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도시락이라는 것을 가방에 넣고 학교에 가게 되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도시락이라는 것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기도 했고,
또한 나이가 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것이기도 했다.
당시 형편으로는 보리가 잔뜩 섞인 밥에 김치 한 조각 들어 있는 것이
도시락이라는 실체의 전부였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러했기에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되지는 못했다.
다만 도시락이 있어서 하루가 뿌듯했고 즐거웠을 뿐이다.
그것이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채 말이다.
그날은 어머니가 아침부터 바쁘셔서 도시락을 가져갈 수 없었다.
칭얼거리는 나를 타이르시던 어머니는
점심 식사 시간 전에 학교에 가져다 줄테니
걱정 말라며 나를 학교로 떠밀듯이 보내셨다.
이제나 저제나 도시락이 도착하는 시간만을 헤아리며 기다리고 있던
어느 수업 시간에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낯익은 방문객이 들어섰다.
“아니, 넌 누구니?”
당시 담임 선생님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코흘리개 여자애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엄마가요~ 도시락을요~ 오빠한테 가서요~ 전해주래요.”
당시 여동생은 같은 학교 1학년이었고 1학년은 수업이 금방 끝나니까
집에 가서 도시락을 가지고 다시 학교에 온 모양이었다.
말투가 비교적 똘똘하게 나오는 걸 보니 엄마 앞에서 빗자루로 맞아가며
최소한 30분은 교육을 받은 듯 했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동생이 불쑥 나타난다는 것이
수업을 받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분명 웃어야 할 상황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고
나는 그 상황의 주인공이 되는 게 쑥스러워 애써 나를 찾는 동생의 시선을 피하며
최선의 해결 방안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얘! 네 오빠가 누구니?”
선생님께서는 계속 친절하게도 도시락의 주인을 찾으려 노력하시는 중이었고
같은 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남 모를 나의 창피함은 점점 더해 가고 있었다.
“아! 저기 있다!”
선생님의 말씀에 대답도 안 하면서 두리번거리던 동생은
불행히도 나를 찾고야 말았다.
주변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갔고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던 나는
애써 창피함을 외면한 채 사태를 더 확산시키지 않으려고
도시락을 받으러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게 웬일, 열려진 교실문으로
또 한 꼬마가 휙 뛰어 들어왔다.
혼자 온 줄로만 알고 있었던 여동생이 그 밑의 남동생까지 데려온 것이다.
아마도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다리다 못한 남동생이
불쑥 들어오고야 만 것이다.
그런데 남동생의 그 모습 또한 가관이었다.
코를 질질 흘리면서, 그것도 모자라서 어디서 주웠는지 부러진 커다란
연탄집게(이 녀석은 그게 뭐 좋은 건 줄 알고 매일 들고 다녔다)를 들고 있었다.
교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졌고
나는 직접 오시지 않은 어머님을 원망하는 동시에
형제가 많음을 처음으로 불행하게 느껴야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당연히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고
또한 어머님께서 자주 애용하시던 세 자루의 빗자루 가운데 가장 굵으면서
강도와 경도가 뛰어난 빗자루로 엄청나게 얻어맞았음도 물론이다.
그 빗자루로 방바닥을 쓰는 장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생김새만 빗자루였지 주로 교육적인 목적으로 쓰였다.
그래서 늘 나는 회초리로 맞는다는 친구들이 부럽기만 했다.
도시락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이렇다.
* * *
그리고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여동생은 지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고
나보다 훨씬 더 커버린 막내는
이 얘기만 꺼내면 확실한 증거를 대라며 괜한 생트집을 잡는다고
내게 또 다른 생트집을 잡곤 한다.
그러면서 ‘뽑기’라 불리던 설탕으로 만든 과자를 만들다가
뜨겁게 달궈진 국자에 무릎을 데이게 했다며
아직도 남아 있다는 그 상처를 내게 보이려 늘 바지를 걷곤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동생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용감한 남매의
도시락 배달이 먼저 떠오른다.
그 도시락에 담겨 있는 형제들의 훈훈한 정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도시락이란 말만 들으면
커다란 쇠도시락 위에 동생들의 얼굴이 정겹게 그려진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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