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콜라보다 진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놀이

아하누가 2024. 2. 21. 20:04


     


     내가 지금의 우리 큰아들 후연이만 했을 때
     아버지께서 아침마다 이불을 개어주셨다.
     아버지가 이불을 개어주실 때마다 여동생과 함께
     이불 끝 자락에 매달려 아버지가 들어올리는 이불의 각도와
     만유인력의 원리를 이용하여
     이불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난을 놀이터 미끄럼틀 보다 재미있어 했다.         
     미끄럼틀이야 고정된 시설에서 능동적으로 시도해야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것에 비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올리는 이불에
     매달리는 것은 미끄럼틀이 통째로 움직이는 것이니
     지금으로 따지면 놀이동산의 '바이킹'과 흡사한 원리였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이 놀이를 개발한 나는
     몹시 흥에 겨워 아침에 잠에서 깨는 일이 매우 즐겁게 느껴졌다.
     같이 뒹굴던 여동생이야 용어는 몰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떨어진다는
     만유인력의 원리 정도는 아는 나이였으니 함께 놀만 했지만
     그 보다 더 어린 남동생은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즐거워하니
     함께 즐거워했다.    
     나이가 어린 신체적 열세로 인해 막내는
     우리보다 자주 굴러 떨어졌으며 얼핏 보면 심한 중상을 입을만한
     추락에도 주변 분위기에 따라 낄낄대며 웃곤 했다. 불쌍한 녀석.....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그 재미있는 놀이가
     우리 집 만의, 우리 형제들만의 놀이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른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혹시 모를 가문의 명예를 고려하여
     섣불리 발설하지 않았으니
     다른 집 상황은 알 수 없었을 뿐이다. 어쩌면 알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그 놀이는 금방 기억에서 잊혀졌고
     아직도 그 놀이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만 어떤 이유로
     그 놀이를 중단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놀이가 지겨워 졌는지, 그 놀이를 하기에는 체중이 너무 많이
     불었는지 또는 놀이 중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또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멈추는 것이었을까?          

 

 


                    *       *       *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안을 조금이라도 넓혀보려고
     오랫동안 함께 해온 침대를 치웠다.
     넓어진 방에 이불을 넓게 펴고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이 누우니
     이야말로 옛날로 돌아온 기분이다.
     깊은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 물이라도 한잔 마시고
     다시 방에 들어와 보면 세 명이 잠자는 그 꼬락서니(?)가 하도 우스워
     잠이 달아날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다정다감한 분위기인가.
     침대가 없어져서 생기는 화목함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마다 이불을 개어야 한다.
     어느 틈엔가 두 아들이 이불을 개려면 여지없이 달려들어
     이불 끝 한 자락에 드러누워 내가 이불을 개기 위해 들어올리는
     이불의 각도와 만유인력을 이용하여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큰 녀석이야 큰 녀석답게 놀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작은 놈은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연신 깔깔대며 좋아한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이 놀이를 녀석들은 어느덧
     터득한 셈이다.     
     제법 힘이 들어가는 두 녀석을 이불 위에 올리고 이불을 들어 올리자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나의 아버지는 셋을 한번에 들어올리셨으니
     나름대로 얼마나 힘에 겨우셨을까.
     어떤 경우에는 바닥에 세차게 머리를 찧을 정도로 떨어지기도 하는데
     오래 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 또한
     하나도 아프지 않은 얼굴이다. 이 놀이가 가지는 매력인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다.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은
     녀석들의 지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왕이면 삶의 보탬이 되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은데
     이 또한 나의 지나친 바램일까.
     내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도 이제 같은 모습으로 자란다.
     아무리 시대가 첨단화되고 기계화되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있는가 보다.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어린 시절의 내가 무슨 이유로
     이 재미있는 놀이를 중단했는지
     이제 이 녀석들을 통해 확인해봐야겠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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