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앉아 무심코 아래를 쳐다보니 세수 대야 속에
물총 2개가 보인다. 천천히 들어 손에 쥐어 본다.
어느 콘후레이크 회사 로고가 표면에 찍혀 있는 걸로 보아
물건을 사면 서비스로 끼어 주는 것 같았다.
서비스로 나눠주는 건데도 비교적 잘 만들어진 물총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래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놀던 물총은 아주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고무 재질로 된 물총은 물을 잔뜩 담고 물총 전체를 꾹 눌러야
그 압력으로 총구의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발사되었다.
하지만 총구의 이음 부분은 엉망이어서 물이 옆으로 새는 일은
말할 것도 없이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물총 앞 부분이
물의 압력으로 인해 통째로 날아가는 일도 허다했다.
이후에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펌프의 원리를 이용한
물총이 나오긴 했지만 그 조악함은 여전해서
플라스틱 사이의 이음부분은 언제나 물을 새게 했고
피스톤 장치는 곧잘 망가져 사자마자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한 때 민간 차원에서 물총이 개발되었다.
옛날 아기들 기저귀 채우는 노란 고무줄을 적당한 길이로 끊어
한쪽은 매듭으로 봉하고 다른 한쪽은 볼펜 꼭지를 끼워 만든
순수 민간 물총이다.
그러나 그 물총도 화력은 대단했지만(수력이라 해야 하나?)
휴대가 불편하며 긴급 상황의 대처 능력이 부족하고
제동 및 강약 조절장치가 부실하며
또한 그 생김새 또한 수려하지 않아 곧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런 옛날 물총과 비교하니 요즘 물총은 참 대단하다.
잘 만들어진 물총에 피스톤의 성능도 좋아서 유효 사거리
3미터 이상, 최대 사거리도 잘하면 10미터는 나올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예전의 물총이 가졌던 '탄알장전식' 시대를 넘어
'탄창교환식' 물총이 되었고 총구도 두 개가 위 아래로 있어
한방에 두 줄기의 물줄기가 나가니 이 또한 재미있다.
시대가 가져다 준 혜택일까?
문득 물총을 보다가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난 뒤에는
그 물총이 어떻게 변할까 생각해본다.
당연히 지금의 물총보다 더 잘 만들어진 물총이 등장하겠지.
물총에 센서가 있어서 물도 뜨거운 물로 만들어 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가 하면 가늠자, 가늠쇠에 디지털 화면으로
정확한 조준이 가능한 기구도 달려있을지 몰라.
컴퓨터와 연결하면 인터넷으로 새로운 기능을 추가로
다운로드 받아 장착할 수도 있을지 몰라. 물론 요금은 내어야 할 테지.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럼 30년 후에 있을 우리 아들 후연이의 일기를 함께 볼까?
2031년 8월 6일 후연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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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이 또 물총을 사왔다.
요즘 사회적으로 물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지난달부터
물총 제작 및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되었음에도
일부 악덕업자들이 물총을 몰래 팔고 있다.
요즘 급수사정이 갈수록 나빠져 가정으로도 3급수 밖에
배급되지 않고 있고 또한 환경오염이 너무 심각해
정수처리 시설 확충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감으로
엄청난 수도 요금은 내야 한다.
수돗물 1리터가 금 한돈의 10분의 1 가격이니 가히 살인적인 물값이다.
이런 판국에 물총을 팔아먹는 업자의 비양식이 한탄스럽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와 서로 물총을 쏘며 놀았었는데
언제가 되어야 우리 애들은 내가 어렸을 때처럼
물총을 여기저기 쏘며 놀까?
* * * *
화장실 변기에 앉아 물총을 화장실 벽에 쏘아본다.
내 상상이 절대로 맞지 않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번 더 쏜다.
30년 뒤에는 더 멋진 물총이 나타나
애들이 신나게 놀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번 더 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엉뚱한 상상 -
아마도 변기에 걸터앉아 똥싸며
물총을 벽면에 쏘아 대던 놈이 '비데'를 발명했을 것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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