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콜라보다 진하다

민주 콜라

아하누가 2024. 2. 21. 20:20

여동생은 표현력이 유난히 뛰어났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상황에서도

절묘한 표현으로 예를 들거나 또는 비교를 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늘 내게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핀잔을 주곤 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요구가 전국을 뒤덮던 6월 항쟁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당시 육군 모 부대 소속 현역 군인인 나는 4박 5일간의 청원휴가를 나왔고
여동생은 명동에 있는 모 피자 체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었다.
여동생이 일하는 곳을 찾아간 나는 엄청나게 많은 인파와 이에 못지 않게
많은 진압 경찰, 그리고 하늘의 색깔마저 변하게 한 수많은 최루탄 가루에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군인 신분으로 느껴야만 했다.


신분증 제시와 통행 제한 등 이런저런 고생 끝에

여동생이 일하는 피자점에 도착했다.
여동생은 조금만 지나면 일이 끝난다며 피자나 먹고 있으라고
작은 피자 한 판을 가져다 주었다.

맛은 있었지만 혼자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라
빵의 끝 부분만 남긴 채 알맹이에 해당하는 부분만 집어먹었다.
얼마 후 일을 마친 여동생이 내가 앉아 있는 자리에 오더니

커다란 손톱 모양으로 남긴 피자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촌스럽긴. 어두육미빵껍도 모르냐?”
“어두육미빵껍?”

 

 

무슨 말인가 몰라 되물었더니 여동생은 늘 그랬듯이 혀를 끌끌 찬다.

 

 

 “그러니까 빵은 껍데기가 최고라는 뜻이여.”

 

 

몇 번 소리내어 읽어보니 그도 그럴 듯하긴 했다. 어두육미빵껍이라…….
아마도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들어본 적이 없는 얘기로 보아
이는 순수한 여동생의 창작품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돈 있으면 좀 꿔주라.”

 

 

순수한 창작품이 아니라는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던 나는
여동생이 무식한 군바리라 놀릴까 봐 화제를 돌리고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돈?”

 

 

여동생은 잠시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차라리 벼룩에 간에 붙어 사는 간디스토마의 내장을 빼 먹지.”
“…….”

 

 

할 말이 없어졌다.
벼룩의 간도 아니고 벼룩의 간에 붙어 사는 간디스토마의 내장을 빼먹으라니…….
이 말은 생물학적 지식에 바탕을 두고 오래 전 속담을 응용한 뒤
경제학적 의미로 그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든 새로운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분석을 떠나 하여튼 대단한 동생이 아닐 수 없다.

마침 밖에는 또 한 번 소란이 있었는지 최루탄이 터지고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피해다니다 그 피자 가게로 몰려들어 왔다.
이미 바깥 셔터를 반쯤 내리고 영업하고 있었지만 장사하는 사람도
최루탄과 진압 경찰에 밀려오는 사람들을 딱히 어찌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왜 그러는지는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들어와 있던 손님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이나

또 진압 경찰에 밀려들어온 사람들이나
전혀 미안하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피자점 같은 업소는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잠시 숨을 돌리고 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을 도울 만한 일이 없을까 생각중이야…….”

 

 

여동생은 밀려들어온 사람들을 보면서 한 마디 했다.
하지만 피자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이 도와줄 만한 일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그저 매일 저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안스러워 한 말이었을 게다.

저녁이 돼서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되었다.
잠시 나온 휴가 때 본 사회의 모습이 심상치 않아 부대로
돌아가는 마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 * *

 

 

 

부대로 복귀하고 또다시 변함없는 군복무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여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었다는 소식이었다.
진압 경찰로부터 쫓겨 피자점으로 밀려 들어오는 시위 군중들에게

‘민주 콜라’라는,
자신의 순수한 창작 명칭으로 콜라를 무료로 나누어 주다가
주인으로부터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여동생은

6월 민주항쟁에 있어서 자신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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