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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수염

저녁식사를 마치고 TV앞에 앉으니작은 녀석 의연이가 매우 즐거운 얼굴로 내 앞에 왔다.그리고 얼굴을 쓰다듬듯 만지더니 저만치 달아났다.손으로 내 얼굴을 만져보니며칠 째 면도를 하지 않아 턱이며 뺨이 까칠까질하다.그 까칠거림이 재미있었는지 녀석은 저만치 도망갔다가 또 내게 다가온다.얼른 붙잡아 강제로 얼굴을 부볐다.심한 따가움 때문에 녀석은 발버둥을 친다.그리고 멀리 도망가는 듯하더니 내게 다시 다가와손으로 그 까칠거리는 뺨을 손으로 만지고 달아난다.그러면 나는 또 붙잡아 얼굴에 뺨을 비비고녀석은 도망갔다가 다시 다가와 그 뺨을 손으로 만지고 가고....세 살 정도의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빠와 함께 즐기는,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범 국민적인 놀이를 나 또한 즐기고 있는 셈이었다.몇 번의 반복 끝에 녀석은 ..

손가락 깨물기

아이를 키우는 사람과 아이가 키워보지 않은 사람의 생각 차이가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은 매우 많다.아이를 키우든 안 키우든 세 살짜리 아이에게 손가락을 물린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얼마나 아픈지 안다.그러나 왜 세 살짜리 아이가 손가락을 깨물면 엄청나게 아픈지는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 세 살짜리 아이는 스스로 힘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힘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하는데불행히도 세 살바기 아이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그냥 입에 물리는 순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최대의 힘으로인정사정 없이 물어버린다.세 살 아이가 무슨 힘이 있겠냐며 순순히 손가락을 입에 물려주는삼촌, 삼촌 친구, 옆집 초등학생은 뼈가 저릴 정도의 아픔을 느끼고곧 자신의 경거망동한 행동을 후회하게 된다.손가락일 경우 뼈가 시리지만어..

크리스마스 선물2

7살이 된 큰 아들 후연이는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컸다.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지만그보다 더 큰 변화는 말을 잘하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게 됐다.아이들이 커가는 것은 하루가 다르다고 하니일년이나 지난 지금은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작년 이맘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은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다.작년만해도 크리스마스와 선물과의 관계,그리고 선물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이익,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선물이 등장한다는 당위성 등 세상 물정을 몰랐다.그러나 한해가 지나니 녀석은 선물의 중요성과이것이 자신의 취미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고,따라서 선물은 내가 녀석에게 이용하는 중요한 협박 무기로작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아빠와 아버지

휴일이었지만 아내가 직장 체육대회에 가는 바람에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아들 두 녀석과 하루종일 집에 있어본 아빠라면 그 고충을 알 것이다.돈이나 많이 주고 나갔으면 파출부 아줌마나 불러 수다라도 떨며 보냈을 텐데만원짜리 3장만 남겨두고 새벽에 나가버렸으니 하루종일 얼마나 고생했으랴.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지쳐갈 오후 무렵.이왕 아이들과 보내는 이 시간을뭔가 교육적인 것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후연아, 너 이제부터 아빠라 하지말고 아버지라 불러. 알았지?""왜 아빠를 아버지라 불러?"  아빠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은호칭이 바뀌면 어리광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는게 뭐가 나쁘겠냐만어리광은 아무리 못하게 해도 하게 마련인게 어린 아이들의 생..

이웃집 아이 승연이

오후에 후연이 노래자랑이 있었다.유치원에서 매년 하는 이 행사는 커다란 행사가 아니라단지 사람들 앞에 서서자신의 재능을 발표하는 연습을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인데,그 부분은 참 마음에 든다.누가 더 잘하냐는 경쟁 개념은 혼자서 잘하는 것이 아니라어차피 남들 앞에서 잘해야 잘하는 것으로 인정받는 현대 사회의 구조니이런 훈련은 바람직할 수도 있다. 보호자들은 꽃다발을 사오라기에 2천원 들여 장미 한송이를 예쁘게 만들었다.사실 이 노래자랑이 벌써 3번째다.5살 때, 6살 때 그리고 지금이니 이런 무대에는 무대에 서는주인공만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인 나도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그래서 교육의 목적을 감안하여 꽃다발도 항상 작은 걸로 준비한다.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

TV의 영향

이제 막 말하는 것에 재미가 붙은 큰 녀석은아무 말이나 쉴 새 없이 떠드는데제법 알아들을 만하고 또 내용도 있다.그러다 보니 남의 말을 듣는 능력도 발달하게 되어이제는 녀석에게 웬만한 상황이나 이유, 원리 등의 설명도 가능하게 된다.대견한 듯하지만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니오히려 남들보다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큰 녀석이 동생하고 놀다 엄마에게 예의 그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아내는 이제 말귀를 조금 알아듣는다고 느꼈는지 아동용 잔소리보다는오히려 성인용 잔소리에 가까운 내용의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너 동생을 때리면 어떻게 해?'로 시작된 잔소리는형이 동생을 때리면 안 되는 이유에서부터 동생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그리고 남들이 동생을 괴롭힐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강령,그런 ..

