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WALKING MUSIC

아하누가 2024. 6. 24. 01:04

 


일반적으로 '워크맨'이라고 통칭되는 소형 카세트테이프 레코더가 있다.

지금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대중화된 상품이지만

그 기계를 처음 보고
그 음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엄청났다.

크기와는 상반되게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웬만한 콤포넌트 오디오 시스템과 맞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그 워크맨을 내가 직접 소유하게 되었다.
SONY사의 정통 워크맨은 아니었고 당시 금성전자에서 나온 제품이었는데
크기로 보나 음질로 보나 지금의 것과 비교하면 아주 볼품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산 목록 1호였고 이후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것은 아주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항상 음악을 듣고 다니다보니 길을 걸으며 듣는 음악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분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팝에도 락이며 발라드며 메틀이며 많은 분류를 하지만
그것이야 음악의 구성적 분류고

나의 분류에는 커피 마시며 듣는 음악, 자기전에 듣는 음악,
책 읽으며 듣는 음악 등 그 분류가 독특하고 개성적이었다.


워크맨 이후로 그런 나만의 음악적 분류에 한가지가 더 추가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Walking Music 이라는 새로운 장르 아닌 장르였다.
저 영어가 어법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니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고,

또한 그것은 남에게 선뜻 말을 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였다.

 

 

Rod Stewart 라는 팝가수의 노래

I Don't Want to talk about it 이라는 노래가 있다.
늘 길을 걸으며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중
주인공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다닐 때의 분위기를 느끼곤 했다.
상큼하게 시작되는 키타 사운드는 물론이고

짙은 허스키 보이스의 매력있는 창법이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어 주곤 했다.

이후 Walking Music이란 말도 안되는 말과 로드 스튜어트의 그 노래는
오래도록 좋은 친구로, 좋은 취미로 나를 따라다니곤 했다.

 

 

 

* * *

 

 

 

지금은 예전보다 좋은 제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가 아닌 CD가 들어가는 휴대용 포터블도 있고

물론 집에도 오디오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지 않는다.
로드 스튜어트도, CAVATINA도 예전처럼 정감있게 들리지 않는다.
좋은 오디오, 좋은 음향에 배가 부른 나머지

들려오는 음악의 소중함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귓가에 쨍쨍 울리는 음악을 날카로움을 참아가며 듣기에는

이제 늦어 버린 것일까.


잘 잡으려고 해도 잘 잡히지 않던 FM주파수를 맞추며
손바닥만한 라디오를 귀에 바짝 붙여 음악을 듣던 예전의 기억은
이제 품질 좋은 오디오에 가려 기억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나 보다.

 

 

 

문득 가방을 뒤적거리다 손바닥 크기의 반의 반도 안되는

MP3 플레이어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본다.
아무리 옛 생각에 잠기고 또한 추억이 아름답다 해도 추억은 추억이다.
로드 스튜어트도 워크맨도,

그리고 MP3 플레이어도 나를 추억으로 되돌려주진 않는다.
어쩌면 그런 추억들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추억은 돌아봤을 때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존재할 가치가 있으니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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