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가끔 동료들과 탁구장에 갔었다.
회사에서 머잖은 곳에 있는 탁구장은 시장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었다.
퇴근후에 탁구를 한판 즐기고 나오면 이미 시장이 문닫은 시간이라
이곳저곳 주변을 둘러볼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해가 길어지면서 주변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재미있는 간판 하나를 어렵지 않게 발견했다.
<용한 약국>
약국이었다.
커다란 간판에는 '용한약국'이라는 빨간 글씨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얼핏 스치듯 지나친 그 간판이 집으로 돌아올 때쯤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이후 그 이름과 이름을 짓게 된 기발한 발상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약국 이름이 용한 약국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지은 이름일 것이다.
그 당시엔 의약분업이란 제도는 알지도 못할 때여서
많은 서민들은 약국을 병원처럼 이용했었다.
그런 약국이 용하다는데 뭔 말이 필요하랴.
약국에 찾아가는 사람은 병을 고치러 가는 것이고,
병을 고치는데는 환자에 맞는 약을 조제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약이 사람의 병을 고치게 하면 그때야 비로소 '용하다'는 말을 하게 된다.
따라서 '용하다'라는 말은 형식적인 인사나 감사의 표시가 아니고
사람의 힘을 넘어선 초인간적인 능력에 대한 최상극의 칭찬이요
존경의 표현인 셈이었다.
그런 표현으로 약국이름을 지었으니 이름으로 따졌을 때
이보다 더 신뢰감이 가는 약국 이름이 또 있으랴.
며칠 뒤 또 탁구장을 찾았다.
탁구장에 나오면서 며칠전의 그 감동이 생각나 다시 한번 약국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 <용한약국> 맞은 편에는 또 하나의 약국이 있었다.
거리로 보나 생긴 모양이나 진열장 구조로 보나,
또 주요 고객의 분포지역으로 보나
두 집은 경쟁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약국의 이름은 뭔지 잠시 고개를 들어 간판을 쳐다보았다.
<다나약국>
혼란이 극도에 달하고 있었다.
그 간판을 보기전만 해도 이 세상에는 <용한약국>보다
더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약국은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용하다는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며
또한 좋은 이미지를 간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나약국>을 보는 순간 혼동스럽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찬사의 궁극적인 의미는 병을 낫게 해준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다 낫는다는 것은 용한 것 이상이라는 뜻이 된다.
이를 조금 더 수학적, 어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용한'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는 '다(all)'라는 의미는 없다.
그리고 용하다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발휘되는 의술이 난이도가 높은 중병(重病)에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용하다는 말에는 '다 낫게 해준다'는 의미는 들어있지 않다.
이러니 함수관계를 놓고 보면 다음과 같은 이론이 성립된다.
<명제 1> 용하다고 다 낫게 하는 것은 아니다.
<명제 2> 모든 병을 낫게 하면 무조건 용하다.
따라서 이같은 함수관계의 결과 약국을 찾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용한 것도 좋지만
그보다 병을 확실하게 낫게 해준다는데 더 메리트를 느낄 것이다.
더욱이 우리 특유의 정서라고 할 수도 있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이 결부되기 시작하면
두 약국의 경쟁력 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이 두 약국의 이름을 한번에 능가할
더욱 강력하고 획기적인 약국 이름의 작명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발한 발상과 기괴한 사고에 있어서 남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나도
별로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선 약국 이름이라는 게 생활에 늘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중요한 일들 틈에 소리없이 묻혀버렸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내가 좋은 이름을 떠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이미 경쟁 대상을 알게된 것 때문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나는 약국 이름 대신
시대를 초월해 후세에 길이 길이 남을 명언을 내뱉게 된다.
창의력을 요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또는 자녀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부모, 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사례나 전례를 알게 된 순간,
발휘될 수 있는 상상력의 폭은 100분의 1로 줄어든다."
* * *
그리고 대충 10년이 지났다.
다시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오래전의 그 작은 일을 기억하게 된 것은
오늘 오후의 일이다.
요즘 자주 검색하는 디지털카메라의 사진들이 있는 어떤 인터넷사이트에서
아주 재미있는 사진을 봤다.
엽기적이고 우스꽝스러운 사진들만 게시하는 사이트였는데
누군가 재미있는 이름의 약국이라며 간판과 사진을 올렸다.
클릭하는 순간 10여년전의 그 아련한 추억과 또한 발상과 상상의 한계,
시대적 변화가 발상의 변화에 주는 영향 등 수많은 생각들이 한번에 밀려왔다.
사진으로 본 약국 간판에 선명하게 새겨진 약국의 이름은 이러했다.
<가까운약국>
의약분업이 정착된 요즘 세상에 이 보다 좋은 이름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광고는 주요 매체의 핵심 시간에 나오는 광고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거라지?
그렇다면 의사나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많이 전해진 이름이 또 있을까?
누군지 아주 재미있는 발상을 한 것 같다.
아마 약국 이름을 지은 사람의 상상력도 이에 못잖게 훌륭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러한 상상력만으로는 살 수 없다.
사업도 성공도 상상력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상상력을 뒷받침할 만한 노력과 정성이 없다면 상상력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럼 여기서 또 후세에 길이 남을 명언을 던지며
쓸데없는 회상으로 점철된 이 기나긴 글을 마친다.
"상상력이 좋다고 성공하진 않는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하면 실패할 수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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