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놀이방에서 생긴 일

아하누가 2024. 6. 24. 01:17



     아침에 아들 녀석을 놀이방에 데려다 주는데
     놀이방 입구에서 젊은 여선생이 나를 보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얼른 뛰어 나온다.
     금의환향한 이도령도 아닌 나를 보고 앞길이 창창한 젊은 여선생이
     뛰어나올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간밤에 무척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던가 아니면
     아침에 무언가 잘못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생이 반갑게 뛰어나온 이유는 어느 술취한 듯한 사람이
     지금 막 놀이방으로 들어와 다짜고짜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서워 죽겠다며 선생 몇 명이 내게로 다가와
     구원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뭐, 별일 있겠어요.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죠.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라고 하며 얼른 그 자리를 빠져나갔으면
     딱 좋을 상황이었건만 불행히도 아들이 다닌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나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일은 정말 지저분한 일이다.
     그리고 나 또한 무섭고 불안한 건 마찬가지인데
     여자들은 남자는 그런데 겁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남자도 똑같이 무서워하고 겁이 많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 남녀평등의 의식개혁에 일조하고 싶었지만
     그 말 또한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앞장선 여선생의 뒤를 쫓아 건물 뒤로 돌아갔다.
     화장실 창문인데 아이들이 사용하는 곳이라 항상 열어둔다고 했다.
     거기까지 설명하고는 한발 뒤로 물러선다.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서 나는 '아, 어린 아이들이라 혹시 모르니
     문을 열어두시는군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아들 녀석이 다니는 곳이라는 사실이 자꾸 머리를 때렸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인 남자가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장면을
     봐야 하는 내가 딱했고 한편으로는 그러다 그 누군가가
     신경질이 나서 '너 거기 가만히 있어!' 라고 따지며 뛰어 나올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벌어진 일, 여선생 몰래 혼자 심호흡을 잔뜩 하고는
     힘차게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거 뭐 하는 거요? 어? 애들 놀이방에 와서!"

     


     한 50쯤 먹었을까? 술에 취했는지 약에 취했는지 아니면 원래
     정신상태가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한 사람이 변기에 앉아
     변기에 고인 물로 부지런히 엉덩이를 닦고 있다.
     나참, 살다살다 별일을 다본다.
     조금 쳐다보고 있으려니 창피한 표정 하나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오히려 내가 민망해진다.
    
    
     "거 뭐 하는 거냐고! 얼른 못나와?"
    
    
     이왕 벌린 일 더 큰소리 쳤다. 혹시 저 사람이 뛰어 나와 나를 때리면
     옆에 있는 선생들이 나의 아들에게 '너의 아빠는 용감하게 싸웠다'고
     분명히 전해줄 것이다.
    
     다시 정문으로 들어가 여선생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려니
     여간 민망한게 아니다. 계속 묻는 여선생들에게는
     더 이상의 질문 및 의문이 없도록 확실하게 대답해줬다. 
     


     "아, 예...똥 싸더군요..."

 

    
     이럴 때는 상스럽더라도 '똥'이라고 표현해야 더 이상의 질문이 없지
     격식 차린다고 '대변'이라던가 '큰 거'라고 표현하면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어 또 건물 뒤로 돌아가 화장실 창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지 꼬추를 부지런히 닦고 있다.
     정말 살다보니 별놈 다본다.
     여선생한테 한번 보라고 하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얼른 안 나올꺼야? 어?"

 


     제정신이 아닌 듯한 그 사람도 큰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나간다니까!"

 

    
     잠시 후 매우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놀이방에서 걸어나왔고
     옷을 입은 채로 씻었는지 웃옷의 가슴 부분과 바지의 가랑이 부분은
     온통 물에 젖어 있다.
     그리고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내 옆을 지나가는데
     그 냄새란......
    
     한일도 없는데 연신 고맙다는 선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그 사람을 쫓아갔다.
     비틀비틀 술 먹은 사람처럼 골목길을 휘저으며 다니더니
     입고 있던 남방을 휙 벗어서 길가에 세워둔,
     불우이웃을 돕자는 <의류보관함>에 꾸겨 넣는다.
     이런 나쁜 놈 같으니라구.
    
    
     "거기가 옷을 넣으면 어떡해?"
    
    
     그 징그러운 눈빛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담배 하나만 달란다.
     줬다. 불도 달랄까봐 그냥 황급히 발길을 돌려
     출근길 본연의 발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척 기분 좋지 않은 아침이다.    
    
    
                  *       *       *       *     
    
    
     아주 어렸을 때는 길거리 미친 사람을 무척이나 무서워했다.
     당연히 무서울 수밖에 없는 나이인데도 부모님은 내가 울기만 하면
     그런 사람에게 잡아가게 하겠다는 잔인한 협박으로
     울음을 그치게 했다. 지금 생각하니 하늘 높은 은혜하고는
     거리가 먼 사악한 부모님들이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그 두려움은
     점점 줄어들고 군에 다녀올 때쯤이면 혈기가 더 왕성해져서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이 되니 그런 사람을 보면
     섬뜩해지는 것이 매우 불길한 생각이 든다.
     이걸 어찌 해야 하나.
     이 이야기를 어떻게 결말지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그런 사람이 이 땅에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뿐인가?
     아니면 소위 좋은 동네라는 곳으로 이사가는 계획을 잡을까?
     아무런 해답이 없어 나 또한 답답하다.
     다만 날이 갈수록 확연히 느끼는 것은
     이 땅이 어린 아이를 키우기에 얼마나 힘든 곳인가를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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