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후연이가 어디서 구했는지 콜라 캔을 들고 서있다.
콜라를 먹으면 좋지 않다는 얘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제 발이 저린 듯 콜라를 번쩍 들어 보이며 내게 말한다.
"아빠, 콜라 많이 먹으면 어떻게 돼?"
질문의 타이밍이나 떨리는 음성 속에 숨겨진 의미를 보니
내가 콜라를 먹지 말라고 하려는 말을 이미 간파하고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려 이를 막아보려는 듯 했다.
콜라를 많이 먹으면 어떻게 되나?
스스로 반문해봐도 딱히 적절한 대답은 없다.
살이 찐다고 해야 녀석은 이해가 가지도 않을 테고
정력이 떨어진다고 하면 소 닭 보듯 쳐다 볼 게다.
"응, 콜라 많이 먹으면 키가 안 커"
키가 크고 안 크고의 문제가 아이에게 어떤 메리트를 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많은 예문 가운데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위협적인 표현으로는 가장 적절한 듯 했다.
특히 지난 여름 무주리조트로 휴가 갔을 때
자신이 단지 키가 작다는 이유로 후룸라이드를 못 탔다는 사실을
혹시라도 기억해준다면
내 위협성 경고는 매우 적절한 효과가 있으리라.
하지만 녀석은 경고의 성격을 띤 나의 의학적이며 생물학적 충고를
단지 문법적 특성으로만 받아들여 희안한 대꾸를 했다.
"그럼 콜라 조금 먹으면 키가 쑥쑥 커?"
잠시 방심했다.
녀석의 언어적 능력에 반대되는 표현을 단어별로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내가 제시한 제안에 녀석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명제를 가지고
내 앞에 서있는 것이다.
'콜라를 많이 마시면 키가 안 큰다'와 '콜라를 조금 마시면 키가
쑥쑥 큰다'는 것은 명제로서의 의미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복잡한 함수관계를 또한 지니고 있다.
'콜라를 많이 마시면 키가 안 크는 것은 참이지만 조금 마신다고
키가 쑥쑥 크는 것은 반드시 거짓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참은 아니다'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 함수관계를 설명하려면 녀석보다 내가 먼저 미쳐버릴 것이다.
달리 대꾸할 말이 없음을 확인한 녀석은 아빠의 약한 모습을
교묘히 이용하여 콜라를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한모금을 마실 때마다 '콜라 조금씩 마시면 키가 쑥쑥 커~'를
반복하면서 마치 멍청한 동네 친구하나 바보 만들 듯
유유히 내 앞에서 콜라를 마셨다.
그리고 결국 녀석은 콜라 한 캔을 다 비웠다.
이제 녀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말을 배우고 있는 걸까?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녀석의 언어적 능력을 보며
얼른 녀석이 글을 쓸 줄 알아 나랑 같이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한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면 녀석은 또 다른 말을 배워올 테지.
내일은 녀석에게 '많이'와 '적게', 그리고 '많이'와 '조금'의 차이점을
가르쳐줘야겠다.
점점 아빠 노릇이 힘들어진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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