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아기한테 그럴 수 있어?”
주변에서 내가 아들 녀석에게
자두 갈아 먹이며 즐거워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하는 한결 같은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전처럼 재미가 없다.
주변에서 말리는 소리 때문이 아니라 이 녀석이 이제 제법 컸다고
매운맛, 신맛을 알아버려 웬만한 음식은 쳐다보기만 하고 받아 먹질 않는다.
아스피린도 안 받아 먹고 마늘도 안 먹으니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바늘 같은 것으로 콕콕 찔러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늘을 찾다가
이미 눈치챈 아내에게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인데도 분위기 파악 못하는 친구 용모는
아기의 귀 밑에 붙이는 멀미약을 붙이면
아기가 어지러워 빙글빙글 돈다고 말했다가
그후 6개월간 집단 따돌림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아들 후연이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 * *
이제 제법 커서 걷기도 하고 뒤뚱거리며 뛰기도 하는 아들 녀석이
어떤 경로를 거쳐 알았는지 오디오 리모컨을 누르면
음악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집에 있는 많은 리모컨 중에서
정확하게 오디오 리모콘을 고를 줄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이 녀석은 그 작동 방법을 몰라 오디오가 꺼져 있으면
귀신같이 오디오 리모컨을 찾아 내게 가지고 와서는
틀어달라는 시늉을 하며
해석이 불가능한 언어로 징얼거리곤 했다.
누군가 여기까지의 얘기를 들으면
참 행복한 가정의 한 장면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실상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침에 잠에서 채 깨기도 전에, 또는 낮잠을 자는 도중에
눈 위 약 2㎝지점을 오디오 리모컨 모서리로 맞아본 사람은 안다.
오디오 리모컨은 왜 이리 기능이 많은지…….
기능이 많으니 당연히 크기 또한 엄청나게 크고
크기가 크니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삐삐에 들어가는 건전지가 자그마치 네 개나 들어가니 말이다.
건전지가 들어가는 부분은 더욱 두꺼운 부분이어서
그쪽으로 무게 중심이 실린 채로
중력의 작용과 함께 무방비 상태로 맞아버리면
마치 슬리퍼만 신고 동네 구멍가게에 담배 사러 가다가
보도 블록에 엄지 발가락의 발톱을 부딪힌다던가,
또는 망치질을 하다가 실수로 못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망치로 때렸을 때와 같은 아픔이 온다.
알다시피 그 아픔이란,
부딪히는 순간 비명이 나와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입만 커다랗게 커지고 아무런 비명 소리도 안 나오는 동시에
닭똥 같은 눈물만 하염없이 뚝뚝 떨어지는 증상을 말한다.
오늘도 아침부터 맞았다.
이거야말로 어떤 최신형 자명종보다
더 확실하게 잠을 깨우는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원치 않는 기상의 공포 때문에 불면증을 유발하는 주범이기도 했다.
* * *
저녁이 되었다.
오디오가 있는 방과 침대가 있는 방, 이렇게 우리 집에는 방이 두 개 있는데
오디오가 있는 방에서 침대가 있는 방으로 막 도망치듯 달려오면
아들 녀석은 신이 나서 찾으러 다닌다.
방 안의 지형지물을 대충 이용하여 몸이 보이지 않게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라며 즐거워하는 아들 녀석을 바라보는,
다소 비교육적이고 성인 취향의 놀이를 자주 하곤 하는데
그리 크지 않은 집이다보니 숨을 곳이라는 게 그리 적당치 않았다.
방 안에는 숨을 만한 세 군데의 장소가 있었는데
하나는 그냥 문 옆의 벽에 몸을 바짝 붙여서 기대어 서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빨래를 말리는 건조대 뒤,
그리고 마지막 한 군데는 침대의 끝 부분으로
화장대를 장애물로 방문과 사각을 이루는 곳이었다.
“후연아~ 우리 찾아 봐라아~~~”
아내와 함께 침대방으로 재빨리 몸을 옮겼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화장대와 침대가 같이 자리한 곳에
동시에 몸을 숨기게 되었고
겨우 한 사람 숨을 만한 공간의 그곳에서 서로 엉덩이를 밀치는 신경전과
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미 아내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서 내가 다른 곳에 숨어야 했는데
건조대 뒤는 건조대에 빨래가 하나도 걸려 있지 않아 이미 그곳은
몸을 숨기는 기능은 전혀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또 한 군데인 문 옆에 서 있는 것은 아들 녀석이 막 걷기 시작했을 때나
통했던 방법이지 지금 거기에 숨는답시고 서 있었다가는
오히려 아들 녀석에게 멍청한 아버지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그런 곳이어서
달리 숨을 곳도 없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 좁은 곳에서 아내와 엉덩이를 맞대고
몸 싸움을 벌이고 있자니 10여 년 전 군대 생활할 당시
재래식 화장실에 강제로 들어가는 체벌을 받은 일이 생각났다.
