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추억 들국화

아하누가 2024. 6. 24. 01:11



#0

 

매우 오래전에 쓴 글이지만 새로운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들국화에 대한 새로운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다시 정리하곤 했다.
그러면서 다시 추억을 더듬고,

이러한 추억의 그리움은 새로운 삶의 큰 힘이 되곤 했다.
다시 글을 정리하는 지금은 지금은 2012년 6월.
들국화를 처음 만난 것도 6월이었으니

6월은 내게 들국화와의 인연을 깊게 만들어주는 달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들국화 멤버와 인연이 있었던 적도 없고

당연히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다.
그저 콘서트장 한 구석에서 자리를 묵묵히 채워준 한사람의 팬이었을 뿐이다.

 

 


#1

 

1983년. 한장의 앨범을 구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앨범으로 이영재와 이승희,
그리고 최성원 3명의 이름으로 나온 옴니버스 앨범이었다.

그 앨범에는 최성원의 노래로 [매일 그대와]가 있었고,
이영재의 [지난 겨울] (이는 나중에 한영애의 앨범에 ‘호호호’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된다),
그리고 나동민 작곡의 [내가 찾는 아이]도 보게 된다.
(물론 이 노래도 나중에 최성원의 인터뷰를 통해 최성원 작곡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나동민이 최성원과 6촌 형제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조용히 들어요'라는 곡도 최성원 곡이라고 했다.)

아마 이 앨범에 혼성 듀엣으로 부른 <난 알았네>도 있었을 것이다.

분명 있었다.
이승희와 이화로 기억한다.

 

또 한 사람 이승희는 ‘한잔의 추억’으로 유명한 가수

이장희의 동생이라고 알고 있다.
혹시 이후에 이승희라는 가수는 아이들 동요만드는 일에 치중하지 않았던가?
이것은 30년째 풀지못한 궁금증이다.

 

여기에 한가지 궁금함을 더하자면 이장희 - 사랑과 평화 - 들국화의 인연이다.

이것도 아직 모르겠다.

 


그 앨범을 들고 좋아하던 때가 아직 새롭다.

 

 

 


#2

 

1984년.

종로 3가 피카디리 극장 지하에 위치한 SM이라는 레스토랑을 알게 되고
그 곳에서 노래하던 남성 트리오를 만나게 된다.
그중의 한사람이 최성원이다.
그는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명곡의 작곡자인 최영섭님의 아들이기도 하다.

 


당시 베이스 키타를 들고 앉아 있는 사람이 최성원이었고,

통키타의 장발이 전인권, 그리고 피아노를 치던 사람이 허성욱이었다.

이것이 내가 알게된 들국화의 첫모습이었다.
그때 부른 노래가 EAGLES의 TAKE IT TO THE LIMIT이었는데
보컬이며 절제된 연주가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또한 거기서 JACKSON BROWN의 명곡 ROSIE
BOB SEGOR & SILVER BULLET BAND의 명곡

STILL THE SAME도 듣게 된다.

 

 

그 이후로 나는 SM에서 살다시피 했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가기에는 적잖은 부담을 가질만한 곳이었으나
나는 생명 유지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지출만 제외하고는

모든 돈을 이곳에 투자했다.
차비, 점심값에 학교 수업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

 

 

더욱이 이 세 사람의 이름은, 내게 있어 최고의 명반이라고 치는
<따로또같이 2집>의 '뒷면에 도움 준 사람'의 명단에서

고스란히 발견되기도 해서
이들의 관계가 머리 나쁜 내게 상당한 고민거리를 안겨주기도 했었다.
정말 오랜 궁즘증이었고

내가 개인적으로 이들과 가깝게 지내지 않는 한 아직도 풀 수 없는 숙제다.
나는 단지 다른 앨범을 뒤지며,

마치 스토커처럼 혼자만의 연구와 추리를 이어갔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또 한장의 앨범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노래전시회>라는 옴니버스 앨범으로

거기서 전인권이란 이름으로 부른 <그것만이 내세상>을 처음 듣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에서는

이광조의 목소리로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고
또 그 앨범을 프로듀싱한 최성원의 목소리로

<제발>이라는 명곡도 들을 수 있었다.

