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미운 오리새끼

아하누가 2024. 6. 26. 00:22


 

  “야~ 지겹지도 않니? 그 공포의 신발?”
  “지겹지만 아무 대책이 없는 경우니 더 말하지 마!”


 

  내 신발을 쳐다보던 친구와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정말 지독하게 오래 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 신발을 산 때가 대충 10년 전이었지?

  그렇다면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얘긴데…….

  그 신발을 아직도 신고 있다니 당사자인 나도 기가 막힌데
  옆에서 보는 친구는 오죽했을까.   

 

 

  흔히 ‘랜드로바’라는 대명사로 불리는 신발을 나는 벌써 10년 가까이 신고 있다.
  백화점 세일 때 산 건데 벌써 밑창만 두 번 갈았고 앞 부분이 터져서
  꿰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좀 낡았을 뿐이지 별다른 흠 없이 멀쩡했으므로
  새 신발을 살 수도 없었다.
  누군가 그런 말을 하곤 한다. 어느 누가 신발을 다 닳을 때까지 신느냐고.
  하지만 아내 앞에서 그건 꿈같은 얘기다.

 


     “아니, 그건 뭐예요?” 


  

  집에 들어오니 내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아내가 묻는다.
  아내는 집에 올 때 내 손에 무언가 들려 있으면 반드시 묻곤 한다.
  처음에는 궁금해서 묻는 것이려니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먹을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거? 축구화가 앞이 터져서 새로 샀어.” 


 

  사실 축구화는 축구화 담는 가방에 따로 보관하고 일주일에 한 번만 신기 때문에
  아내는 축구화의 상황까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요즘 축구팀 여름 유니폼을 새로 맞추는 일 때문에
  며칠 늦게 들어와서 심사도 잔뜩 뒤틀려 있는 아내였다.
  아내는 전혀 쓸 데 없어 보이는 것을 돈 주고 산 것 같은 생각에

  심술이 난 표정이었다. 
  

 

  “먼저 신던 것은 어쨌어요? ”

  “있던 데 있겠지. 왜?” 


  

  아내는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축구화를 찾아 한참 들여다보더니
  아직 멀쩡한데 왜 새로 샀냐며 잔뜩 불만 섞인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물건 중에 아내 눈에 멀쩡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TV 기능도 못하는 20인치 모니터를

  나중에 아들 낳으면 오락기계와 연결하겠다며
  친구 용모도 주지 못 하게 한다.
  하긴 그리 새롭게 듣는 말도 아니었으니 달리 놀랄 일도 없어서

  그냥 못 들은 척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          *          *    

 


  

  일요일, 운동장이다. 새 신발을 신고 기분을 맘껏 내보려고 가방을 여는 순간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분명히 헌 축구화를 꺼내고 새 축구화를 넣었는데
  헌 축구화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터져나간 앞 부분이 말끔하게 꿰매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단지 낡았다는 것 말고는 제법 멀쩡한 축구화였다.
  축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물어보니
  역시나 아내는 동네 구두방에서 축구화를 꿰매었다는 것이다.   

 


  “그럼 새로 사온 건 어딨지?”
  “모르지…….”   

 

 

  아내는 그냥 말 없이 웃기만 한다. 어딘가에 숨겨 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멀쩡한 상태로 만들어 놨으니
  못 신겠다는다는 말을 할 수도 없지, 그렇다고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보너스가 동결된다며 한숨을 쉬는 친구를 붙잡고 지금의 이 상황을
  하소연이라도 했다가는 둘 중에 하나 죽는 걸로 끝장을 보자고 할 테지…….
  사람은 무언가 새 것이 생기면 반드시 써보고 싶은 게 본능적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놈의 물자절약이라는 명분과 시어머니 같은 아내로 인해
  본능적인 욕구의 해소는커녕 한숨만 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이냔 말이다.

 


  “여보! 그건 또 뭐예요?”

  “이거? 이번에 새로 나온 우리 팀 하계 유니폼이잖아?
    어때? 내가 디자인한 건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 유니폼을 받고 기분 좋게 들어왔더니 이를 본 아내가 물었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남겼다.    

 

 

  “작년 것도 아직 입을 만하던데 …….”
  “……!”    


  

  갑자기 머릿속을 감도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한 노래의 가사도 떠올랐다.
  맞다. 아내는 작년 것도 충분히 입을 수 있다며 분명히 조만간 이 옷도
  어딘가에 숨길 것이다. 

 


  갑자기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이런 일로 고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고민이 또 하나 늘어가니
  고민은 고민을 낳는다는 새로운 명언이 잠시 생각났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처음 고민으로 돌아갔다. 
  

 

  이 옷을 잘 지켜야 한다.
  잠시라도 틈을 보이면 아내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것도 숨길 테니 말이다.
  집 안 구석구석은 모두 아내의 손바닥 안에 있으니 집 안에 숨기는 것은
  무모한 짓으로 고양이와 생선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사무실에다 둘까?

  사무실에다 둔 우산만도 벌써 4개째라 정작 필요할 땐
  쓰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 곳이 바로 사무실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이다. 바로 일요일까지 입고 있는 것이다.
  숨겨두고 모른 척 하다가 고문당하는 것보다 입은 채 도망다니는 게
  훨씬 견디기 쉬우니까.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요일까지 잠잘 때나 출근할 때나

  등번호가 커다랗게 찍힌 이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냥 늘 하던대로 하기로 했다.
  설마 아내가 운동복까지 숨기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아내가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가정을 생각하는 아내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기분이었다.
  유니폼을 숨기는 일이 있어도 나는 그것을 절약에 대한 소중한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히려 낭비벽이 심해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 여자들도 많아

  세상의 화제가 되는데
  그에 비하면 이것은 얼마나 행복한 고민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좋다.
  덩치는 크고 좀 과격한 듯 보여도 가정을 그렇게 꼼꼼히 챙기는 아내가 좋다.
  이런 아내라면 가정은 날로 발전할 것이라는 흐뭇한 기대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안정됐다.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          *          *  


  

  며칠 지난 일요일 아침.
  운동장에서 나는 영락없는 미운오리새끼 마냥 흰 옷들 틈에서
  혼자 파란 옷을 입고 있었다.
  주위의 농담 섞인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절약에 대한 소중한 경험도 중요하지만
  가정에서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있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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