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둘 있다. 여동생과 남동생.
주로 동생들에게 편지를 쓴 일은 군대에서 보낸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동생'이란 표현을 쓰곤 했다.
내가 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동생들뿐이다.
그런 표현은 적으면 적을수록 가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남동생이 군대에 갔을 때 여동생하고 둘이 살았고
여동생이 시집간 이후로는 제대한 남동생하고 둘이 살았다.
꽤 오래전부터 두 동생은 부모님과 또 다른 형제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서 산다.
그래서 형제면서도 우리는 또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나의 동생, 사랑하는 나의 오빠, 형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아침에 바로 아래 여동생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생일을 깜빡 잊었다는 내용이다. 우리가 언제 생일 챙겨주며 살았는가.
그저 다른 핑계 없으니 생일 핑계로 오빠에게 보낸 편지겠지.
* * *
늘 활달하고 유머감각이 똘똘 넘쳐흐르는 여동생은
언제나 편지로 사람을 즐겁게 했다.
군에 있을 때도 여동생의 편지는 같은 내무반 동료들의
베스트셀러였고, 그 기이한 발상과 절묘한 표현은
군 생활로 단순해진 군인들을 정신적으로 유린하기에 충분했다.
그 여동생이 오늘도 편지에 늘 그러하듯 넘쳐나는 위트가 담겨있다.
동생 편지의 마지막 구절.
"늦었지만 생일 축하혀, 올해로 스물여덟살 되지?"
* * *
사랑하는 나의 동생아.
우리가 아주 옛날에 남동생하고 셋이서 시집 장가가지 말고
우리끼리 잘 살자고 했지.
그런데 지금은 애 아빠, 애 엄마가 되어 살고 있구나.
그 약속이 얼마나 허망한 약속이라는 걸 서로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었으니 우리는 서로서로 잊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거란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리고 너희들이 그러는 것처럼
또 언젠가 반갑게 만날 날이 있겠지. 곧 만날테니 기다리자.
헤어질 때 눈물 글썽이지 말고.
한번씩 만날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늙어서 만나는 거란다.
하지만 애들이 커간다고 생각하지 뭐.
건강하고. 오빠는 여기서 또 하루하루 잘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으니
걱정말고. 만나면 늘 반가운 사람이 세상에는 그리 많지 않구나.
이만 줄인다.
덧말 : 이름은 안 썼으니 이거 그대로 복사해서 막내에게
내가 보낸 걸로 또 보내라. 힘들게 쓴 거다.
오빠 부분을 ‘형’으로 수정하는 거 잊지 마라.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