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내가 함께 한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밥을 한참이나 맛있게 먹던 막내 남동생이 갑자기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이상스럽고 망측하기 그지 없는 제안을 했다.
“형! 우리 서로 지저분한 얘기해서 누가 결국 밥 못 먹게 되나 내기 할래?”
“ ……?”
막내다운 발상이면서 또한 이 세상에 가장 부질없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역시 한창 잘 먹을 나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면 대결을 해보자는 무모한 발상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여동생만 그런 우리를 보고 지저분하게 놀고 있다며 계속 투덜거렸다.
“뭔 얘기 하려는데……?”
혹시 무언가 비장의 무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까 속으로 긴장하면서도
그 짧은 시간에 나름대로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지저분한 단어와 형상,
그리고 이에 파생되는 다양한 변화들을 떠올리는 기민함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형! 화장실 가서 볼 일 보고 사용한 화장지 한 번 쳐다 봐?”
“……!?”
이건 예상과는 다른 각도의, 얼핏 평범한 듯하나
가장 자극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애써 상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식욕은 자꾸만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난 보는데……. 오빠는 안 봐?”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바보 같은 내기에 전혀 참여하지 않을 것 같던 여동생마저 한 술 더 떠서
내 식욕과의 이별을 부추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마도 둘이서는 미리 손발을 맞추었거나 이 놀이를 즐겼거나
아니면 이에 대비한 강도 높은 훈련을 쌓았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나중에 뒷조사해도 될 일이고 현실의 중요한 사실은
이미 떨어지는 식욕을 다시 올릴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무모하게 시작한 내가 잘못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싱겁게 나가떨어질 줄은 나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그 충격은 더 오래 가게 되었다.
* * *
숟가락을 슬며시 내려놓고 TV나 보려는데 짜고 하는줄 알았던 두 동생이
이번에 저희들끼리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밥 먹으면서 망측스런 행동들을 하기에 뭘 하는지 지켜보았더니
이 녀석들은 더 희안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었다.
입에 음식을 잔뜩 집어 넣고 여러 번 씹다가 다시 입 밖으로 내밀어
서로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웩~
역시 예상대로 남동생인 막내가 강했다.
이 녀석은 김치와 깻잎, 그리고 물에 만 밥을 이용하여
입 안에서 절묘한 혼합을 한 뒤
묘한 빛깔을 만들어 입 밖으로 내밀었는데
그 모양은 일요일 아침 집 근처 골목길 전봇대 밑에서 자주 보이는
전날밤 만취한 사람들의 흔적 덩어리들과 비슷했다.
작품 이름을 오바이트라고 붙였다며 낄낄대는 막내 앞에서 여동생은
비장의 무기인 ‘설사’라는 신작품을 보여주겠다며
된장찌개를 여러 번 이용했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농도가 희박하여
자꾸 입 밖으로 쏟아지는 실수를 반복함으로써 남에게만 보여주려던 작품을
자신도 보게 되어 결국 식사를 포기하게 되었다.
막내 녀석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유난히 큰 소리로 쩝쩝거리며
남은 음식을 비웠다.
그날 이후 막내의 별명은
어딘가에 등만 닿으면 잠이 든다 하여 붙여졌던 ‘본능아’에서
‘여물통’으로 바뀌었다.
여동생은 자꾸 ‘시궁창’이라는 강한 주장을 폈지만
가문의 명예도 고려하여 여물통 정도에서 합의를 본 것이다.
* * *
그 막내 녀석이 어느덧 나이 서른이 되었다.
지금은 미국 일리노이주 한 마을의 우체국에서 근무하는데
한국 교포가 그리 많지 않다며 장가보내 달라고 난리다.
그래서 자주 가는 PC통신 동호회의 게시판에 공개 구혼을 했는데도
아직 한 건의 연락도 없다. 벌써 ‘여물통’에 대한 소문이 난 걸까?
오늘도 막내는 낯선 땅 미국에서 그동안 못 보던 여러가지 음식을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을 게다.
이름도 현지 상황에 알맞게 영어로 붙였을 것이다.
그 얘기가 고국땅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알려지고 있는 사실도 모르는 채 말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