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의 일이다.
군입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해 여름, 친구들 다섯과 함께
서울 근교의 강가에 여름 휴가를 즐기러 갔을 때였다.
한참이나 굶주린 늑대 같은 남자 6명이 강가에서 분위기를 잡으려니
좋은 분위기는커녕
살벌과 썰렁이 난무하는 삭막한 분위기만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두들 빈틈없는 예리한 눈빛으로 사방팔방을 둘러보았지만
늑대 6마리를 만족시켜줄만한 먹이감(?)은 아무데도 발견되지 않았다.
텐트촌에 보이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친구들을 동반한 상태였으며
가끔씩 여자들 둘셋이 온팀이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고유 정서상 짝이 맞지 않으면
될일도 안된다는 생각에 아예 시도도 안하고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곳에 여자들 6명만 놀러온다는 것을 기다리느니
빨리 장가가서 딸 여섯을 낳는게 더 빠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놀러가는 것은 여자들이랑 가야한다.
놀러가서 여자를 꼬시고 뭐하고 다들 떠들어대지만
그것은 정말 만화에나 나오는 얘기일뿐이다.
“비가 와야 하는데.... 쩝...”
아무리 하늘을 쳐다봐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는 아닌데 옆에 있던 선배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 비는 왜?”
갑작스런 얘기에 놀라서 반문하니 선배의 말이 걸작이다.
“비가 오면 말이야... 여자들끼리 온 텐트로 가는 거지.
그리고 캠핑용 삽을 들고 텐트 주위에 고랑을 파는 거야”
“갑자기 고랑은 왜?”
“참나... 모르면 가만히 있어. 그러면 여자들이 텐트에서 나와볼 거 아냐?
무슨 일인가 하면서? 그럼 멋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거지”
“뭐라고?” “으흠... ‘텐트 옆으로 고랑을 파야 텐트로 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라고.
그리고 비를 맞아가며 열심히 고랑을 파는거야.”
“비오는데 뭐하러 그런 고생을 해?”
“그러니까 넌 안돼는 거야. 야 임마! 비 맞으면서 텐트 옆에 고랑 파주는데
가만히 있겠어? 들어와서 고스톱이라도 같이 치자고 하겠지.
으흐흐흐 그러면서 역사는 시작되는거라구!”
얼핏 듣기에는 무척 현실감있는 시나리오 같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텐트치고 야영하는데
비가 오면 빨리 텐트걷고 비 피할 생각을 해야지
남의 텐트 고랑이나 파주면 되나.
또 그건 그렇다 쳐도 아무리 기우제가 아니라 기우제 할아버지를 지내도
비가 전혀 내릴 것 같은 하늘이지 않은가?
그래, 거기까지도 좋다.
일단 비가 오든 고랑을 파든 상대가 있어야 그짓도 할게 아닌감?
그런 선배의 비현실적 생각에 잠시 분석을 했던 그 시간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하지만 잠시후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 일행이 자리를 잡고 있던 그 옆자리에 여자들 6명으로만 구성된 일행이
텐트를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저 별 특징없이 평범하게만 생긴 그 여자들이
얼마나 이뻐 보였는지 모두 영화배우나 미스코리아로 보였으며,
지금 기준으로 따져도
스파이스걸스나 핑클은 비교도 안되는 미모로 여겨졌다.
아니, 연예인들과는 도저히 비교도 할 수 없는 구세주였던 것이다.
모두들 하던 일 멈추고 각자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멋진 폼들을 잡으며
그들이 텐트를 치는 작업을 돕기 시작했다.
돕는 수준에서 벗어나 초속 8미터의 강풍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는 텐트를 위해
모든 노동력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었다. 일행중 몇놈은 텐트의 기둥을 세우며
이 텐트에서 영원히 살아도 무너지지 않게 세우겠다는 듯한
비장한 표정을 보인 놈도 있었다.
