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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사람, 꼼꼼하지 않은 사람

언젠가 누나집에 갔을 때아내는 내 모습 중에 뭔가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한 듯누나에게 말을 꺼냈다.  "안그런 것 같은데 주차 할 때 보면요,주차선안에 정확히 차를 세워요. 놀랍죠?"  워낙 있는 그대로 사는 사람이라 옷을 다려 입는 일도 없고청소 한번 제대로 하는 일이 없으니아내에게 있어 나라는 사람은 꼼꼼한 것과는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춰진 지도 모르겠다.물론 청소 안하고 버티는 인내를 미덕이라 생각하는 나이고 보면아내의 그런 생각 또한 어쩌면 당연한 생각이다. 사람의 성격이란 것이 대부분 양면성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그럴 것 같은 사람도 반드시 그렇지 않은 면이 있고 이런 저런 상반된 면을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다.매일 매일 함께 생활하는 부부라지만형제보다 오히려 서로를 모르게 ..

고추

남자 아이들이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물으며자신의 신체 특정부위를 가리킬 때대부분의 엄마나 아빠,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추"  이중에는 '꼬추'라고 일부러 강한 발음을 하며약간의 장난끼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어떤 할머니는 '잠지'라고 말하며 고추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려는깊은 배려를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그 모든 대답의 공통점은아이의 질문에 '자X' 라던가 '성기', '생식기' 등의의학적이며 생물학적 언어를 구사하여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집 또한 여느 평범한 집의 경우와 마찬가지여서'고추'라고 가르쳐주었다.아니, 다시 설명하면 그 단어말고는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침에 큰 녀석 손을 잡고 놀이방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골목길에 가을 햇살을 환하게 받은탐스러운 빨..

기억

그렇게도 덥던 날씨가 밤이 되니 바람이 제법 서늘하다.아무리 강한 태양도 계절에는 당할 힘이 없는지 그 위력은 점점 약해지고.....창문을 두 개 다 열어두니 자고 있는 아이가 쌀쌀할 것만 같다.그래서 그러는지 몸을 잔뜩 쪼구리고 있다.적당한 두께와 크기를 가진 이불이 눈에 띄어 얼른 아이에게 덮어준다.혹시나 뒤척이다 발이라도 이불 밖으로 나갈까봐 뒤척일 방향을 예상해서그쪽에 넉넉히 여유를 두고 덮어주었다.덮어주고 나니 깊이 잠들어 있는 녀석의 표정에도뭔가 모를 흐뭇함이 보인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를 번뜩 스치는 무엇.기억에는 분명 없지만, 아니 기억하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겠지만내가 그렇게 뒤척일 때 이불을 덮어준 사람 또한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였겠지......      아하누가

안경

오래전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머리맡에 벗어 둔 안경을      찾아 쓰는 일이다. 대부분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아침 첫 일과이기도 하다.       그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안경을 썼는데도 세상이 밝아지지 않았다.      안경을 쓰면 뿌옇던 세상이 밝아져야 함이 상식인데도      세상이 밝아지기는커녕 더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해보니      아들 후연이가 머리맡의 안경을 하도 만지작거려 이미 안경알은      세상을 밝게 볼 수 없을 만큼 뿌옇게 더렵혀져 있었다.      반짝이는 것이어서 흥미로운지 아니면 무언가 그 안에는 재미있는      것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로 생각했는지 ..

바쁜 오후의 전화 한 통화

오후가 되니 몹시 바빠졌다.      시간 단위로 일정이 있었고 그 일정에 늦지 않기 위해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꽤 많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곳이 있어 그 틈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난데, 이게 힘들어 죽겠어. 마치 인기 스타라도 된 것 같은 일정이네,    약속이 줄줄이 있고 말이지. 힘들어 죽겠는데 뭐 없을까?"        부부지간에 오가는 말치고는 아주 정겨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일에 지쳐 바삐 움직이는 남편에게 아내란 존재는 얼마나 편안한 휴식인가.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도 나오고 영화에도 흔히 나오지만      지겹거나 진부한 느낌은 들지 않는 표현이다.      물론 이것도 가끔 해야지 주변에 동료들 많을 때 하면      팔불출 내지는..

협박

"여보, 큰애가 뭐라는 지 알아요?"          사무실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 녀석이 또 사고를 친 걸까?     아내의 목소리로 보아 그것은 아닐 것 같고     또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있는중인 모양이다.      "불어펜 알아요? 그거 사오래요"                  불어펜인지 부루펜인지 얇은 판에 잉크를 입으로 불어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케이블 TV 어린이 방송에서 광고를 본적이 있다.     녀석이 어느새 TV를 보며 상품구매를 할 줄 아는 나이로     성장한 것은 좋으나 시도때도 없이     충동구매를 하는 것까지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뭔지는 알지만 이 시간에 그걸 어디서 사오라고. ..

생일

날짜를 쓰고 보니 심상치 않은 날이다. 바로 내 생일이다.     이쯤이면 남들에게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고 나만의 날이라는     좋은 기분에 한껏 기분을 낼만도 하지만     내게는 그리 반가운 일도 아니고 그리 특별한 날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만 해도 제법 제때에 생일을     챙겨먹곤 했다. 선물을 받은 기억도 나고 제법 맛깔스럽게 보이는     밥상을 받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 좋은 날의 기억을 어렴풋이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집안 환경이 생일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인정하지 않았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로 이날 엄마에게     선물 사달라고 조르다 흠뻑 두들겨 맞은 ..

놀이방에서 생긴 일

아침에 아들 녀석을 놀이방에 데려다 주는데     놀이방 입구에서 젊은 여선생이 나를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얼른 뛰어 나온다.     금의환향한 이도령도 아닌 나를 보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여선생이     뛰어나올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밤에 무척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던가 아니면     아침에 무언가 잘못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생이 반갑게 뛰어나온 이유는 어느 술취한 듯한 사람이     지금 막 놀이방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서워 죽겠다며 선생 몇 명이 내게로 다가와     구원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뭐, 별일 있겠어요.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죠.     그럼 저..

포도

아침에 큰아들 후연이가 냉장고를 열더니     무언가를 꺼내 입으로 슬쩍 가져간다.     못 먹을 것을 먹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맛있는 것이     냉장고 안에 있었는지 궁금해서 얼른 문을 열어보니     이제 막 상자에서 꺼낸 듯한 포도 몇 송이가     맛깔스러운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녀석은 냉장고문을 열어 얼른 한 알을 떼어 입에 넣곤 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날 보고 당황하지?           다시 냉장고문을 열고 포도를 보니     그냥 먹기에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아직 농약도 그래도 묻어 있을테니 자라나는 아이에게는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도 명확히 든다.          "후연아, 포도는 깨끗이 씻어서 먹어야 돼..

살아있는 모델

처남이 둘 있는데 막내 처남이 아주 대단한 친구다.     이제 20대 후반으로 접어 들어가는 나이인데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활달하고 숫기가 없어 아주 개성적이었던 모양이다.     장모님과 아내의 말을 들으니 아주 재미있는 얘기들이 따라다니곤 한다.         우선 이 친구 초등학교 2학년 무렵에     장모님이 매번 담임선생님의 호출로 학교에 가셨다나?     학교에 가야하는 이유는 2학년 학생중에     혼자만 글을 읽지 못한다는 우습지도 않은 이유였다.     부모 입장에선 얼마나 심각하랴.                하지만 딱히 머리가 나쁘거나 노력을 안해서라기 보다는     처남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학교 끝나면 어딘가에 가방 던져두고 친구들하고 뛰어다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