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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체질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수영장에 자주 갔다.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실내수영장이라는 단어 자체가몹시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는데 어머니의 특이한 교육방식으로 인해수영장 가는데는 어떠한 방해세력이나 외부의 압력 등별다른 곤란함 없이 편하게 갈 수 있었다.다른 어머니와 달리 나의 어머니는 남자가 살아가며 꼭 해야 하는 것을두가지 지목하셨는데 다름 아닌 바둑과 수영이었다.정신도 맑게 하고 몸도 튼튼해지라는 교육 목적인지 아니면어디가서 머리 나쁘다는 소리 듣지 말라는 동시에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하시겠다는생존 개념을 가르치려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영장엔 잘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가기 싫은 기원에 억지로 가야 했으나중학생이 되어 수영장에 가니 재미도 있고 친구들 하고 어울리는 맛도 있어매주, 아주,..

단순 반복의 오묘한 즐거움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집에 들어오니 여동생과 남동생이 사이좋게 마주 앉아무언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놀고 있었다.가만히 들여다보니 손에는 감이 쥐어져 있었는데한사람이 손에 쥐고 다른 사람에게손안에 있는 것을 만져보라고 하고는 서로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감 잡혀?”“아니, 잘 안 잡혀”“자, 이제 감 잡혀?”“응, 감 잡았어”“이번엔 니가 할 차례야”  그리고 각자 역할을 바꾸어또 다시 그 대화 및 이에 상응한 액션을 반복하고 있었다.아무리 동생들이라고 해도 이때 나이가 이미 20대를 넘어선 나이었으니어린애들 장난도 아닐텐데 그렇게 놀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  “정말 놀구들 있네...”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툭 내뱉으니동생들은 나보다 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

복권

얼마전 막내 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미국에 갔다.피는 콜라보다 진하다의 글에 과 등많은 소재를 제공해주었던 바로 그 동생이다.가만히 생각해보니 식구들 모두가 미국에 살고 있어서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것이 10년도 훨씬 넘은 일이었다.그동안 시카고에서, 아이오와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분당에서각각 일부분의 식구들이 모인 적은 수시로 있었지만이렇게 대규모적이며 총동원적으로 모인 일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해후를 하고이런저런 얘기들로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그러던 중 막내가 어디선가 들었는지 뭐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듯흥분하며 떠들어댔다.  “형! 이번주 복권 당첨자가 없어서 다음주 당첨금이 300만불로 올랐대...”  300만불?처음에는 300만원으로 들어서 참 미국치고는복권당첨..

황도병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한번씩 경험해본 꾀병이라는 것이 있다.이 꾀병은 대부분 학교에 가기 싫을 때 생기는 병으로 약간의 미열만 있으면‘병’으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여기에 약간의 기침과 초췌한 표정만 가미되면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환자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누나들은 가증스럽게도 뜨거운 아랫목에 머리를 비비고뜨거운 머리를 어머니께 들이대는 비양심적인 행동도 과감히 시도했지만나를 비롯한 동생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면서자가발전을 통해 체내 열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늘 택하곤 했었다. 그런 꾀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즈음이면어머니는 늘 복숭아 통조림을 한통 사오시곤 했다.깡통 표면에 ‘황도’라고 크게 쓰여 있는 이 특별식은오직 환자로 인정받은 사람만이 먹을 권리가 있었으며,비환자인 형제들은환자만의 특별한 권..

동생

동생이 둘 있다. 여동생과 남동생.      주로 동생들에게 편지를 쓴 일은 군대에서 보낸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란 표현을 쓰곤 했다.      내가 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동생들뿐이다.      그런 표현은 적으면 적을수록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남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 여동생하고 둘이 살았고      여동생이 시집간 이후로는 제대한 남동생하고 둘이 살았다.             꽤 오래전부터 두 동생은 부모님과 또 다른 형제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산다.      그래서 형제면서도 우리는 또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 사랑하는 나..