굳이 괜찮다는 그 여자들의 얘기를 거의 못들은 척하며
손이 까지고 돌맹이에 부딪혀 발톱이 깨지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마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치는 독립투사처럼 아무 불평없이
텐트를 세우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장엄하고 숭고한 장면인가?
결국 그 노력 때문인지 텐트는 잘 세워졌고
그들 일행과 우리 일행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려 식사 준비를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들 행복한 포만감에 젖은 나머지
식사 준비에 들어가는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겠다고 자진해서 나섰으며
평소에 라면 한번 안 끓여본 선배도 밥을 짓겠다며 소매를 걷어부치고
취사 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일행 한 놈이
그들에게 뭐하시는 분이냐고 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서울에서 왔다는 얘기만 들었지 뭐 하는 사람들인지
이제야 물어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그 여자들의 대답은
맑은 하늘에 벼락과도 같았다.
“저희는 지금 OO여중 3학년이에요.
친구들끼리 왔는데 이따가 저녁먹고 다시 돌아갈 거에요...”
중학생이라는 충격적인 얘기에 식사준비를 하던 일행들이 모두 말을 잊었다.
말을 잊은 정도가 아니라 행동도 멎었다.
행동만 멎은게 아니라 숨도 멈출 것만 같았다.
갑자기 밥이 아니라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그리고 찬찬히 그 여자들을 쳐다보니 정말 나이가 어리긴 어려 보였다.
여자에 눈이 먼 일행들은 6명의 여자라는,
절묘한 수학적 조합에만 신경 쓴 나머지
연령 및 성향 분석 전혀 눈여겨 보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하던 일련의 행동들이 졸지에 선행으로 바뀌었다.
이왕 하던 식사준비도 열심히 했고
음흉한 속셈으로 친한척했던 질나쁜 행동이 있었던지라
나름대로 신경써서 재밌는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얼른 철수해서 모두들 텐트속으로 기어 들어가 긴 한숨들을 쉬며
빨리 서울로 돌아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들은 그동안 베풀어준 친절에 감동했는지
아니면 우리 얘기가 재미있었는지
급기야 계속 우리 텐트로 찾아와 같이 놀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하는 수 없이 사진도 찍어주고 기타도 쳐주고 재롱도 떨어줘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방에서 ‘성문기본영어’ 같은 책을 꺼내어
공부도 가르쳐달라고 했으면 옷 입은 채로 강물에 몸을 날려
나오지 않았을지도 몰랐는데
그런 비극적인 상황은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그들은 텐트를 걷고 그곳을 떠났다.
얼마나 열심히 세웠는지 걷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지은 죄가 있던터라 열심히 마무리 작업을 해줬다.
떠나면서 한 여학생이 아쉽다며 사춘기 소녀 특유의 눈물을 보였다.
하나가 울기 시작하니까 나머지 학생들도 다 울기 시작했다.
한순간 텐트촌 한 구석에서 난데없는 눈물의 파티가 벌어졌다.
난민촌도 아닌 한여름 유원치 캠프촌에서
눈물로 한순간을 보내고 그렇게 그들은 떠났다.
내심 빨리 갔으면 하고 생각했던 그들이 정작 떠나고 나니
웬지 무언가 커다란 공백이 남는 것처럼 6명이나 되는 인원이
적게만 느껴졌다.
술도 조금밖에 안마시고 모두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날밤엔 거짓말 같은 폭우가 내렸다.
고랑을 파야 한다는 선배의 말대로
남의 텐트도 아닌 우리 텐트에 열심히 고랑을 팠지만
이미 강물이 너무 많이 불어 결국
그곳에서 우리도 이른 새벽에 철수를 해야 했다.
* * *
해마다 피서철이 되면 그때의 생각이 떠오른다.
정말 순수했고 또 그랬기 때문에 더없이 예뻐 보였던
6명의 학생들이 생각난다.
당시 중학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리게 보았지,
가만히 생각하면 5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사실에 혼자서 괜스런 웃음을 띄곤 한다.
역시 푸르른 여름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은 지난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는 당연한 사실인가 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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