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컴퓨터 게임

아하누가 2024. 5. 6. 21:30

 

컴퓨터게임이라는 단어가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전에는 ‘전자오락’이라 하여 오락실이라는 장소를 찾아

피 같은 동전을 넣어야
비로소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전부였다.  (물론 그전에 ‘오트론’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TV에 연결하여 하는 탁구같은 게임도 있었지만

그 형태가 매우 조악하여 일단 논외로 한다.)

그런 오락실에서 주로 할 수 있는 게임은 쏘고 부수는 파괴적인 것이 다수였고
또한 도망다니거나 장애물을 통과하여 목적지에 가는 순진발랄형 오락이
그와 쌍벽을 이루며 전자오락실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파괴적인 오락으로는 ‘스페이스 인베이더스’가 그 효시로,
흑백 모니터 화면 위에 색깔이 들어있는 셀로판 테이프를 붙여 마치 칼라인양
순진한 학생들을 유린했다.
또한 그 오락은 총알의 스피드는 물론 다양한 전술을 발휘할 수 없어
일방적으로 기계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불평등 오락이었다.
따라서 초보자는 자신이 넣은 돈 만큼의 효용을 누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초기 자본과 투자를 필요로 하곤 했다.


그러다가 그 스페이스 인베이더스는 ‘갤럭시’로 이어지며 한층 발전하였고
갤럭시는 급기야 전자오락 불후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갤러그’ 등장의 모태가 된다.
이 갤러그라는 오락은 마치 X파리나 벌 같이 생긴 벌레들의 공격을 피하며
그들을 무찌르는 게임으로

두대의 배행기를 합체할 수 있다는 획기적인 메리트와
3판 끝날 때 마다 <CHALLENGE STAGE>라는,
공격을 안하는 잠자리, 나비 등의 무리가 무수히 날라와

일방적으로 얻어 맞아주는
시스템 때문에 가히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게임이다.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온동네 세탁소가 다 문닫고

오락실을 차리는 바람에
어머니들이 고생하셨고, 전국의 집집마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책상머리에 앉아 책상바닥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책상 바닥을 손가락으로 빨리 두드리는 훈련은
나중에 실전에 돌입했을 때 엄청난 효과를 얻는다.)
그리고 이후 제비우스나 1941, 엑스리온 또는 트윈코브라 등으로
파괴적 오락의 명맥을 잇게 되지만 갤러그 만큼의 열기는 얻지 못했다.

 

 

 

한편 순진 발랄형 오락의 시작은 벽돌깨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화면 상단에 잔뜩 쌓여진 벽돌을

탁구치듯 공으로 하나하나 깨는 게임으로,
운동신경과 순발력을 요하는 비교적 단순한 오락이었다.
하지만 오락이 가지는 기본 기능에 충실했던 이 오락은

다양한 변화를 가진 모델로
업버전 되는 등 꽤 오랜 수명을 유지했다.

그후 방구를 뿡뿡 내품으며 도망다니는 방구차를 비롯하여
미스터Do, 너구리 그리고 보글보글이라는 별칭으로 통하던 버블버블 등이

인기를 차지하며 초등학생과 여학생 그리고

폭력을 싫어하여 새가슴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고등학생에게도
폭발적이진 않으나 꽤 폭넓게 인기를 얻었다.


 

그 이후 게임기술의 발전은 날로 성장하여

둘이 앉아서 겨룰 수 있는 게임들이 발표된다.
축구, 배구 등 각종 운동 종목은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로 대표되는 무술 대결 프로그램이 인기를 독차지하며

전국의 오락실을 무술 대련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열기가 이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전자오락실의 인기를 갤러그 시대로 되돌린 것은
다름 아닌 ‘테트리스’의 등장이었다.
종전의 자극적인 오락에 비해

지능계발이라는 프리미엄을 하나 더 안고 나타난 이 오락은
전국의 초중고생은 물론 성인 남녀, 직장인, 유부남 유부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아 정계 및 관계, 심지어 재계와 연예계에서도
그 열기가 식을 줄 몰랐으며

이 오락 때문에 이민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도형적 모양의 5가지 막대기를 끼우고 돌리고 맞추어 넣는 게임인 테트리스는
순발력을 몹시 필요로 한, 단순하면서도 시간가는줄 모르는 게임이었다.
그러니까 갤러그 이후 10년만에 전국을 강타한 매머드급 오락이 나타난 것이다.
테트리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테트리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유머가 생겨났다.
특히 테트리스와 섹스의 공통점을 비교한 유머는

실제로 한 사회단체의 문제점 제시로
이어져 통신상의 논란을 가져오는 웃지못할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3판 끝날 때다 는 러시안 삐에로와 민속춤이 인기를 끌기도 했었다.

그 이후 일반 전자오락은 뚜렷한 빅히트 작품 없이 소강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나 또 10년이 지났을 무렵, 또 다른 게임의 세계가 열린다.

