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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면바지

여름에 입을 수 있는 바지라고는 얇은 면바지 달랑 하나뿐이다.     땀이 많이 나는 여름 한철을 면바지 하나로 넘길 수는 없고     대부분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     청바지도 있긴 있는데 덥고 불편해서 여름에는 옷장 깊숙이 처박아 둔다.     작년 여름의 경우 반바지 서너개로 여름철을 보냈으니     아주 실용적인 패션인 셈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여기저기 다녀야 할 데가 많아져     반바지를 입을 수가 없다.     입을 수 있는 긴바지라곤 면바지 하나 뿐이어서     세탁에도 문제가 있고 코디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얼른 이 일이 끝나기를 바라며 얇은 면바지 하나도 근근히 잘 버티고 있다.                             ..

물총

화장실에 앉아 무심코 아래를 쳐다보니 세수 대야 속에     물총 2개가 보인다. 천천히 들어 손에 쥐어 본다.     어느 콘후레이크 회사 로고가 표면에 찍혀 있는 걸로 보아     물건을 사면 서비스로 끼어 주는 것 같았다.     서비스로 나눠주는 건데도 비교적 잘 만들어진 물총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래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물총은 아주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고무 재질로 된 물총은 물을 잔뜩 담고 물총 전체를 꾹 눌러야     그 압력으로 총구의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총구의 이음 부분은 엉망이어서 물이 옆으로 새는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물총 앞 부분이     물의 압력으로 ..

추억 들국화

#0 매우 오래전에 쓴 글이지만 새로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들국화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다시 정리하곤 했다.그러면서 다시 추억을 더듬고,이러한 추억의 그리움은 새로운 삶의 큰 힘이 되곤 했다.다시 글을 정리하는 지금은 지금은 2012년 6월.들국화를 처음 만난 것도 6월이었으니6월은 내게 들국화와의 인연을 깊게 만들어주는 달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들국화 멤버와 인연이 있었던 적도 없고당연히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다.그저 콘서트장 한 구석에서 자리를 묵묵히 채워준 한사람의 팬이었을 뿐이다.  #1 1983년. 한장의 앨범을 구했다.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앨범으로 이영재와 이승희,그리고 최성원 3명의 이름으로 나온 옴니버스 앨범이었다.그 앨범에는 최성원의 노래로 [매일 그대와]가 있었고,..

디즈니랜드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라는 방송을 했다.요술공주가 살 것만 같은 그림 같은 성의 모습이 만화로 나오고마술봉을 든 요정이 성의 꼭대기를 마술봉으로 건드리면화려한 불꽃들이 잔뜩 내려오는 시그널이 인상적이었다.만화도 하고 가끔 영화도 하며동시대를 살아온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바로 그 프로그램이다.그것이 다분히 미국적이고 문화적 침략이라는 것은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된 일이고,당시에 그런 생각을 했다면나는 무척이나 사악한 놈으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했을 것이다. 남들은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디즈니랜드에 대한 환상과 꿈을나는 멍청하게도 아주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에게는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그 정도는 제법 심해서군대에서 쓴 일기장에도 가끔 디즈니랜드에 가고..

WALKING MUSIC

일반적으로 '워크맨'이라고 통칭되는 소형 카세트테이프 레코더가 있다.지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대중화된 상품이지만그 기계를 처음 보고그 음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엄청났다.크기와는 상반되게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웬만한 콤포넌트 오디오 시스템과 맞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그 워크맨을 내가 직접 소유하게 되었다.SONY사의 정통 워크맨은 아니었고 당시 금성전자에서 나온 제품이었는데크기로 보나 음질로 보나 지금의 것과 비교하면 아주 볼품 없었다.하지만 그것은 재산 목록 1호였고 이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그것은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항상 음악을 듣고 다니다보니 길을 걸으며 듣는 음악은조금 다른 차원에서 분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흔히 팝에도 락이며 발라드며 메틀이..

