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럼 아기 엄마가 계시긴 계시군요”
아들 후연이 진찰 때문에 찾은 병원 안내 창구의 간호사가 낼모레 또 오라기에
아마 내일 모레는 아내가 올 것이라 했더니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참 어이가 없는 일이 가끔 있다.
지금의 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여서
이럴 땐 참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도 갈만한 상황이기도 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아내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내가 아기를 데리고 갔으니
병원에서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지나친 생각은 아닐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었다.
진찰실로 들어가니 그날따라 의사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
‘혹시 이 양반도 나를 홀아비로 알고 있남?’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아기가 주사 맞을 때쯤 자연스럽게 물어보려다
침대 위에 의료도구를 얹어 놓은 선반으로 보이는 것에 머리를 부딪혔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침대가 너무 바깥쪽에 놓여 있어서 피해가려다 부딪힌 것이다.
혹시나 해서 손으로 만져 보았지만 다행히 피는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웠다.
병원에서 다치면 공짜로 치료해주는지 아니면 돈을 따로 받는지
평소의 오랜 의문 하나를 직접 확인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괜한 짜증만 냈다.
“침대를 더 밀어 넣으면 되잖아요?”
의사는 날보고 씨익 웃더니
침대가 무거워 옮기기가 어려워서 그런다며 조심하란다.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의미를 생각해보니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기도 했고
또 부인도 없는 홀아비라고 놀리는 듯한 의미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어쩌다 내가 아내도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는지
참으로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나도 아내가 있다고 큰소리치면
이야말로 홀아비보다 더한 또라이로 찍힐테니
그러지도 못하고 답답한 심정만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저~ 내일 모레는 애기 엄마가 올 겁니다”
말하고 나서 슬쩍 눈치를 보니 전혀 동요가 없다.
내 예상으로는 ‘아~ 그러세요?’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 또한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저~ 내일 모레는 애기 엄마가 온다니까요?”
그러자 의사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여기는 산부인과가 아니라 소아괍니다”
음....
분명히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내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계속 믿지 않으려는 태도가 분명했다.
맞다. 사람은 한번 안 믿으면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휘되어 계속 믿지 않으려는
관성의 법칙같은 속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일 모레면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의사 흉이나 실컷 봐야겠다.
그러면 아마 당신도 좋지 않을 걸?
* * *
한참 동안이나 내가 잠시 홀아비 팔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어느날
또 아기와 함께 병원에 가게 되었다. 갑자기 그때의 일들이 생각났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어머, 후연이 왔구나! “
이런......
간호사들도 벌써부터 상냥해진다. 기분은 좋았지만 한편으론 내심 불쾌했다.
나처럼 이쁜(?) 아내를 둔 사람이면
간호사가 나름대로 퉁명스런 말투로 대해야 되는 것 아닌가?
“참 좋은 사모님을 두셨어요...”
간호사가 내게 인사하듯 말한다. 잠시 생각했다.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이쁜....’이라는 수식어와는
전혀 공유할 수 없는 의미로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수식어로는
‘성격 좋은’, ‘맘 좋은’ 등이 있으며, 이는 또한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갔다 온 뒤
성사시켜준 사람이 상대방이 어땠냐고 물었을 때 주로 나오는 상투적이면서도
90%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할 때 쓰이는 대답 아닌가?
그렇다면 아내를 뚱뚱하다고 놀리는 것이 분명하다는 얘긴데…….
하지만 별로 내 맘에 드는 간호사도 아니어서 그냥 참기로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 후 진찰실로 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의사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무래도 간호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가 보다.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홀아비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을테니
맘대로 생각하라지.
진찰을 마치고 주사를 맞추러 자리를 옮기다가
지난번에 머리를 부딪힌 일이 생각나서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안 다쳤다. 역시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순발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리가 옮겨져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 침대 옮기셨군요?”
의사는 놀란듯 말한 내 말에 무슨 의미인지 이상한 미소를 띄고는
그동안 보아오지 못한 상냥한 말투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말씀 안 하시던가요?”
.
.
.
세상에는 두가지 타잎의 아내가 있다.
침대에서 잠을 자는 아내, 그리고 침대를 잘 옮기는 아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