 

 

 

 


#3 

 

1985년 6월이 되었다.
드디어 들국화라는 이름을 가지고 첫 콘서트를 하게 되었는데
장소는 대학로에 있는 파랑새 극장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표를 예매하고 이들의 공연을 보았다.
말없이 등장한 그들의 첫 음악은
 HOLLIES의 HE AIN’T HEAVY HIS MY BROTHER였는데 원곡보다

 훌륭하게 소화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첫 음반에 실릴 것이라며 3곡의 노래를 했는데
그것이 <그것만이 내세상>과 <매일 그대와> 그리고 <사랑일 뿐이야> 였다.
사랑일 뿐이야는 우순실의 음반에서 들었던 적이 있는 곡으로
조금 실망스럽게 들었던 곡이었는데 이들이 하니까 전혀 느낌이 달랐다.
특히 마지막 엔딩 부분은 현재 앨범에 있는 것보다 훨신 더 길게 편곡하여
마치 <유라이어 힙>의 대표곡 JULY MORNING의 끝부분
신지사이저 바리에이션을 듣는 것만 같았다.

이 대목이 조금 이상하지만

분명 내 기억으로는 우순실 앨범에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이 콘서트를 기억한다.
어눌한 말솜씨 때문에 진행할 사람을 따로 불렀다며, 조영남이 등장했다.
당시로서는 이게 무슨 그림이 되기나 한건지 황당했지만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나서 최성원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김민기, 조동진의 음악적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조영남이란 뜬금없는 인물의 등장도 애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한 것은 시간이 많이 흐른 뒤였다.

 


초대손님 같지 않은 초대손님으로 하덕규가 나왔었고(비둘기에게 불렀음),
그리고 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김수철이 무대로 나가

간단히 인사를 한게 고작이었다.
소극장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 나는 대한민국 청년의 한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또한 향후 대통령에 출마하실 지도 모르는 아버님을 위해

논산훈련소에 입소하게 된다.

 


입대 4개월이 지난 그해 10월,
친구가 들국화 첫 앨범을 가지고 내가 군복무하던 곳으로 면회를 왔다.
예상외로 <행진>이란 타이틀곡은 처음 듣는 곡이었다.

 

 

 

 

#4

 

1988년인지 1989년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그들의 [아듀콘서트]를 보았다.

같이 간 사람은 지금 아내가 되었고,
나는 그것이 마지막으로 보는 들국화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것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80년대 가요계의 비극 2가지를 겪게 되었다.
하나는 이 들국화의 해체였으며 또 하나는 유재하의 죽음이었다.

 


마지막 콘서트를 돌이켜보니 의외로 가장 인상이 남았던 곡은

<너랑나랑>이었다.
그리고 전인권이 부르던 최성원의 솔로곡 <이별이란 없는 거야>도

아직 기억에 생생하다.

 

 

 

 

#5

 

이듬해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전인권의 콘서트를 보았다.
전인권만의 콘서트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하다.

다시는 전인권의 콘서트를 보지 않기로 했다.
그가 싫어서가 아니라 자꾸 들국화에 대한 그리움만 쌓여가는 것 같았다.
또한 가끔 그의 돌발적인 성격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가 최성원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스탭을 소개할 때 나타난 한 엔지니어가 최성원의 동생이라는 말에
또 다시 만날 들국화의 모습에 희망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객석 한구석을 조용히 지키고 있는 한 팬의 순진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6

 

그리고 10년이 지난 1998년 6월 5일. KBS 홀에서 그들의 해후를 보았다.
공연 이상의 감흥이 내게는 충분히 있고도 남았고
또한 많은 시간의 흐름이 거짓말처럼 되돌아 간 것만 같았다.

 

최성원은 이렇게 말했다.
팬들과 함께 같이 늙어 간다고......

 

하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다. 15년전의 들국화가 또 내 앞에 오기에
나 또한 15년전의 나로 돌아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또 다시 들국화를 만나게 될 때는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이날 공연의 동기는 아마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허성욱 때문이라고 했다.
객석에서 다함께 <축복합니다>에서 첫소절을 불렀던,

허성욱의 그 대목을 합창했으니까.

 

 

 

 

 

#7

 

2001년 2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들국화 헌정앨범 기념 공연이 있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그런 잡탕식 공연은 좋아하지 않는다.
차를 타고 어딘가로 지나치다

길거리에서 본 플랭카드에 쓰인 날짜와 장소만의
기억으로 무조건 예매하다보니 원치 않는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인데,
아무튼 내가 참석한 들국화의 공연의 연장 선상에 있어

나름대로 필요한 자리이긴 했다.

