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망치

아하누가 2024. 6. 26. 00:20


 


 “그러니까 당신은 설겆이, 나는 청소를 하는 거예요.”

 

 

 


  마치 무슨 국가간의 협상 타결에나 나올 것 같은 말투로
  아내는 집안일을 강제적으로 분담시킨다.
  그리고는 내 의사가 담긴 어떤 대답도 듣기 전에 무서운 속도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해 나가기 시작했다.

  방 한쪽 귀퉁이에 겨우 나만의 공간을 차지하고

  최악의 조건에서 TV를 보던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청소와 설겆이라는 종목이 공평한 구분인가?
  그리고 청소에 비해 설겆이가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설겆이를 위해 소모되는 운동에너지와
  일을 마친 뒤 찾아오는 심리적 쾌감의 절대값은 청소의 그것보다 더 클까? 등등.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설겆이란 귀찮은 일일 뿐이다.
  그래서 늘 하던 전략을 이번에도 또 이용하기로 했다. 
  

 

     “난 청소 끝나가는데 왜 설겆이 안 해요?”
     “응~ 조금 있다가 할 거야.” 
  

 

  늘 이용하는 전략이란 상대방의 급한 성격을 이용하여 상대가 지칠 때까지
  강한 인내심으로 버티는 심리적인 전략으로,

  그전에는 주로 위기에 몰렸을 때 쓰던 최후의 수단이자 비장의 카드였지만

  요즘은 그 쓰임이 시도 때도 없이 적용되어
  거의 모든 일을 그 전략으로 해결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을 참지 못한 아내는
  마치 분풀이라도 하듯 신경질적으로 설겆이를 하기 시작했다.
  또 성공이다. 이는 시도할 때마다 실패가 없는 필승의 전략이다.
  아내는 설겆이를 하면서 계속 눈을 흘긴다.

  난 하지 않겠다고 한 적은 없는데…….
  억울했지만 전술의 적중과 설겆이 안 했다는 기분에 그냥 참기로 했다.

 


  “그럼 액자 걸게 벽에 못 좀 박아줘요.” 
  

 

  어디서 가져 왔는지 아내는 커다란 액자 하나를 들고 있다.

 


  “거기다 놔 둬, 이따 하지.” 


  

  전략적인 면도 있긴 하지만 사실 나는 아내와 달리 무슨 일을 해야 할 때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나올 때까지,

  그 일을 대신 해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한 마디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아무런 해결책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꾸물대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한다.
  중국음식점에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음식을 싸고 있는 비닐랩을 벗기지 않는다.

  누가 벗겨줄 때까지 기다리거나 남이 벗긴 것을 훔쳐 먹는다.
  그 경우도 아니면 위에서부터 찢어 겨우 젓가락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고 먹는다.
  엘리베이터를 타도 남들이 각각 가야 하는 층의 단추를 누른 뒤
  내가 갈 층의 단추가 눌려 있지 않아야 비로소 누른다.
  어떤 경우는 내려 갔다 다시 올라오기도 하고,
  한두 층 차이 정도면 그냥 내려서 계단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또한 마찬가지여서 액자를 옆에 두고 보던 TV를 계속 보고 있으니
  참다 못한 아내가 직접 못을 박겠다고 망치를 들고 나섰다.
  웬만하면 말릴까 하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알다시피 콘크리트못이라 불리는 못을 벽에 박는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어서 여자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아내가 포기해 버릴 때쯤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타나서 멋지게 박으려는
  얄팍하고도 비겁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착각이었다.   

 


  아내가 망치질을 시작했다.
  마침 그 벽은 내가 기대어 TV를 보고 있던 벽이어서
  아내가 못박는 광경을 측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는데,
  아내가 망치질을 한 번 할 때마다 못이 벽으로 들어가는 정도가 눈에 보일 만큼
  그것은 무지막지한 망치질이었다.
  벽에 콘크리트못을 박아 본 사람은 안다.

  엄청나게 많은 힘이 들어가면서도 그게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아내는 그 사실이 단지 이론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환상적인 못질을 하기 시작했으며 정확도 또한 빈틈이 없어서
  때릴 때마다 못은 아무 저항없이 벽으로 몸을 들이 밀어야만 했다. 
 

 

  망치질 하는 아내의 표정이 마치 못대가리를 내 얼굴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
  나는 차츰 긴장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실수라도 해서 망치로 손등이라도 한 방 얻어맞길 바랐지만
  오히려 망치를 놓쳐 망치로 머리통이라도 한 대 얻어맞는다거나 또는
  그 경우를 가장하여 의도적으로 나를 향해 망치를 날린다면
  이에 대한 보상은커녕 일간 신문 사회면 구석탱이에 가십거리로 실린다고 해도
  어디에도 하소연을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어
  소리 없이 일어나 집을 나서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한 일이다.
  어찌하여 하늘은 세상에 미스코리아만 태어나게 해도 부족한데
  이런 여자까지 세상에 나타나게 했으며 그것도 하필이면 나랑 같이 살게 했을까?
  그렇다고 상금이 걸린 여자 못 박기 대회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하늘을 원망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을 그 틈에 하고는
  본격적으로 사고의 대전환을 만들기로 했다.
  즉, 한편으론 그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오히려 이런 장점은 극구 칭찬하여
  그 소질을 더욱 계발시킴으로써 망치질은 물론
  톱질, 삽질 심지어 지붕 방수 공사나 보일러 공사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여자의 능력을 공평하게 인정하는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          *          *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치 집 나온 청소년 마냥 동네 골목길을 방황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집에 들어갔다.
  이럴 때는 평소에 잘 보이던 동네 친구 하나 안 보인다.
  다행히 아내는 잠시 집을 비운 것 같았고 안방으로 재빨리 들어갔더니

  예상과 달리 벽에 액자가 걸려 있지 않았다.


  푸하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한 번 사고의 대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아무래도 집안 일에는 남자가 할 일이 있고 여자가 할 일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여자가 힘이 세봐야 결국 여자인 것이다.
  역시 벽에다 콘크리트못을 박는다는 것은

  여자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확신이 서니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사실이 이런 식으로나마 확인이 되어야 집안 일의 역할 분담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따라서

  앞으로 설겆이의 번거로움을 벗어나게 될 것 아닌가?   

  아내가 들어오기 전에 얼른 못을 박고 남자니까 할 수 있다는 폼을 잡으며
  액자를 멋지게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망치를 들고 못 박을 자리를 찾다가
  나는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아내는 세 군데에 못을 박았는데 급한 성격과 지나친 힘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나머지

  세 개의 못은 액자를 걸 만한 조그마한 여유도 없이
  벽에 끝까지 박혀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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