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큰 누나는 서울의 한 여자 고등학교에서
음악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다.
늘 기말고사 때면 누나는 답안지 뭉치를 집으로 가져와 채점하곤 했는데
가끔 시간이 맞으면 채점을 도와주곤 했다.
그러던 하루는 이상한 답안지를 하나 보았다.
“누나! 여기서부터는 답이 이상해?”
답안지는 네 칸 중에 정답 한 칸을 새까맣게 채우는 스타일이어서
정답에 구멍을 내어 표시한 정답지를 가지고
답안지와 대조해보면 금방 점수가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16번 문제부터는 단답형 답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답의 내용이 모두 고전 음악 제목인 것이 이상하여 누나에게 물었다.
“음……. 그거 청음 시험이라는 건데 너희 학교는 안 하니?”
“청음 시험?”
그러니까 누나의 설명은 시험 시간에 번호를 붙이고 음악을 틀어주면서
그 번호에 맞는 음악의 제목을 답안지에 쓰는 시험이라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우리 학교는 안 하는데…….”
다시 부지런히 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항상 답안지 작성만 하다가 이렇게 남이 작성한 답안지를 채점해 보니
기분이 참으로 묘했다. 이렇게 보는 답안지란 아무것도 아닌데
왜 그 동안 답안지만 보면 한숨을 쉬었을까?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답안이 하나 발견되었다.
‘비참……?’
16번 문제의 답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었는데
그 답안지를 작성한 학생은 정답을 비참하게도 <비참>이라고 적었다.
한동안 웃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저런 답이 나오게 된 과정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상식적으로 고전 음악의 제목 중에
비창이라는 곡이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텐데
어찌하여 이 학생은 그런 답을 썼을까?
앞의 사람 것을 베껴 쓰다가 잘못 본 걸까?
아마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답을 보고 쓰기에 급한 사람은
상황을 냉철히 분석할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학생은 앞 자리나 옆 자리 학생의 답안지를 보고
썼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하지만 잠시 뒤에 나는 그 학생이 남의 답을 보고 쓴 것이 아니라
음악이 흐르며 문제가 나올 때,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용해서 옆 자리의 친구에게
조그마한 소리로 묻고 그 학생이 말한 답을 받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의 답안지에는 20번 문제의 답이 이렇게 쓰여 있었다.
‘쥐 선생의 아리랑.’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