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생일

아하누가 2024. 6. 24. 01:18


 


     날짜를 쓰고 보니 심상치 않은 날이다. 바로 내 생일이다.
     이쯤이면 남들에게 축하도 받고 선물도 받고 나만의 날이라는
     좋은 기분에 한껏 기분을 낼만도 하지만
     내게는 그리 반가운 일도 아니고 그리 특별한 날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만 해도 제법 제때에 생일을
     챙겨먹곤 했다. 선물을 받은 기억도 나고 제법 맛깔스럽게 보이는
     밥상을 받았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런 좋은 날의 기억을 어렴풋이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집안 환경이 생일을 특별히 기념하는 날로 인정하지 않았던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아마 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바로 이날 엄마에게
     선물 사달라고 조르다 흠뻑 두들겨 맞은 일이 있다.
     남들은 태어난 날이라고 여기저기서 축하 받는데 그런 날 엄마에게
     두들겨 맞다니 이건 뭐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사춘기 소년의 가슴 한군데를 스치고 지나갔다.     
     보통 때라도 엄마가 아들을 때리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겠지만
     굳이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얻어맞아야 했던 이유를
     엄마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내가 태어난 것은 엄마가 더 고생했으니 선물을 사주려면
     엄마에게 사주어야 한다는 것이 1차적인 엄마의 논리였고
     두 번째는 생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 그런 걸로 축하 받지 말고
     남보다 앞서고 잘난 이유로 남들에게 축하 받으라는 친절한 해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먹고사는 형편이 만만치 않은 우리 집 상황에 대한
     합리화적 논리요 또한 5남매나 되는 많은 형제들의 생일을 일일이
     챙기기에 벅찬 향후의 일까지 고려한 도피성 정책이라 생각했다.     
     일단 생일에 얻어맞았으니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고
     그냥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에도 아무 말 없이 넘기곤 했다.
     물론 거기에는 '오늘이 내 생일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몹시 외롭다' 는 사춘기적 발상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그런 생일을 몇 번 더 기억하니
     생일이 가지는 의미가 시시해졌다.
     아니, 시시해진 것이 아니라 엄마의 교육에 탄복하여
     굳이 남에게도 있는, 그리고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생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스스로 도달했다.
     그리고는 친구 생일이라던가 생일이라고 축하해달라는 친구가
     그렇게 유치해 보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나이였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더 무감하다.
     생일이라고 축하해 달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나
     생일을 맞은 사람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을 봐도 그저 덤덤할 뿐이다.
     다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전보다 더욱 확고하여
     생일 같은 이유로 축하 받게 되는 일을 절대로 원하지 않을 뿐이다.
     남들에게 축하 받는 일이 쑥스러워 피하자는 것은 아니다.
     축하 받고 싶다. 그러나 생일이라는 이유는 축하 받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는 게 아직도 변함 없는 나의 생각이다.

    
     그동안 축하 받을 일이 많았다.
     그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동기보다 먼저 승진했을 때,         
     작은 체육대회 축구시합에서 3골씩이나 넣어 MVP에 올랐을 때,
     아무 사고 없이 건강히 자라준 아이들의 돌잔치,
     규모는 작지만 입찰에서 이겨 업무수주를 받았을 때,
     그리고 나의 책이 서점에 나왔을 때.........

     


     살다보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듯한 작은 일들일 수도 있는 일이라도
     그런 축하를 나는 생일의 축하보다 더 감사하고 벅찬 감동으로 받아들인다.
     생일에는 낳아주신 부모님 생각 한번 더하고
     생일말고 다른 능력의 발휘로 축하 받을 일을 완성하는 일이 무엇일지
     한번 더 기억하자.
     그걸로 생일 주는 의미는 충분하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테지만
     생일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에는 스스로 충분히 만족한다.

     


               ***********

 

    
     나의 두 아들도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생일과는 이별해야 할 것 같다.
     아들아.
     생일보다는 너의 능력으로, 너만의 능력으로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서 축하를 받거라.          
     그것이 무엇이든 이 아빠는 네가 잘할 수 있는 일로
     남에게 인정받는 일을 더 축하하련다.
     내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너도 생일에는 이 아빠 엄마 생각을
     더 해주렴.

 

 

                   - 2001년 7월 23일 아빠가 -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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