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웃음 사이

비누

아하누가 2024. 6. 29. 22:12


 

 

세수를 할 때마다 낯선 비누를 만진다.
이 비누가 도대체 어느 회사에서 나온 무슨 비누인지 모르겠고,
도무지 무슨 향이 나는 건지 안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여느 비누와 같이 미끄럽고 또 그 미끌거림은 물에 의해 씻겨나가니
비누는 분명 비누인데 어떤 비누인지 알 수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비누를 직접 산 일이 없다.
그저 집에 있는 비누를 아무런 불만 없이 사용했을 뿐이다.
어떤 날은 향기가 아주 맘에 드는 비누도 있었고

어떤 날은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독한 향기를 가진 비누도 있었다.

 

갑자기 내가 아는 비누를 몇 가지를 생각해본다.

일단 인삼향기가 특이해서 기억하는 인삼비누,

어렸을 때 비누의 대명사였던 다이얼비누,
이를 유사하게 만든 데이트비누,
그런가하면 아이들 쓰라고 나온 유아비누와 우유비누도 생각난다.
거기에 딱딱해서 오래 쓴다고 광고하던 비놀리아와 그 유사품들,
물에 둥둥 뜬다고 광고하던 아이보리비누 등

광고에 의해 기억이 나는 것들도 있다.
워낙 유명 메이커인 존슨 앤 존스나 도브도 당연히 비누가 나올 것이다.
식물나라도 기억에 나고 얼마 전 주식에 관심 많을 때 까르푸에서 스치며 지나친
블루칩이라는 비누도 생각난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비누 하나, 이쁜이 비누다.

 

 

이쁜이 비누.
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름이 정확한 브랜드였던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일반적으로 모두들 그 비누를
이쁜이 비누라 불렀다.
동그랗고 작은 모양에 빨간 색상이 인상적이었던 이 비누는
1970년대초 빨랫비누가 피부미용까지 관리하던 시절,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수비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주 어렸을 때, 해마다 겨울이면 학교에서 국군장병위문품을 가져오라는
숙제를 많이 내주었는데 그때마다 그 비누가 등장했다.
누나들이 항상 그 비누를 위문품으로 내는 아이들의 흉을 봤던 것을 기억하니
그 비누가 좋은 비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비누로 쓰인 ‘빈티’의 상징이었던 모양이다.

 

 

아침에 무슨 향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비누로 세수를 하다
문득 이 이쁜이 비누가 생각났다.
약간 싸구려 느낌이 나는 듯해도 비누라는 것은 적당히 향기가 있어야 한다.
고급이라는 느낌을 가지는 향수의 냄새보다 풋풋한 비누냄새가 더 좋다.
나이가 들어서 일까?
잘 만들었다는 향수나 화장비누보다 예전에 막 쓰던 비누가 훨씬 냄새가 좋다.
예전에 막 쓰던 비누는 가끔 동네 목욕탕에 가면 자주 그 느낌을 찾는데
아쉽게도 그 비누가 어떤 비누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이가 들면 자꾸 예전 것들을 찾게 되는 모양이다.

 

 

 

 * * *

 

 

 

저녁에 문득 세수를 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비누야? 아무 냄새도 안나고 거품도 많이 안나는 것 같고...”

 

 

그러자 아내는 입을 삐죽 내민 채 내 질문에 상당한 불만이 있는 듯
뾰로퉁한 표정으로 바뀐다. 

 

 

“그거 당신이 작년에 미국 갔다 오면서 사온 거 아니에요! 그것도 열개나....”
“......?”


 

나이가 들면 옛것만 찾는 게 아니다. 머리도 나빠진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