나의 고교시절 이야기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가장 즐거운 추억들은고교 시절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청춘의 순도도, 사고의 발상도 가장 청결하며조그마한 해프닝 하나하나까지가장 인상깊게 기억되는 시절이기도 하다.  한 친구가 있었다.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이었지만 한가지 남과 달랐던 사실은남의 말을 절묘하게 받아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물론 그 자신도 그것을 특별한 기술로 생각하지 않았고듣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도한 순간에 웃어 넘기고 말 뿐이었다.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갈수록 그 기기묘묘한 발상과 순발력은두고두고 가슴 속에서 잔잔한 웃음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          *          *  고교 시절엔 별다른 놀이 거리가 없었다.그저 친한 친구들 몇 놈이 모여서 이런 저런 ..

피서지에서 생긴 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의 일이다.군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해 여름, 친구들 다섯과 함께서울 근교의 강가에 여름 휴가를 즐기러 갔을 때였다.한참이나 굶주린 늑대 같은 남자 6명이 강가에서 분위기를 잡으려니좋은 분위기는커녕살벌과 썰렁이 난무하는 삭막한 분위기만 만들어지고 있었다.모두들 빈틈없는 예리한 눈빛으로 사방팔방을 둘러보았지만늑대 6마리를 만족시켜줄만한 먹이감(?)은 아무데도 발견되지 않았다.텐트촌에 보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친구들을 동반한 상태였으며가끔씩 여자들 둘셋이 온팀이 있긴 했지만우리나라의 고유 정서상 짝이 맞지 않으면될일도 안된다는 생각에 아예 시도도 안하고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곳에 여자들 6명만 놀러온다는 것을 기다리느니빨리 장가가서 딸 여섯..

쥬크박스

중학교 1학년때였으니 꽤 오래전의 일이다.당시는 전자오락실이라는 것이 시내 곳곳에 선을 보이게 되었던 시기였는데마침 광화문 근처에 커다란 오락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하도 주변 친구들이 얘기들을 많이 해서 어느 일요일은 그곳을 찾게 되었다. 친구들과 찾은 그 오락실은 꽤 넓은 공간에처음 보는 신기한 오락기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물론 신기하다고 해야지금의 시각으로보면 조악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지만.대부분의 기계가 전자오락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다분히 기계적이며 또한 수동적 오락기였고그나마 사람도 많았고 요금도 비쌌기 때문에 구경이나 하는 정도였다.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기계를 만나게 되었는데,투명한 통에 작은 레코드판이 여러장 들어 있었고동전을 넣은 뒤 원하는 곡을 지정하면 ..

전화

“참, 우리 결혼 시계 어디 있지?”     케이블 TV 홈쇼핑 채널의 귀금속판매 프로그램을 언뜻 지나치며 보다가  문득 결혼 시계가 생각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워낙 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 체질인데다  정장을 할 일마저 많지 않은 직업이어서  금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예물시계를 찰만한 일도  일년에 한 두 번밖에 되지 않아 문득 그 시계가 잘 있는지 궁금해졌다.  생각난 일은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무지막지하게 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아내는  내 말의 여운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시계를 가지고 왔다.      “이런 시계가 멎어 있네?”  “내 시계는 아직 잘 가는데요?”    아마 전지가 다 소모되어 버린 것 같았다.  아내는 같이 샀지만  아직도 잘 움직이고 있는 자신의 시계를 한번 흘낏 쳐다보..

아빠의 수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한테 그럴 수 있어?”     주변에서 내가 아들 녀석에게  자두 갈아 먹이며 즐거워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하는 한결 같은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전처럼 재미가 없다.  주변에서 말리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이 녀석이 이제 제법 컸다고  매운맛, 신맛을 알아버려 웬만한 음식은 쳐다보기만 하고 받아 먹질 않는다.  아스피린도 안 받아 먹고 마늘도 안 먹으니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바늘 같은 것으로 콕콕 찔러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늘을 찾다가  이미 눈치챈 아내에게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분위기 파악 못하는 친구 용모는  아기의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붙이면  아기가 어지러워 빙글빙글 돈다고 말했다가  그후 6개월간 집단 따돌림이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