못 들어간 사람은 몽둥이로 얻어 맞으면서 재래식 화장실 한 칸에
모두 들어가도록 하는 하는 체벌이었는데 놀랍게도 화장실 한 칸에
16명이나 들어가는 것이었다.
화장실 안에서 마치 짐짝처럼 구겨 넣어진 군인들이었지만
엄연히 그 안에서도 서열이 존재하는지라
그나마 좋은 구석탱이 자리는 고참들이 차지했고
쫄병들은 몸과 몸으로 끼어져 중심을 잡은 채
바닥에는 몸을 지지할 곳이 없는
구멍 한 가운데에서 중력을 무시한 채 떠 있어야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밀려왔다.
여기서 아내가 방귀만 뀌어준다면
말할 나위없이 오래 전 추억 속에 잠길 뻔했는데
고맙게도 아내는 나의 마지막 기대는 이루어주지 않았다.
“다른 곳에 숨어요!”
아내는 나보고 다른 곳에 숨으라며 한쪽 엉덩이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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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나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심각한 고민거리 하나를 밝히고자 한다.
과연 사람의 엉덩이를 수치로 표현할 때 한쪽 엉덩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반쪽 엉덩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친구 한 녀석이 나의 이 고민을 듣고는 고민을 풀어준다며
엉덩이는 한 쪽, 두 쪽이라 말하지 반 쪽 또 다른 반 쪽이라고는 하지 않는다기에
왜냐 물으니 그 녀석은 마늘에 비유하며 엉덩이 전체는 한통이고
부분적으로는 한 쪽, 두 쪽이라는 답을 말해 주었지만
도저히 신뢰감이 없는 녀석이어서 그 말을 믿을 순 없었고 대신 고민의 깊이만
한층 더 깊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이 고민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수파와 소수파로 나뉘어
한 쪽, 두 쪽과 반 쪽, 한 쪽을 저마다 외쳐대며 극렬한 대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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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힘차게 밀었다.
그것은 단체로 엠티나 오리엔테이션에 갔을 때
사람보다 모자란 수효의 의자를 가져다 놓고
노래가 그치면 자리 찾는 게임을 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엄청난 파워여서 나는 화장대에 머리를 한 번 처박고
침대 끝에 다리가 걸려 몸의 중심을 잃고,
올림픽 스프링보드 다이빙 경기에 나선 중국 선수처럼
A난도 공중 2회전을 한 채
비참하게 물 바닥도 아닌 방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정신이 없었다.
증세는 아침에 아들 녀석에게 오디오 리모컨으로 한방 맞은 상태와
흡사했다. 사방이 번쩍거렸다.
나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왜 아들 녀석이 사진만 찍어주면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사방을 가리키는지
그 이유를 말이다.
이 녀석은 플래시 터지는 것 때문에 눈에 번쩍이는 잔상이 남아 있어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고
이리저리 손가락질을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덧 아들 녀석은 방으로 들어와
비참하게 엎어져 있는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이 녀석은 아빠가 왜 저리 흉칙한 모양으로 내팽개쳐져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래……. 아마도 나이를 조금 먹으면 너도 많이 당할 거다.
도저히 억울하고 창피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마누라하고 아들 녀석……. 음……. 기다려라. 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원래 정당을 가장한 비겁한 테러는 나의 전문 분야가 아니었던가?
* * *
며칠이 지난 일요일.
아침에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는 방바닥에 누우니
잠이 살살 오는 것이 행복한 휴일을 맛보는 것만 같다.
주방에는 아내가 부지런히 오가고 있고 아들 녀석은 막 끝난 TV드라마의
출연진을 알리며 화면에 올라가는 자막을 손으로 잡겠다고 정신이 없다.
뭐 그리 재미있는지 눈을 뗄 줄 모른다.
한가로운 휴일의 한낮이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는 행동을 반복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면서
어느덧 나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시간, 냉장고 앞의 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많던 유기농 베이비쥬스가 다 어디 간거야?”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