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 큰아이 유치원 보내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히는데
녀석은 잘하지도 못하는 말로 내게 말한다.
"오늘 원복 입고 가야 대에~"
태어난 지 4년하고 8개월 되었으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말투며
발음이지만 이상하게도 '원복'이란 말은 몹시 선명하게 들렸다.
학'교' 학생이 교복을 입듯 유치'원' 어린이가 입어야 하는 것이
원복이라는 것을 잠시 생각하고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 나이로 겨우 6살 아이가 말하기에는
제법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녀석은 유치원에서 <여우야 여우야>라는 연극인지 인형극인지
무언가 보려고 가야 하는 날이었고,
일찍 출근한 아내가 코디해둔 의상은 분명 원복이 아니었는데
평소에 입혀주는 대로 아무 옷이나 잘 입던 아이는
때아닌 원복 타령을 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렇게 단체로 어딘가에 가는 날은 원복을 입어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상식으로 생각하면 그런 것 꼼꼼이 잘 챙기는 아내가
실수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크지도 않은 눈을 깜박거리며 '원복'을 노래부르는 녀석을 보며
설령 오늘이 원복을 안 입고 가도 되는 날이라 해도
그리 손해볼 것 없으니 일단 입히기로 했다.
만약 다들 잘 맞는 유니폼을 입고 왔는데 우리 아들만 혼자서
튀는 복장을 하고 있다면 녀석은 얼마나 섭섭할까?
혹시나 이 기회에 녀석이 남보다 튀는 것을 스스로 좋아하는 것 같으면
장차 연예인으로 키워보겠다는 앙증맞은 생각도 그 틈에 하고 있었다.
유치원에 데려가니 다들 노오란 색깔이 너무도 선명한
원복을 입고 있었다. 미운오리새끼가 될 뻔한 순간이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한편으로 이 녀석이 연예인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지 못했음이 순간적인 아쉬움으로 남은 사실을 느끼며
나도 좋은 아빠 되기는 틀렸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제 녀석은 자신의 의사를 훌륭하게도 표현한다.
불과 몇 일전만 해도 내가 외국에 잠시 나갈 때마다
현지에서 서투른 영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과
이 녀석이 내게 하는 대화가 똑같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녀석의 어휘력과 문장력 및 이에 상응한 표현력은
빠르게 발전하여 전혀 노력 없는 나의 외국어 실력과는
하루 하루가 다르게 차이가 벌어진다.
아마도 녀석이 단어 하나를 알게 될 때 내가 영어 단어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만큼의 차이를 내며
시간이 갈수록 그 차이는 무섭게 벌어질 것이다.
그것은 성철 스님이나 도올 선생을 등장시키지 않아도
누구나 알고 있는 만고의 진리이며 또한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다.
* * *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녀석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번호를 눌러줬겠지.
"아빠 식사 하셨어요?"
날이 갈수록 녀석의 발음은 선명해진다.
조금 있으면 그 말의 뜻이 뭔지도 알겠지.
아빠의 하루는 이렇게 지나가고 그렇게 이 아빠는 또 하루 늙어간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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