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생이던 어느 하루,
집에서 밥을 먹다가 무척이나 밥 먹기가 힘들어
보리차에 밥을 말아 먹기로 하고
주전자를 들어 먹고 있던 밥 공기에 보리차를 잔뜩 부었다.
그리고는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어보니
그것이 보리차가 아니라 수정과였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씁쓰레한 맛이 밥과 함께 어우러지니
아까보다 더 먹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냥 버렸다가는 어머니께 혼날 것 같은 초등학생다운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게 다 돈인데 버리기엔 아깝다는,
초등학생답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무런 행동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초등학교에 다니던 막내 녀석이 어디서 흙장난을 하다 왔는지
흙투성이가 된 채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형 밥 먹네? 엄마는?”
세상에 그 놈이 그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10살 남짓한 나이였으니 그 뒤로 막내 때문에 더 반가운 일도
자주 생기게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 수가 없긴 했다.
일단 먹던 밥을 막내에게 줬다.
“형? 밥맛이 이상해.”
“임마! 그게 수정밥이라는 거야.
그거 먹고 나중에 친구들 한테 자랑해도 될 만한 귀한 음식이야~”
어린애한테 친구들에게 자랑거리가 생긴다는 사실은
상당한 메리트가 있는 표현이어서
막내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남은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난 그 모습을 보면서 거짓말 많이 해서 나중에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음흉한 예감도 들곤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몰래 웃는 버릇이 생긴 것도 그날 이후의 일이다.
* * *
그리고는 세월이 무려 20년이나 지난 어느날.
친지의 결혼으로 어느 결혼식장 뷔페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뷔페에 가면 음식을 접시에 담는 일을 몹시도 귀찮아 하는 나는
주로 주변의 사람들이 가져온 걸 접시째 훔치곤 했으며
같은 자리에 후배라도 있으면 내 것까지 주문하면서도
기껏 가져다준 음식을 먹고 나서 맛 없다고 투정하곤 했다.
후배도 없으면 그냥 안 먹고 말았다.
그런데 그날은 후배보다도 더 든든한 막내 동생이 있었으니 인건비도 없고
부려먹기도 쉽고 내 입맛도 잘 아는 놈이니 음식 투정 할 일도 없을 것이라는
행복한 생각으로 한 접시를 주문했다.
막내가 담아온 음식의 메인 요리는 카레라이스였는데 먹어보니 맛이 이상했다.
그러다가 여태까지 부페에서 카레라이스라는 음식은 먹어보긴커녕
본 적조차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생각났으며
그 생각은 지금 먹고 있는 이 음식에 대한 궁금증으로 번져갔다.
하지만 내 식성을 잘 알고 있는 막내가 가져다 준 것이니
무언가 깊은 배려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곤 계속 먹고 있었는데 옆에서 식사하던,
안면이 조금 있는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밥을 호박죽에 비벼 먹으면 맛있어요?”
* * *
그리고는 또 몇 년이 지난 요즘,
아직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면서 20년 뒤를 기다리고 있다.
가장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두 가지 음식을 연구하고 또한 찾아 다니고 있다.
막내는 40대 후반일 테고 나는 50대 초반이 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분명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말 것이다.
지금 계획으로는 아마 그때가 되면 우주식품이 개발되어 한 알만 먹으면
일주일을 거뜬하게 버티는 알약이 주식이 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되어
그것을 회충약과 바꾸기라도 할 것이다.
20년 동안 ‘수정밥’으로 놀리던 것이 그 뒤 20년은 ‘호박라이스’로 역전을 당했지만
분명 20년 뒤엔 ‘회충 캡슐’로 반격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형제가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더욱 우애 있게 지내야 할 것 같다.
아하누가
2013년 현재, 나는 50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