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시간이 넘었다.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아직도 어딘지도 모를
하늘 한복판을 맴돌고 있다.
막내 동생은 좁은 비행기 좌석이 불편하지도 않은지 잠에 푹 빠져 있다.
하긴 이 녀석이 어린 시절에는 어딘가에 등만 닿았다 싶으면 잠에 빠져들곤 해서
한때 우리가 불렀던 별명이 ‘본능아’였으니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긴 했다.
등을 힘껏 젖히고 나니 한국에 남은 마지막 남은 핏줄인 막내 동생마저
미국으로 이민을 가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섭섭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식구들이 미국에 살고 있으니
미국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군대를 마치고 대학까지 졸업한 적잖은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내심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미 가정이 있는 내 경우는 이민을 가기가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그 안타까움에 관광 비자를 통해
막내 동생과 같이 미국 방문길에 오르게 되었다.
오랜만에 많은 식구들이 해후를 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던 어느 날,
막내와 나는 부모님과 함께 시내 한 복판에서
대중 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가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막내에게 이곳에 살 사람이니 지리를 잘 익혀두라며
집이 있는 곳의 지명을 잘 적어 두라고 하셨다.
그곳은 Irving Park라는 길과 Clark라는 두 길의 교차점이라시며
이 두 길의 이름을 알려주셨으며
막내는 조심스럽게 수첩 어딘가에 이를 꼼꼼히 적었다.
힐끔 막내의 수첩에 적힌 글을 훔쳐보다 나는 꽤 놀랐다.
적어도 앞으로 미국에서 살아가야 할 놈 치고는 그 무식함이
나의 핏줄에 대한 자신감마저 상실해버릴 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막내는 수첩에 영어도 아닌 한글로 ‘클라아-크’와 ‘어ㄹ빙 파-악’이라고
용감하게 적고 있었다.
한글을 읽으면서도 영어처럼 발음해보려는 영악한 잔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칠판에 나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선생님께 한 대 쥐어 박히면서 들었던 얘기가
지금 이 순간에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역시 그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무식하면 그만큼 용감한 것인가?
나도 그때의 선생님처럼 막내를 힘껏 쥐어 박으며
무식은 용감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지만
나의 예상보다 막내는 더 무식해져 있어
나의 가르침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한편으로 다른 관점에서 이 사태를 해석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 교육의 맹점이라는 국가적인 문제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의 교육은 너무도 커다란 문제점과 비효율을 가지고 있다.
학생들을 문제를 맞추는 기계로 만들 뿐
교육이 가지는 사고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중·고교와 대학 등 자그마치 10년이나 영어를 배운 사람이
정작 영어를 쓰는 나라에 와서는 아무 말도 못하는 일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 역시 그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었으며 누구 하나 나서서
이를 시원하게 내게 이해시켜 줄 사람 또한 없었다.
그저 나는 내 자식이라도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아주 작은 바람만 있을 뿐이었다.
미시간 호수에서 불어오는 무섭도록 추운 겨울 바람도 잊은 채
어느덧 나는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싣고 있었다.
* * *
여름이 왔다.
그 해 여름은 너무도 더웠다.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 문부터 열고 그 앞에 쪼구리고 앉아
찬바람을 쐬다가 항상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오셨다.
몇 가지 일이 있으셔서 잠시 들르셨다고 하셨다.
약 8개월 만에 만나는 아버지였지만 여전히 반가웠다.
그곳의 식구들 소식은 항상 전화로 물었기 때문에 그저 잘 지낸다는
짧은 사연밖에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가 전해주시는 상세한 소식을 들으니
문득 식구들이 그리워졌다. 그러다가 막내 소식도 듣게 됐다.
막내가 주정부에서 치르는 우체국 직원 모집 시험에서
상당한 고득점으로 합격되었다는 얘기였다.
거의 수석에 가까울 것이라는 아버지의 자랑 섞인 말씀이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우체국이라면 미국에서도 꽤 좋은 직업이어서
우리 교민들 사이에도 인기가 좋은 직업으로 알고 있었으며,
또 내가 아는 막내의 영어 실력으로는
그 점수는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시험을 한국어로 치뤘냐고 아버지께 여쭈어 보았다가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시는 소리만 들어야 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내는 도저히 그런 점수를 받을 실력이 없다.
그 녀석은 맥도날드에서 커피도 주문하지 못하는 걸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그때 우리 형제는 밥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임에도
세트로 주문하여 햄버거를 또 먹어야 했다.
그런 막내가 그 점수를 받는다는 것은
내 친구 용모가 서울대에 수석 합격하는 것이나 같다.
아니면 운전 면허 필기 시험을 세 번이나 낙방한 친구 유철이가
사법고시에 붙었다는 소식이나 같은 셈이다.
이건 100% 컨닝이 확실하다.
하지만 막내는 누구를 믿고 누구의 답안지를 훔쳐 봤을까?
그것 또한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었다. 그저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사실을 믿어주고 축하해 주는 것밖에는 없었다.
저녁이 되어 아버지가 무사히 도착하셨다는 안부 전화도 할 겸
미국에 전화를 하고는 곧 막내를 찾았다.
그리고는 그 사실을 부리나케 물어 보았다.
막내 녀석은 좀 쑥스러운지 대답이 시원찮았다.
그럼 그렇지……. 아마도 나의 예상대로 막내는 재주껏 컨닝을 했으며
지금 전화를 하고 있는 주변 상황은
어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있으니
말을 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는 머뭇머뭇 말을 이어갔다.
“아마 형이 봤어도 잘 봤을 거야…….”
막내는 알듯 모를듯 이상한 말만 하다 나의 집요한 다그침에 지쳤는지
아니면 질려 버렸는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알고난 나는 평소의 사고에 대해
심한 갈등을 하게 되었다. 막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응, 그게 그렇더라구. 나도 잔뜩 긴장했지 뭐야.
근데 막상 시험지를 받아보니까…….”
막내는 잠시 호흡을 조절하는 듯 지저분한 소리를 한 번 내더니 말을 이어갔다.
“시험이 4지선다형이더라구…….”
“……?!”
난 또 한 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힘차게 결론 내렸다.
우리의 교육 제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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