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얼른 내게
방안으로 들어오라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방안에 들어가니 제법 볼만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둘째 아들 의연이가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들이, 어린 아이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
춤을 추고 있는 그 꼴을 보노라면 정말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상투적으로 잘 써오던 표현 중에
뭔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 같은 날은
우쭐한 마음에 이런 표현을 하곤 했다.
‘오늘 밤 일기에 써야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등상 받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고
중학교 때 친구 성호에게 탁구를 쳐서 이겼을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런 기억은 마찬가지여서
예쁘기만 하던 영어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마찬가지로
친구들에게 그런 표현을 했다.
그렇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표현을
지금의 이 경우에 적용시키는 것은 단지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라는 모습에 감동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녀석은 양팔을 앞으로 내밀며 좌우로 흔들고
두 다리는 박자에 어울리게 위 아래로 흔드는,
나름대로 기본기를 철저히 갖춘 채 춤을 추고 있었다.
예전에 다리만 덜덜 떨던 모습을 기억하면 매우 대단한 발전이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며 조금씩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던 그 기분을 나는 안다.
하지만 유심히 보니 그 춤이 어째 예사롭지 만은 않다.
아내가 아이에게 춤을 추라며 불러줬던 노래는 이러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춤을 춰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춤을 추자는 이 건전한 가사는
아이들 교육에도 흠잡을 데 없이 바람직한 가사였으나
그 멜로디를 추적해보니 그 노래는 한 때 유행했던 DJ DOC의 노래였다.
선천적 체질상 남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은 없었지만
당시 그 노래가 고속버스 춤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사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춤을 추고 있는 의연이를 쳐다보니 대충 그 모습이 나타난다.
재기 발랄한 손동작은 운전하는 시늉이었으며
뛰어난 밸런스를 자랑하며 위아래로 흔들던 다리는
흔들리는 버스를 묘사한 것이리라.
아, 이를 어쩐단 말인가.
장래가 촉망되는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지금 시작해도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될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가진 새파란 젊은이(?)가 이런 춤을 추다니.
숨이 넘어갈 듯 웃고 있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 춤 누가 가르쳐줬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는 소리와 숨넘어가는 소리가 뒤섞인
묘한 목소리로 아내는 너무도 당연한 듯 내게 말했다.
"누구긴 누구겠어. 할머니지"
"......"
어른들이 나이를 드시면 어린애를 닮아간다고 한다.
그럼 나이가 들기 전인 애들은 다 할머닌가?
내 짧은 수학적 능력으로는 그 오묘한 함수관계를 풀 수 없을 것 같아
그만 생각을 중단했다.
그리고 늘 뛰어나다고 혼자서만 자부하는
문학적 분석으로 이를 해석했다.
아이들은 어른의 아버지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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