주부 생활 일주일째....

둘째 녀석이 다리에 깁스를 한 이후 시작한 주부생활도어느덧 일주일이 넘었다.겨우 일주일 지낸 주부 생활이 실제 주부의 경우와 비슷하기나 하겠냐만그래도 나름대로 느끼는 것도 있고 알게된 것들도 있다.느끼는 점, 알게된 점이야 신문이나 방송에도 흔히소재로 다루어지는 내용이니 그러려니 했는데정말 견디기 힘든 것은 낮 시간을 보내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다리에 깁스한 녀석이라 얌전히 누워있으면 좋으련만멀쩡한 다른 한쪽 다리를 기둥 삼아몸을 질질 끌고 안 다니는데 없이 돌아다니니이야말로 눈을 뗄 수가 없는 상황이다.급기야 다른 한쪽 다리로 지탱해서 의자 위로 올라가는 데까지 성공했으니이제 감시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집안 구석구석 안 올라가는데 없이올라가게 될 것이다.올라가면 내려올 줄도 알아야 하는데 올라..

주부가 된 사나이

말썽꾸러기 둘째가 결국 사고를 쳤다.놀이터에서 놀다 그만 다리가 부러져버렸다.세살바기 아이 녀석이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는 꼴을 보자니 측은하기도 하고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또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가장 큰 걱정은 이제 놀이방에 보낼 수도 없는 이 녀석을과연 누가 돌봐주느냐는 걱정이었다. 결국 아내보다 비교적 출퇴근의 탄력성이 좋은 내가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저녁 7시에 출근하기로 하고 아이를 보기로 했다.하는 일이 주로 밤에 해야 오히려 능률이 오르는 일이기도 하고개인적인 성향으로도 낮보다는 밤이 좋으니사무실 일은 그런대로 견딜만 했지만 일주일째 아이를 보고 있자니낮에 몸이 근질거리는 증상은 역시 예상보다 힘든 일이었다.깁스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며이것저것 어지르고 넘어뜨리는 아이가 있으니낮 시간에..

나 저방에서 혼자 잘꺼야!

"나 저 방에서 잘 거야!" 갑자기 집안에 놀라움의 소용돌이가 일어났다.이게 무슨 소리인가.7살 먹은 큰아들 후연이가 잘 시간이 되어서 꺼낸 말이다.우리 집은 방이 두 개밖에 없어큰방에서 이불을 펴고 네 식구가 뒤엉켜 잔다.침대를 치우고 나서 이불을 깔고 개는 행위가 조금 귀찮긴 했지만그래도 가족끼리 진한 스킨쉽이 오가기도 하고또 폭격 맞은 곳처럼 여기저기 널브러져 자는 모습도제법 나쁘지 않아 계속 그 방식을 이어오고 있었다. 아이들 또한 밤에 아빠랑 엄마랑 뒤엉켜 자니 지들끼리 장난도 하고불꺼놓고 옛날 이야기도 들으며 재미있게 보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난데없이 큰아들 후연이가 모종의 결단을 한 듯놀라움 가득한 말을 꺼낸 것이다. 작은 방은 컴퓨터가 있고 게임기가 있고장난감이 잔뜩 쌓여있는 창고 같은 방이..

무동력 장난감

아이들은 언제나 장난감을 찾는다.시대가 첨단 전자 장비의 시대니 만큼우리 아이도 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겜보이나컴퓨터 등 전자오락기가 대부분이다.그것은 장시간 놀이가 가능하고 혼자서도 놀 수 있으니어른들 입장에서는 편한 면도 있지만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무척 불안한 놀이며 또한 장난감이다.하지만 주변의 또래 아이들이 너도나도 즐기고 있으니무작정 말릴 수도 없는 골칫덩어리이기도 하다.  그런 딜레마 속에 얼마 전 좋은 장난감을 찾아냈다.비록 그것이 전자오락의 장난감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나름대로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긍정적인 요소가 많은 장난감이라는 생각이었다.그것은 바로 권투 글러브였다. 권 . 투 . 글 . 러 . 브 -이름만 들어도 남성다운 역동감이 느껴져심성이 유약한 우리 큰 녀석 같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