 

 

                    *        *        *

 

 

테트리스의 출현 10년뒤. 컴퓨터의 보급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PC라는 개념이 현실적으로 생기게 되고

따라서 이를 이용한 ‘게임’이 그전 전자오락의 명맥을 이어받아
호황을 누리게 된다.

 

다만 게임을 하는 장소가 오락실이 아니라
자신의 집, 자신의 책상이 되었으며 게임의 내용 또한 다양해져

이제는 자신이 직접 상황을 만들고 그에 대한 전략을 꾸며 나가는 오락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것도 모자라 인터넷과 연결하여

또 다른 유저와 그 실력을 겨루기도 하는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이젠 오락실이 아닌 ‘게임방’이라는 장소가 곳곳에 생겨날 정도니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이 게임들의 범람은

사회적으로 많은 우려를 낳게 하여
청소년 자녀를 둔 집집마다 가장 골치 아픈 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니
이 또한 가볍게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닌가 보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삼국지를 비롯한 시뮬레이션 게임도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남들이 그 게임에 대한 극찬을 서슴지 않아도

나는 도저히 이해할 만한 정보나 지식은 없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속으로 그것을 이해하려는 조금의 공간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신문 지상은 물론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 컴퓨터게임의
폐해를 논할 때면

얼른 그편에 끼어서 요즘의 세대를 싸잡아 비난하곤 했었다.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청년이 TV에 나왔을 때도

이것은 분명 세상이 망해가는 징조라고 분노하는 척하면서

조국의 어두운 장래를 한탄하기도 했었다. 

 

 

               *        *        *

 

 

그러던 어느날 분당에 사시는 작은 누님댁에 놀러가게 되었다.
이제 막 중학교에 진학한 조카 녀석이 날 보더니

무척 반가운지 컴퓨터게임을 하자고 조른다.

아마 외삼촌은 컴퓨터를 잘 하니까 게임도 무척 잘 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믿었던 외삼촌이 자신이 원하는 게임이라곤
전혀 할줄 모르는 ‘겜맹’임을 확인한 조카가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이제는 다른 것을 하자며 손을 붙들고 자기 방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게임을 만들자고 한다. 게임을 만든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나중에 알아보니 요즘은 자신이 직접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게임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지정하는 것은 물론

게임을 하는데 필요한 제반 규정이나 옵션을 지정하여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게임이야 할 줄 모르지만 그것은 해볼 것 같다는 생각에 조카와 머리를 맛대고
몇시간을 고생하다가 드디어 게임을 한가지 만들게 되었다.

 

게임의 제목은 <新 광개토대왕>.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린 옛 고구려 땅을 찾자는 취지였다.
서기 391년에 재위한 광개토대왕이 동예와 동부여, 후연 등을 차례로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는 내용이다.
게임의 대표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적과의 전투를 앞두고 그 전에 섬나라 일본을
정벌해야 북진을 할 수 있도록 규정이 정해졌는데
섬나라 일본은 방위병만 공격해도 쉽게 정복할 수 있게 했다.
따라서 이미 사라진 우리나라 방위병들의 위상도 드높이고 일본의 저질 문화가
국내에 침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억제하고자 했다.

또한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조금 다르지만 마지막엔 광개토대왕이
신라의 김유신 장군과 백제의 계백 장군과 힘을 합쳐
후연의 ‘아리까리’와 동부여의 ‘누룽지’ 군대를 무찌르는 장면은 스스로 생각해도
압권이었다. (김유진 장군 옆에는 ‘천관녀’라는 기생도 두었는데
조카가 무슨 얘긴지 모르는 것 같아서 그냥 빼버렸다.)

컴퓨터 앞에 조카와 앉아 역사책을 들쳐본지 약 3시간이 지나서 대략적인 골격은
완성되었고 조카는 그 게임을 통신상에 올리면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통신에 업로드했다.

하지만 그 통신사는 개인적으로 가입하지 않은 곳이어서
지금쯤 얼마나 많은 반응을 얻었는지는 모른다.

 

 

                    *        *        *

 

 

그리고 그때 일을 가만히 돌아보니 컴퓨터게임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악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덕에 다소나마 광개토대왕에 대한 연구도 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도 다시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조카 또한 다른 많은 사실들을 저절로 알게 되었음직도 했다.

 

그저 컴퓨터 게임이라는 것을

내 나이의 시각으로 단면적으로만 보지 말아야겠다.
역사가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게임의 세계에도 나름대로 생명력이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개인의 발전에 어떻게 적용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요즘은 광개토대왕 얘기만 나오면 웬지 모를 친근감에 귀담아 듣는다.
아마 지금 중학생인 조카도 마찬가지일게다.

 

 

 

 

 

 

 

 

 

아하누가

그 중학생 조카는 지금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와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중이다.

 

2024년 현재, 그 조카는 수도권 한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추억과 웃음 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WALKING MUSIC  (0) 2024.06.24
나의 고교시절 이야기  (0) 2024.06.24
피서지에서 생긴 일  (0) 2024.06.24
쥬크박스  (0) 2024.06.24
군인과 여가수  (0) 202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