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에 가시든지 소비자 단체에 가시든지 맘대로 하세욧!”
잘 맞지 않은 옷을 바꾸러 아내와 함께 옷 산 곳에 갔더니
행사 기간에 구입한 옷이라 환불이 안 된다며
옷 가게 점원은 신경질적으로 옷을 던지며 말했다.
가끔 살다보면 누군가가 참으로 불쌍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지금의 신경질적인 저 점원이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지저분한 놈을 만났는지 아니면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낀 채로 지하철을 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지금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한바탕 시끄러운 싸움이 벌어지는 일만 남았다.
* * *
아내가 가장 자신있게 할 수 있는 것을 나보고 한 가지만 고르라면
나는 주저없이, 조금이라도 생각할 일고의 가치도 없이 ‘싸움’이라 말한다.
그렇다.
누가 가르쳐 주거나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겠지만 아내는 싸움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과 전문가의 예상, 그리고 항간의 소문 등을 모두 불허하는
명실상부한 고수임이 분명했다.
그것이 말로 하는 싸움이든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땅바닥에 뒹구는 싸움이든
종목과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어떤 상대든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인다.
선천적으로 싸움에 적합한 튼튼한 체격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창피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에 본능적으로 세워지는
고도의 전술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공 장소에서 하는 싸움에는 무적을 자랑하니 지금의 경우야말로
하나마나한 싸움 아닌가?
평소에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어서
늘 하던 대로 자리를 슬그머니 옮겼다.
또한 아내가 하는 싸움을 많이 지켜본지라
아내의 뛰어난 전술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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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 전략 #1
우리 편이 말리면 맥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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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 아내의 첫 번째 전략이다. 같은 편이 말리면 김빠진다.
따라서 싸움도 제대로 못할 뿐 아니라
나중에 심한 아쉬움만 남고 아쉬움이 남으면 약이 오른다.
약이 오르면 싸움에서 진 거나 다름없다.
따라서 말리는 것은 불리할 때나 해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전략이라
말리지도 못하게 한다. 물론 아직 말릴 상황이 되어본 적도 없고
또 말려봐야 피해보는 것은 결국 나라는 것도 오랜 경험으로 아는지라
이런 경우엔 아예 먼발치에서 보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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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 전략 #2
자신보다 연약해 보이는 사람하곤 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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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이란 황야의 무법자식 결투가 아니라
항상 사람이 많은 곳에서 벌어지므로
주변 여론의 불리함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싸울 순 없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 연약해 보이는 상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
다행히도 이번에 시비가 오가게 된 그 점원 아가씨도
어디가서 덩치 꽤나 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걸 다행이라 해야 할런지…….
아내와 그 점원 사이에 큰 소리가 몇 번 오가더니
드디어 아내가 몇 가지 물건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물건을 집어 던질 때에도 그 선택에 대한 능력이 탁월하여
비싸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은 도저히 들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물건을 택한다.
어떤 경우는 바로 이 장면에서 싸움이 끝나기도 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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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 전략 #3
공공 장소에서 싸울 때는 주위의 시선을 최대한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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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참 절묘한 전략이다. 대부분의 구경꾼은 손님편이지 주인편은 아니다.
아내는 도대체 그런 사실을 알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모르고 그러는 건지,
계속 큰 소리를 치며 쌓인 물건들을 집어 던진다.
어떤 상대도 모두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 상대방 또한 급격하게 돌아가는
주변의 환경 변화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공책으로 일관하는 아내의 기세에
목소리를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나의 많은 경험으로 미루어 이미 승부는 기운 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늘 하던 대로 언제쯤 나타나서 말리는 척하며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지 그 타이밍을 잡고 있는데
상가의 관리직원으로 보이는 - 가슴에 이름표를 부착한 - 두 직원이
내 옆을 지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로 황급히 가고 있었다.
순간 그들을 말리고 싶었다. 그들이 가는 순간엔 이미 승세가 굳어진 것이고
그후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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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 전략 #4
승기가 보이면 더 강하게 밀어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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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관리 직원이 나타나자 더 기세가 등등해졌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상대는 점원에서 관리 직원으로 바뀌었으며
먼저의 상대인 그 점원은 한쪽 구석에서 분에 못 이기겠는지 말을 잊은 채
무척이나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내는 상대가 남자인지라 더 과격하게 나갔다.
아까 들었다 내팽개치던 것을 또 들었다 팽개치고…….
마치 아까보다 사람이 조금 더 많이 모이니 더 신이 나는 듯했다.
자해 행동까지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어려운 고비 없이
쉽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직원들은 그 맹렬한 기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고객 관리의 명분에서인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듯한 행동을 했고,
이어 아내와 함께 관리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듯 했으며,
아내는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한국 선수처럼
당당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이제 싸움은 끝났다. 오늘은 굳이 데리고 갈 필요가 없겠다.
조금 있으면 알아서 찾아 올테니.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에 내가 있는 곳으로 왔고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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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싸움 전략 #5
소득 없는 싸움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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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그 상가에서 10만원 이상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주는 사은품이었는데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이구~ 사은품이 그리 좋아?”
“그런 말 말아요. 사장실까지 가려다가 참은 건데…….”
하긴 지난번엔 모 백화점 점장실로 들어간다며
백화점을 난장판으로 만든 적도 있으며,
아동용품 회사가 교환을 해주지 않는다며
사장실로 전화하고는 없다는 사장 대신 전화를 받은 비서실장한테
매섭도록 큰 소리치는 일을 본 적이 있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 당시 아내는 통화는 비서실장과 했지만
육체적 대역은 내가 담당하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난 원래 싸움을 잘 하지도 못 할뿐더러 해본 적도 없다.
물론 그것이 가끔은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진 않지만
그런대로 지금까지 큰 불편없이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마다 각자 자신의 취향과 성격이 있듯이
아내는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또는 어떤 다른 일에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
이 또한 고치려 해도 고쳐지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긴 그 덕을 많이 본 일도 있다. 3일 동안 신문이 오지 않은 적이 있다고
결국 신문 대금을 반이나 깎아버리고,
늦은 시간 창문 옆에서 실례하는 술취한 남자에게
창문 열고 큰 소리쳐서 쫓아내고,
이상한 사이비종교 믿으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문 앞에서 업어치기라고 할 듯한 기세로 단호하게 쫓아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분당에 사시는 작은 누님댁의 초등학생 조카는 불친절한 가게만 보면
‘엄마! 외숙모 언제 와?’하고 묻곤 한다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아내의 모습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가정의 평화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가장의 다짐을 여러 번 하곤 했다.
혹시나 이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 있다면 실로 미안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위해 싸우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인 것 또한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생각이다.
아내는 여느 때처럼 운전석 옆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오늘 저녁엔 불성실한 시공으로 짜증나게 한 알미늄 샷시 업자와
한바탕 다퉈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났다.
고개를 돌려 아내를 본다.
오늘따라 평소와는 달리 해괴망측한 자세로 자고 있는 아내가 더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