹시 신선했는데 

그 귤이 누구 것인가는 명백히 밝혔어야 했다. 

요즘 아줌마가 어떤 아줌마들인데 작은 금액이라고 손익관계를 무시했으니 

얼마나 나를 한심하게 봤을까. 

다음에라도 그 아줌마를 거기서 만나면 아주 정확한 의사를 제대로 전달해야겠다. 

 

"아줌마 심심하면 나랑 같이 어디가서 귤이나 까먹는데..... 그 귤은 내가 산 걸로 하지요." 

 

 

가만히 생각하니 나는 제비가 되기엔 틀린 것 같다.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나 열심히 하자. 

 

 

 

 

 

 

아하누가

 

 

 

'세상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은 귀가 길  (0) 2024.07.07
양말과 슬리퍼  (0) 2024.07.07
그 여자는 나쁘다!  (0) 2024.07.06
지하철의 계단  (0) 2024.07.06
오타  (0) 2024.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