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녁 안 먹고 뭐 하는 거야?”
요즘은 아들 녀석이 제법 잘 놀아서
이제야 진짜 아빠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가끔 입이 심심할까 봐 간식삼아 새우깡을 주곤 하는데,
이 새우깡이란 것이 광고 그대로 애나 어른이나 심심풀이에는 최고인 모양이다.
녀석은 어른 못잖게 새우깡을 먹는데 가끔 자기가 먹기 싫을 때는
들고 있던 새우깡을 나에게 먹여주곤 한다. 나쁜 녀석…….
그래도 자식이라 반가운 척하며 해괴망측한 동물 소리를 내며 받아먹곤 하는데,
받아문 새우깡을 입에 넣지 않고 끝이 삐죽 나오게 물고 있으면
녀석이 와서 손가락으로 끝 부분을 수직으로 눌러 입 안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또 새 것을 가져와 내 입에 물리고 나는 또 반쯤 내밀면
녀석은 또 손가락으로 끝을 눌러 입 안으로 밀어 넣고…….
그리고는 깔깔 웃다가 또 새우깡을 내 입에 집어 넣는다.
아마 그 놀이가 녀석에겐 무척이나 재미있게 느껴지나 보다.
그러다가 이 녀석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뒤뚱뒤뚱 걸어가더니
주방에서 기다란 젓가락을 가지고 내게 달려 오는 게 아닌가?
누워 있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난 죽어도 저건 다 입에 못 넣는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저녁을 먹지 않는다던 아내가 감자를 먹고 있기에
아내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게 감자 다이어트라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
아내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한 번 힐끔 쳐다 보더니 계속 말을 잇는다.
“아무 것도 안 먹고 감자만 먹는 거죠. 그럼 살이 빠진다나 어쩐다나……?”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최소한의 영양만 섭취한 채 계속 굶어야 된다는 방법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아내의 다이어트 방법은 엄청난 모순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본 것만 벌써 10개째 먹고 있으니 말이다.
감자를 10개 먹는다면 다소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장면을 너무 많이 목격해왔다.
물론 그때마다 아내는 자신이 강원도 출신이라는 묻지도 않은 지방색을 들추며
이를 정당화시키곤 했다.
어떤 여자든 날씬한 몸매와 다이어트라는 용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빠지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몸매에 대한 아무런 거슬림이 없는 사람도
날씬한 몸매라는 단어 앞에서는 목숨도 걸 것 같은 자세를 보이곤 한다.
여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그리도 중요한 일일까?
남자인 나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을 것만 같다.
“다이어트 한다면서?”
아내가 부지런히 밥상을 차리는 것 같아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후연이 밥상 차리는 거예요.”
어느덧 이 녀석은 우유도 아닌,
내가 먹는 것과 똑같은 밥을 먹어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참 세월이라는 것은 무상하기만 하다.
“자~ 후연아 아~”
가만히 보니 아들에게 밥을 먹이려고 숟가락에 밥을 얹어 주는데
입은 아내가 벌린다.
아들이 받아 먹으면 아내도 입을 다문다.
먹는 아기보다 먹이는 엄마 표정이 더 가관이다.
하지만 쉽게 감정 표현을 할 수 없는 조심스런 순간이어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는 아기에게 밥을 먹이는데 새로운 방법을 등장시켰다.
아기가 숟가락을 거부하듯 고개를 저으면
아내는 ‘그럼 엄마가 먹는다~ 아웅!’ 하면서 밥을 먹고,
그러면 그 다음 숟가락은 아기가 엄마를 따라 하려는지 잘 받아 먹는 것이다.
그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몹시도 현명하고 자상한 엄마의 모습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내는 아기에게 주는 밥의 양과 자신이 시범으로 먹는 밥의 양을
의도적으로 조절하여 시범 보일 때는 아기가 먹는 양의 무려 10배나 되는 밥을
숟가락에 담았으며,
아기가 먹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부터 아기에게 줄 의사가 없었음은
숟가락에 얹힌 밥 위에 매운 김치까지 얹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내는 벌써 두 공기의 밥으로 그러한 일련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그 동안 아내가 다이어트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그리 달갑지 않았다.
살을 빼려는 시도가 내겐 전혀 믿겨지지 않았고, 또한 살을 뺀다고 해서
지금보다 모습이 그리 나아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걱정도 했다.
혹시라도 다이어트 때문에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되었고 또 내가 좋아하는
듬직한 몸매가 망가지는 것(?)도 걱정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을 보니 전혀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직은 분위기가 아니어서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아내에게 꼭 할 말이 있다.
지금의 튼튼한 그 몸매가 다른 어떤 늘씬한 여자보다 좋다고.
아내는 며칠째 다이어트한다고 저녁을 먹지 않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저녁 안 먹는 계획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또한 아내는 오늘도 다이어트중이라
저녁도 안 먹었다는 얘기도 분명히 할 것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뒤에 다이어트가 자신에게는
별 효과가 없다는 말도 할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때를 위해 남겨 놓아야 할 것만 같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