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경. 중학생이던 내가 팝송 듣는 일에 재미를 느낄 무렵이다.
당시 ANAK이라는 필리핀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미국와 영국노래가 전부였던 팝송 시장에 아시아권 노래가 알려진 것이다.
타갈로그어로 불려진 이 노래는
언어의 차이에서는 충분히 이국적인 이미지를 느끼나
멜로디의 친숙함에서는
그 동안 들어오던 팝송과는 또 다른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필리핀 노래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 노래가 처음이고
그 뒤로도 필리핀 노래는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없을 것이다.
자, 그러 필리핀이란 어떤 나라일까?
사회적인 상식으로 알기에 필리핀이란 나라는
7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며
동남아에 위치하고 있어 일년 내내 더운 날씨이며
전 국민의 80%가 카톨릭 신자인 아시아 유일의 카톨릭 국가다.
한때 잘 살기도 하다 오랜 독재정권에 경제가 몰락했으나
국민들의 높은 민주화의 열망은 우리나라도, 미국도 못해본 여성 대통령을
두명이나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러한 외견적 사실은 인터넷에서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필리핀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가끔 우리가 호텔이나 바(Bar)에 가면 음악을 연주하는 외국인 밴드를 보게 되는데
그 밴드의 80%가 필리핀 출신이다.
물론 인건비가 저렴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들이 가진 음악적 재질과 감상이 풍부한 것도 그 이유가 있다.
더욱 이들이 한국 시장에 잘 통하는 점은 이들이 주로 즐겨 부르는 노래가
70년대와 80년대의 팝송들이어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음악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와서 음악활동을 하는 필리핀 밴드는 실력이 좋아서라기보다
에이전트를 통해 진출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모습만으로 그들의 음악에의 열정과 취향을 알 수는 없다.
나는 필리핀에 자주 간다.
한번 간 나라라면 그 다음 여행엔 다른 나라를 방문할만도 하지만
여전히 나는 필리핀을 찾는다.
그곳에는 우리가 이미 지나쳐버린 1970년대와 1980년대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음악을 통해서 말이다.
필리핀이 이렇게 음악적으로 발달하게 된 이유는
오랜 미국의 지배에 그 영향이 있다.
미국에게 실질적인 지배를 받기전 필리핀은 33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그 영향으로 필리핀이 카톨릭 국가가 되었다.
국민들의 모든 정신적인 면이 카톨릭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국은
정신적 지배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언어와 문화를 주입한다.
이 나라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코카콜라와 청바지로 대표되는 미국식 문화중
노래 문화가 가장 정서적으로 잘 침투하여
원래 노래를 즐기는 민족이었던 필리핀은 팝송을 국민적으로 받아들인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장 활기있게 받아들이던 70, 80년대의 음악이
이들에게는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고 더 이상의 침투가 활기차지 못했다.
따라서 아직도 이들은 70,80년대의 노래들을 마치
우리나라 클래식 연주가들이 더 갈고 다듬어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것처럼
이들은 이 노래들을 원곡과 똑같이 연주하고 부르는 것을
또 하나의 재미로 삼아 연습하고 노래했다.
필리핀에서는 어느 술집이나 바에 가도 생음악을 연주한다.
규모의 크고 작음에 각각 어울리는 무대가 있고 연주자가 있다.
또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노래를 하는 이들은
남에게 보이려는 목적도 물론 있지만 자신이 즐거워서 한다는 점이다.
잠깐만 보아도 그 느낌은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마닐라 시내 말라테市의 마비니 거리(알아두면 좋다)에
Cowboy라는 커다란 클럽이 있다.
현지 발음은 ‘꼬보이’에 가깝다.
거의 체육관만한 크기의 이 바는 대형 호프집을 연상하면 된다.
관광객이 오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즐겨 가는 곳이다. (관광객이 가는 곳은
마카티라는 번화가의 샹그릴라 호텔 옆에 있는 Hardrock Cafe다. 이곳도 굉장하다)
앞에 커다란 무대가 있는데 주말 프라임 타임엔 수준급 밴드가 올라온다.
필리핀에 다섯 번째 가면서야 겨우 찾은 이 보석같은 곳.
잠시 휴식 시간을 마치고 밴드가 올라온다. 객석은 이미 열광의 분위기.
이들이 연주한 첫 곡은?
그룹 Queen의 보헤미안 랩소디. 시작부분의 아카펠라를 듣는 순간
그 전율에 술잔을 떨어뜨린다.
아마 퀸이 직접 나와도 이렇게 노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 Another Brick in the Wall(Part1),
I wanna know what love is (Foreigner) 등의 노래.
뿐만 아니라 I Will Survive등의 댄스곡, ABBA의 Dancing Queen 같이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노래.
아마 이 공연이 내가 그동안 참석했던 어떤 공연보다
더 훌륭하고 감동적인 공연이었을 것이다.
자, 다시 ANAK으로 돌아가서 -
이 노래를 부른 Freddy Aguilla는 이곳에서는 거의 영웅이다.
후에 이 가수는 민중가수로 스타일을 바꿔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니 우리로 말하면 딱 김민기인 셈이다.
약간 허름한 술집에 가서 연주하고 있는 밴드에게 이 노래를 신청하면
무척 반가와 한다.
어떻게 아냐고 몇 번을 묻는다.
그리고 노래를 하는데 그 모습이 매우 진지하다. 아니, 경건하다.
마치 우리나라 축구선수가 경기에 앞서 연주되는
애국가를 따라부르는 듣한 느낌이다.
딸과 아들의 구별 없이 그저 자신의 ‘자식’을 지칭하는 이 ANAK은 단순하면서도
우리정서와 어울리는 멜로디의 반복이 특징이다.
반주도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악기의 구성으로 편곡되어 어느 밴드가 연주해도
어렵지 않게 연주가 가능한 국민가요다.
* * *
오랜만에 가방안에 처박아둔 MP3 플레이어를 꺼냈다.
언제 입력시켜 두었는지 오랜만의 음악들이 귓가를 울린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 노래 ANAK이 흘러나왔다.
1979년에 처음들었던 바로 그 노래.
중학교 3학년이던 내가 이층 다락방에서 조그만 카세트라디오로 팝송을 녹음하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뒤로 필리핀에 간 일, ANAK을 현지에서 듣던 일,
또 다시 필리핀을 찾은 일....
수많은 일들이 이 노래 ANAK과 함께 머릿속을 스쳐간다.
음악을 좋아하는, 팝송을 좋아하는 386세대라면
반드시 이 나라를 찾아볼 것을 권한다.
외국에 가는 비용중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방문할 수 있는 나라다.
변두리 허름한 바에서 50페소(1500원)짜리 맥주 한잔을 마셔도 본전을 뽑는다.
이미 2000년대에 접어들어 지난 음악들을 힘들게 찾아야 들을 수 있지만
아직도 1980년대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이 지구상에 있다는 사실이 매우 다행스럽다.
필리핀 국민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다른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발전하더라도 음악 문화는
지금 이 상태로 멈춰주었으면 한다.
너무 내가 염치없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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