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늦은 시간에 집에 들어왔다.
마지막 버스에 겨우 몸을 싣고 동네 어귀의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이미 마을버스는 운행을 중지된 시간. 아직도 집에 가는 길은 남아 있다.
멀지만 그리 멀리 않은, 가깝지만 그리 가깝지 않은 집까지 걸어가자니
이것도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이를 어쩌랴. 다른 방법이 없는 걸.
굳은 맘 먹고 심호흡을 깊게 한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재미로 또는 운동 삼아 걸었다면 상쾌할 수도 있던 밤공기가 차갑게 양볼을 스치운다.
얼른 고개를 숙여 되도록 바람을 피하며 종종 걸음으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큰길이 아닌 작은 샛길로 들어서는데
봉고차 한 대가 옆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리 운전자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큰소리로 내게 묻는다.
"아저씨, 여기 현대아파트가 어디에요?"
일단 추위 속에서 걷고 있는 발걸음을 정지시켰음이 기분 나빴고,
나를 보고 아저씨라고 부른 사실이 또한 기분 나빴다.
기분이 나쁘기 시작하면 다른 일들도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여지게 마련.
별로 나이도 많아 보이지 않는 운전석의 그 놈은 매우 무지성한 목소리와
매우 무례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 당연히 '몰라요!' 하고 갈길을 재촉했어야 하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거기서 잠시 흥분하고 만다.
길눈이 몹시 어두운지라 누가 길을 물어봐도 제대로 가르켜준 적이 거의 없어
길을 물어야 할 정도의 곤란한 사람들에게 몹시 미안했는데
이번엔 너무도 확실히 알고 있는 곳을 내게 물었다는 그 조그만 사실이
나를 흥분시켜 순간적으로 가졌던 운전자의 인상착의 및 외모적 느낌에 대한 반감이
금방 잊혀지고 있었다.
내가 현대아파트라는 질문의 장소에 자신감이 넘쳤던 이유는
그 아파트 입구 바로 옆이 우리집이어서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고
지금 이러한 상황이 나이어도 대한민국 사람중에 가장 자신있게 그 길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른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 길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500미터 정도만 쭉 가면 됩니다. 아, 저기 아파트가 보이네요.
그러니 이길로 쭉 가시면 됩니다."
운전자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매연을 잔뜩 뿜은 채 내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봉고차가 떠나니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운전자의 불쾌한 언동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나즈막한 목소리로 운전자 욕을 하려는데
갑자기 머리속을 강하게 때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만 머리속을 때리기에 부족했는지 나는 내 주먹까지 이용해서
내 머리를 때리고 있었다. 심한 자책이 자해로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흥분했다. 이미 이성을 반쯤은 잃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나즈막한 혼잣말을 시작했다.
"바보, 가는 길에 태워달라 그럴 껄....."
그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집까지 가는 길은 더 힘든 고난의 길이 되었다.
버스와 여자는 보내고 나면 또 온다고 한다.
그러나 봉고는 한번 보내면 또 오지 않는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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