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오래전 라디오 공개방송

아하누가 2024. 6. 29. 22:11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니 대략 1970년대 말로 기억된다.
당시엔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다.
저녁 7시경 ‘노래하는 곳에’라는 공개방송이 있었는데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했다.
이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상당히 자신없는 부분이나

그때가 1970년대말이라는 것과
그런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공개방송의 특성에 맞게 대부분 당시 잘나가는 인기가수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공연으로 채웠고, 가끔 약방의 감초인양 개그맨들이 나와
중간중간 지루할 수도 있는 관객을 웃기는 역할을 했다.
그때 나온 개그맨들은 주병진, 이성미, 조정현 등으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들이 진행하는 코너는 대부분 진행자와 농담을 주고 받으며
‘허튼 소리’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저 분위기 한번 바꾸는 역할 밖에 못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당시 주병진이란 개그맨이 이 코너를 통해 개그맨으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었는데
아주 어렴풋이, 그러나 내용은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주병진이 나와서 한다는 얘기인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 삼국시대의 전투장면은 사실과 달랐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삼국시대의 삼국이 각기 특정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그 특정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면서 한술 더 떠서 황산벌 전투를 예로 들며
계백장군과 화랑 관창, 그리고 김유신 장군의 대화를 껄쭉한 지역사투리로 재연했다.
라디오를 통해 느낀 객석의 반응은 냉담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왜 이리 우스웠던지 며칠간 내내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던
그때가 기억난다.

아니, 그것이 단지 며칠간이 아니라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꽤나 기발한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 기발한 발상에 상당히 감동했었는지도 모르겠다.

 

 

 * * *

 

 

얼마전 TV 연예 프로그램을 보다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를 보았다.
삼국시대 상황을 코믹하게 연출했다는데

배우들이 각 지역 사투리로 무장했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커다란 특징이었다.

기분이 묘하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그 품질도 중요하고 또한 그 아이디어가 너무 앞서가도
안되는 모양이다.
그리고 좋은 아이디어는 생명력도 강해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맛이 남아 있는 가보다.
그 영화를 제작한 사람은

내가 그랬듯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의 그 방송을 들었을까?
그리고 보니 주병진이란 개그맨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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