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를 하다 휴가를 나오니 어느덧 여동생은 대학생이 되었고
작은 누나는 아기 엄마가 되었으며
큰 누나와 부모님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있었다.
군인 신분이어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아쉬움 때문인지
작은 누나와 매형이
모처럼 형제들끼리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장소는 뷔페 식당으로 처음 가보는 뷔페이기도 했다.
매형이 특별히 예약한 별실은
형제들이 정담을 나누기엔 더없이 적절한 장소여서
오랜만에 형제들이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가고 어느덧 자리 뜰 시간이 되었을 때
평소엔 안 그러던 작은 누나가 엄마가 된 생색이라도 내려는 듯
이것저것 싸 가지고 갈 만한 음식들을 가방에 담았다.
역시 아기 엄마가 되면 사람이 달라져도 한참 달라진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 더욱 확실해진다.
물론 그것은 더 훗날의 얘기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우리 자리는 별도의 룸이어서
그 행위에 대한 주변의 눈치는 그리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가지고 있긴 했다.
담을 만한 음식을 고르던 누나를 보고 나를 비롯한 동생들은
이것저것 참견을 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이 음식보다 저 음식이 담아가기 쉬우며 또한 더 효율적이라는,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이 발생됨에 따라
뷔페 식당의 한 별실에서는
때 아닌 음식의 용도와 보관 및 이동에 대한 세미나가 열리게 되었다.
각자 알고 있거나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을 총망라하여
이것도 담으라 저것도 담으라고 열을 올려가며 누나에게 말하다
문득 곤란한 사실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음식을 담은 행위야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밀실 협상이었으니
형제끼리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 소리들이 가끔씩 오고 가며
또 입구에서 안내를 하는 웨이터의 귀에도
생생하게 잘 들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 보니 그것도 꽤나 쪽팔리다는 생각이 각자의 머리에 불현듯 들었다.
“그러니까, 암호를 사용하잔 말이야~”
순간적 판단 능력과 현지 적응 능력에서
가장 발군의 실력을 보이던 여동생이 제안했고
이에 가장 뛰어난 응용력을 보이는 막내 동생이 새로운 용어의 암호로 응답했다.
“그러니까 이것도 싸 가~ 저것도 싸 가자! 하면 쪽팔리니까
‘이것도 싸 가자!’를 지금부터 ‘이것도 먹고 가자!’로 바꾸는 거야. 어때?”
하긴, 먹을 만큼 먹었으니 누군가가 ‘이것도 먹고 가자~’라고 말했다고
그걸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고
어차피 신경이 쓰이는 사람은 안내하는 웨이터뿐이니
그것도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형제들의 뛰어난 호흡과 조직력으로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그 암호는 정확하게 서로에게 전달되었으며
암호를 전달하는 과정이 우스워 서로 몇 번이나 큰 소리로 웃곤 해서
지나가던 웨이터가 고개를 내밀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기도 했으며,
그럴 때일수록 암호가 가지는 순기능에 서로들 감탄하느라
더 큰 웃음 소리를 내었다.
여동생은 지나치게 흥분한 나머지
자신이 의자에서 뒤로 발랑 넘어진 줄도 모르고
우리에게 왜 다들 공중에 누워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진행되던 우리 형제들의 암호는
나의 생각 없는 한 마디가 유일한 실수라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고
그 일은 형제들 사이에서 주워온 자식에 대한 의심이 가는 1순위로 결정되어
향후 10년간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정신없이 웃어가며 암호가 오가던 어느 순간 나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누나, 이 숟가락도 먹고 가자~”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