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나의 고교시절 이야기

아하누가 2024. 6. 24. 01:02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의 가장 즐거운 추억들은

고교 시절에 만들어지는 것 같다.
청춘의 순도도, 사고의 발상도 가장 청결하며

조그마한 해프닝 하나하나까지
가장 인상깊게 기억되는 시절이기도 하다.

 

 


한 친구가 있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학생이었지만 한가지 남과 달랐던 사실은
남의 말을 절묘하게 받아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그것을 특별한 기술로 생각하지 않았고

듣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도
한 순간에 웃어 넘기고 말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흘러갈수록 그 기기묘묘한 발상과 순발력은

두고두고 가슴 속에서 잔잔한 웃음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

 

 

             *          *          *

 

 

고교 시절엔 별다른 놀이 거리가 없었다.
그저 친한 친구들 몇 놈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 정도였을까?
그날도 몇 친구가 모여서 잡담을 하는데

문득 한 사람의 일화가 화제로 떠올랐다.


한 미모의 여배우가 한 지식인에게 제안을 했다.
당신의 좋은 머리와 나의 뛰어난 미모가 어울린 2세가 나오면 좋지 않겠냐고.
그러자 그 지식인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러다가 나의 이 형편없는 외모와 당신의 우둔한 머리가 섞인 2세가 나오면

어떻게 하겠냐고.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는 얘기라며 시큰둥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명만 그 일화를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물론 그는 뛰어난 순발력을 가졌다는 바로 그 친구다.

모두들 그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명한 일화도 모르냐는 둥,

그 얘기 정도는 중학생도 알고 있다는 둥 하며
막 본격적으로 그 친구를 몰아 부치려는 순간,

그는 조금도 망설임없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여배우가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지도 안다!!!!”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으로 그 이야기는 끝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 다음 이야기까지 있다니......

 


모두들 긴장했다.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너는 알고 있었느냐’는 무언의 눈빛만이
오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친구는 찬찬히 말을 이어갔다.

 

그 남자에게 한방 먹은 그 여배우는
몹시 자존심이 상한 얼굴로 돌아서면서 혼자말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씨발............"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상황은 모두가 그 친구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책가방을 던지는
난장판이 되었다.

 

 

             *          *          *

 

 

늘 그랬듯이 친구들 몇 놈이 모이는 자리에 주로 등장하는 화제는
이성 문제나 성지식에 관한 화제였다.

이성 문제라면 미팅에 관한 화제가 최우선이었고,
성지식에 관한 화제라면

누가 더 해박한 성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었으며,
그 성지식에 대한 우열은 누가 더 조잡한 포르노 잡지를 많이 봤냐는 사실로
결정되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그런 화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한 친구가 ‘콘돔’이라는 것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서 자연스레
콘돔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중에 대부분이 콘돔이라는 걸 본 일조차 없었던 친구들이라
그 문제는 몇가지 기본 지식에 대한 궁금증을 제시할 뿐이었다.


의견은 분분했지만 내용은 몹시도 단순한 것들이었다.

그것을 왜 사용하느냐, 어떤 효과가 있느냐, 어떻게 생겼느냐는,

지금 생각하면 시시콜콜한 것들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중 한 친구가 그것을 본 일이 있다며

입에 침을 튀며 열변을 토했다.
그 친구의 얘기도 신빙성이 형편없었지만 직접 본 일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모두들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얘기가 한창 진행중인 어느 순간, 한 친구가 넌지시 의문을 제시했다.

 

 

“야 근데 그거 끼고 하면 좀 더 좋대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동안에 알게 된 상식으로 추측만이 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그 친구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말을 툭 내뱉었다.

 

 

“야! 그게 좋을 리가 있겠냐?”

 

 

너무도 단호한 그 친구의 말투에 모두들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그 친구에게 열화와 같은 공격을 퍼부었다.

본일도 없다는 놈이 어떻게 아냐는 식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순발력이 뛰어난 그 친구는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대답하여 모두를 할 말이 없게 만들어 버렸다.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야! 니네들 우비입고 샤워한다고 생각해봐!”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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