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저도 먹어도 될까요?”
몇 해 전 여름. 미국에서 오신 아버님께서 가장 급하게 찾으신 음식은
다름 아닌 보신탕이었다.
미국에서도 없는 음식 없이 잘 지내시지만
유일하게 못 드시는 음식이 하나 있다니 그것이 바로 보신탕이다.
출산일이 다가옴에 따라 배가 남산만해진 아내는 계속 보신탕을 쳐다보고
군침을 흘리며 마치 고민 상담을 하러 온 의뢰인처럼
시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이지만 아기를 가지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얘기가 못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또는 그 어떤 징크스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먹으려무나.”
아버님은 별 것을 가지고 고민한다는 말투로 말씀하셨다.
아내는 몇 번인가 갈등하는 듯한 얼굴을 하다가 긴 한숨을 내쉬고는
그냥 참겠다고 했다.
아기 가졌을 때 보신탕을 먹으면 태어날 아기의 성격이 개 같아진다는,
전혀 비의학적이고 비생물학적인 근거없는 소문을 얘기하면서…….
“정말 먹어도 괜찮아요?”
잠시 후 또 생각이 났는지 입맛을 다시며 아내가 묻는다.
늘 그러시는 것처럼 아버님은 같은 억양으로 그러라고 하신다.
드디어 아내는 숟가락을 들고 월드컵 결승전에 나서는 선수처럼 밥상에 앉았다.
그 다음 상황을 스포츠 중계의 형식을 빌어서 표현하면 이렇다.
“말씀드리는 순간 힘센 마누라 선수, 숟가락을 들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숟가락입니다. 거의 국자나 주걱 수준입니다.
저것으로 뭘 하려고 그럴까요. 지금 막 한 숟가락을,
아니 한 주걱을 건졌습니다.
아마 작은 그릇에 옮겨 담은 다음 재시도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만……. 그게 아닙니다. 바로 입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 * *
“도대체 당신은 뭘 못 먹어?”
저녁을 마치고 TV 앞에 앉아 아내에게 물었다.
“두 가지는 못 먹지요…….”
두 가지?
두 가지라는 소리에 나도 순간적으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못 먹는 음식도 있긴 있다는 오랜 궁금증이 풀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일부터는 그 두 가지 음식만 사 가지고 들어오겠다는
비장한 결심이었다.
그리고 나서야 그 두 가지가 뭔지 궁금해졌다.
해산물인가? 아니다. 좋아하는 편이 아닐 뿐이지 못 먹는 것은 아니다.
그럼 밀가루 음식? 그것도 못 먹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혹시 욕? 참, 이건 음식이 아니구나.
아내에게 그 두 가지가 뭐냐고 물으니 아내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고…….”
“……!”
더 이상 정상적인 대화는 힘들다고 판단되어 대화를 중단하기로 했다.
부부는 대화가 많아야 한다는데 우리 부부의 대화는 참으로 웃기는 이유로
대화가 중단되곤 한다.
물꼬가 터진 그날을 시발로 아내는 계속 보신탕을 먹었다.
먹고 나서는 혹시나 아기가 잘못될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불과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의 고민이었고 고민이 끝나기가 무섭게
디저트를 찾곤 했다. 그해 여름은 평년보다 더 많은 개들이 수난을 당했다.
* * *
그리고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잠시나마 있었던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4.2㎏의 건강한 사내 아이가 나왔고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 보신탕을 즐기며 고민하던 아내의 걱정과는
아무 상관 없이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다.
이 세상의 여자들에게 음식은 뭐든지 맛있게 먹어야 건강하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아기를 가졌을 때는 물론 평소에도 보신탕은 먹어도 좋다고 권하고 싶다.
나는 보신탕이라면 소리를 지르며 눈을 흘기는 여자보다
국물까지 소리내며 다 마셔버리는 여자가 더 좋다.
의사들도 수술을 마친 환자에게 보신탕을 권한다지 않는가?
그러니 걱정들 마시고 안심하고 많이 먹어도 된다.
다만 돌이 갓 지난 아기에게 밥과 함께 비벼주면 피부에 두드러기가 생기니
이 점만 주의한다면 말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