 

 

윤도현, 이은미, 신해철, 권인하, 김장훈, 동물원 등이 노래를 했지만

객석에 앉아서 느끼는
이들에 대한 객석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다들 들국화를 좋아하니 헌정앨범에도 참여했겠지만

그들은 그저 또 다른 가수일 뿐
객석에 앉아 있는 팬들의 정서를 모른다. 몰라도 한참 모른다.
들국화가 공연중에 신나는 곡 연주한다고 청중에게 일어나라는 말을 하던가?
그런거 하지 않는다.
오래전 어떤 공연에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이 노래만 하다
끝나버린 적도 있으니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들국화의 그런 부분이다.

공연에 참여했으면 참여한 사람들을 가장 편안하게 하는 콘서트란
청중에게 말시키지 않고, 일어나라고 시키지 않고
그저 노래를 듣던지 말던지 편안하게 앉아 있다가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노래로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니 분위기를 억지로 만들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유로 미사리를 비롯한 라이브 까페를 찾지 않는다.
그곳은 대부분 지나가다 들른 사람이나 분위기 때문에 오는 사람들로,
가수가 노래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결코 아니다.
무성의한 청중이 싫어서 나는 라이브 까페에 가지 않는다.

 


공연 말미에 들국화가 30분간 노래했다.
세종문화회관에 온 모든 사람이 일어서 있었다.

다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공연을 마치고 너무도 들국화 공연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돌아오는 길엔

언제 또 공연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기대뿐이었다.

 

 

* * *

 

 

70년대의 학번을 가르켜 청바지와 생맥주 그리고 통키타 세대라고 한다.
그런가하면 90년대 학번들은 서태지 세대로 대변되기도 한다.
두 세대의 특징은 가요와 노래에 있어서

우리 나라 문화에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사건과
음악으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80년대 학번은 무엇일까?
나는 80년대 학번 또는 그와 동년배의 세대를 들국화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70년대 학번 세대가 변화에 대한 갈망을 부르짖고

90년대 학번 세대가 개성을 노래했다면
들국화 세대는 감성적인 만족과 드러내지 않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가슴깊이 간직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또한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가 가진 순수에의 열정, 그리고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아끼던 세대들이다.
따라서 요즘 TV 화면을 휩쓸며 10대 문화를 선도하는 랩과 힙합 음악이
386세대들에게 절대 어필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386 세대의 감성을 나는 좋아한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감성에 묵묵히 관망할 줄 아는 고상함이 나는 좋다.
아마 그룹 들국화가 또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아니면
그저 그때 그 상태로 머무르던 적어도 386세대에게 있어서 들국화는
진하디 진한 추억으로 가슴속 어딘가에 깊이 남아 있을 것이다.

 

 

 

 

 

#8

 

이렇게 나는 오래전에 이런 글을 쓰고

다시는 들국화 콘서트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2012년 5월,

뉴스를 통해 최성원과 전인권 그리고 주찬권의 만남을 듣게 되고
다시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을까?

 

그동안 콘서트를 못한 것은 아마도 전인권의 컨디션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보도에 따르면 상당히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다니 이 또한 반가운 뉴스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과 함께 서울 공연에 가기로 했다.
초등학생인 작은 녀석은 아직 이런 감성을 잘 모를테고,
마누라는...... 그냥 안가는게 도와주는 길이다.

 


아는 사람만 가자.

가서 충분한 정서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 가는 게 옳다.
이미 들국화 음악에 푹 빠진 큰 녀석이

대뜸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내게 물었다.

 


"아버지, 이 정도 목소리만 나오면 괜찮을 텐데요......"

 


오래된 TV속 장면인데 전인권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전성기 정도는 아니었지만 힘이 남아 있다.
녀석은 전인권 아저씨 목소리 컨디션이 제일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음악을 들을 때 오디션 프로그램보듯 들으면 안된단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음악을 들으면서 내 마음이 얼마나 움직였냐.... 이거 아니겠니?"

".....!"

 


녀석은 알듯모를 표정을 지었다.

 

 

이제 7월이 되면 오랜만에 들국화를 본다.
여전히 나는 객석 한구석의 팬이겠지만 그래도 마냥 행복할 것이다.


들국화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나나 들국화 멤버나 그냥 건강하게 오래 살아있자는 것이다.

 


그래야 언젠가 또 만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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