전화

“그러니까 말이야… 내 말 잘 들어…  목소리가 조금 굵고 말을 천천히 하는 남자가 날 찾으면 없다고 하고,  그 나머지 경우는 날 바꿔줘야 해. 알겠지? 꼭!”   대학생이던 작은 누나는 당시 중학생이던 내가 못 미더워서인지몇번을 확인하고 또 주의를 주고 연습을 시켰다.아마도 누군가 귀찮게 구는 친구가 있으며,꼭 받아야 할 전화 또한 있었던 모양이다.나는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해서 목소리를 몇번씩 가다듬고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는데누나는 어린 중학생에게 그 일을 맡긴 것이 못내 불안한지전화기 앞을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지금 같으면 도와주는 척하면서 장난을 해봄직도 했지만그 당시 나의 정신 연령으로는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어쩌면 지금의 정신 연령이 더 중학생에 가까운 걸 지도 모르겠지..

20년 후의 복수

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하루,집에서 밥을 먹다가 무척이나 밥 먹기가 힘들어보리차에 밥을 말아 먹기로 하고주전자를 들어 먹고 있던 밥 공기에 보리차를 잔뜩 부었다.그리고는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어보니그것이 보리차가 아니라 수정과였다.달짝지근하면서도 씁쓰레한 맛이 밥과 함께 어우러지니아까보다 더 먹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그냥 버렸다가는 어머니께 혼날 것 같은 초등학생다운 생각도 들었고한편으로는 이게 다 돈인데 버리기엔 아깝다는,초등학생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초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녀석이 어디서 흙장난을 하다 왔는지흙투성이가 된 채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형 밥 먹네? 엄마는?”  세상에 그 놈이 그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물..

아버지와 딸

미국에 사시는 큰 누나가 아기를 낳아 어머님은 미국으로 가셨고아버지 혼자서 어머니 역할까지 하시며 지내던 어느날,아버지께서는 앉은 자세로 무언가 꼼꼼히 하고 계셨다.걷은 빨래를 정리하시는 것 같아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그만 두라신다.그날 저녁, 여동생은 무척 화가 난 얼굴로 아버지께 따지듯 물었다.   “아빠! 이 옷 아빠가 만졌어?” “응……. 왜?” “잉~ 난 몰라~잉……. 잉……. ”  그리고 여동생은 옷을 집어 던지고세살박이 어린애마냥 징징대며 울기 시작했다.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여동생 티셔츠의 목덜미 안쪽에 붙은,일명 레떼루가 목에 거추장스러울 것이라며 일일이 떼어내신 것이다.하지만 다 떼어나고 보니 또 그게 있어서 떼어 내셨다는데그것은 바로 옷의 앞 가슴 부분에 붙어 있던 라벨이었다...

뷔페

군복무를 하다 휴가를 나오니 어느덧 여동생은 대학생이 되었고작은 누나는 아기 엄마가 되었으며큰 누나와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있었다.군인 신분이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인지작은 누나와 매형이모처럼 형제들끼리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장소는 뷔페 식당으로 처음 가보는 뷔페이기도 했다.매형이 특별히 예약한 별실은형제들이 정담을 나누기엔 더없이 적절한 장소여서오랜만에 형제들이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덧 자리 뜰 시간이 되었을 때평소엔 안 그러던 작은 누나가 엄마가 된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이것저것 싸 가지고 갈 만한 음식들을 가방에 담았다.역시 아기 엄마가 되면 사람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다.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결혼하고 ..

여물통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내가 함께 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밥을 한참이나 맛있게 먹던 막내 남동생이 갑자기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이상스럽고 망측하기 그지 없는 제안을 했다.  “형! 우리 서로 지저분한 얘기해서 누가 결국 밥 못 먹게 되나 내기 할래?”“ ……?”  막내다운 발상이면서 또한 이 세상에 가장 부질없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나 역시 한창 잘 먹을 나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면 대결을 해보자는 무모한 발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여동생만 그런 우리를 보고 지저분하게 놀고 있다며 계속 투덜거렸다.  “뭔 얘기 하려는데……?”  혹시 무언가 비장의 무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속으로 긴장하면서도그 짧은 시간에 나름대로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지저분한 단어와 형상,그리고 이에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