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시는 큰 누나가 아기를 낳아 어머님은 미국으로 가셨고
아버지 혼자서 어머니 역할까지 하시며 지내던 어느날,
아버지께서는 앉은 자세로 무언가 꼼꼼히 하고 계셨다.
걷은 빨래를 정리하시는 것 같아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그만 두라신다.
그날 저녁, 여동생은 무척 화가 난 얼굴로 아버지께 따지듯 물었다.
“아빠! 이 옷 아빠가 만졌어?”
“응……. 왜?”
“잉~ 난 몰라~잉……. 잉……. ”
그리고 여동생은 옷을 집어 던지고
세살박이 어린애마냥 징징대며 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여동생 티셔츠의 목덜미 안쪽에 붙은,
일명 레떼루가 목에 거추장스러울 것이라며 일일이 떼어내신 것이다.
하지만 다 떼어나고 보니 또 그게 있어서 떼어 내셨다는데
그것은 바로 옷의 앞 가슴 부분에 붙어 있던 라벨이었다.
“이게 얼마짜린데……. 흑흑.”
“그럼 다시 붙이려무나…….”
“몰라!!!!! 잉 잉~”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 왜 그리도 우습든지
큰 소리로 깔깔 웃었더니
울다 말고 날 쳐다보던 여동생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혈육 관계에서는 쉽게 나올 수 있는 과감한 표현을 동원하며 더 신경질을 냈다.
다시 붙여도 일반 사이비 브랜드인 ‘나이스’나 ‘프로스포츠’보다는 나을 거라고
한 마디 했다가 여동생으로부터 머리나 빠져 버리라는 신체적 약점을 이용한
흉칙한 욕까지 들어야 했다.
* * *
다음 날 저녁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바퀴벌레 약이나 사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뿌리는 바퀴벌레약을 사들고 집에 들어가 안방으로 들어섰더니
무언가 골치 아픈 냄새가 방 안에서 진동했다.
무슨 일인가 아버지께 여쭈려는데
아버지께서는 내가 사온 바퀴벌레 약통을 보시고는 깜짝 놀라신다.
“아니? 그거 또 사왔냐?”
“예? 그게 무슨……?”
“내가 이미 뿌렸는데…….”
아버지께서 눈짓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보니 TV 위에 여동생이 쓰는
헤어스프레이가 놓여 있었다.
“앗! 아버지 이거 다 뿌리셨어요?”
“응……. 바퀴벌레가 많은 것 같아서 다 뿌렸는데…….
근데 그거 바퀴약 아니냐?”
어쩐지 발바닥이 방바닥에 자꾸 붙어서 내가 스파이더맨이라도 된줄 알고
잠시 착각하기도 했던 것 같았다.
어쨌든 큰 일이다.
여동생이 알면 바퀴벌레 잡는 약을 우리 부자에게 뿌려댈지도 모른다.
아버지야 사건 발생의 당사자시니
바퀴벌레 잡는 약에 조금 맞아도 억울하지 않으시겠지만
나야 말로 무슨 죄가 있어서 바퀴벌레 약으로 샤워를 해야 한단 말인가?
하는 수 없이 아버지와 머리를 맞대고
이 사태에 대한 해결을 위한 연구에 들어갔지만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 맥가이버급이라고 주장하시던 아버지도
이미 써버린 헤어스프레이를 채울 방법은 없으셨고
그렇다고 해서 바퀴벌레약을 헤어스프레이통에 옮겨 담는 일은 더 힘든 일이어서
일단 의심이 갈 만한 모든 흔적을 없애기로 하고 곧 청소에 들어갔다.
이미 써버린 헤어 스프레이통은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고
새로 사온 바퀴벌레약도 단서가 될 수 있으니 깊은 곳에 숨겼다.
이어 집에 들어온 여동생은 잠시 코를 실룩거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또한 자기가 쓰는 헤어스프레이통을 우리 부자에게 찾지도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바퀴벌레들이
헤어스프레이 냄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 * *
여동생은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
서로 떨어져 있으니 최근에 만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그곳에서 바퀴벌레도 잡고 머리에도 뿌리는
두 가지 기능의 스프레이가 개발되기 전에는
여동생은 그 때의 그 일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역시 미국에 사시는 아버지 또한
아직도 헤어스프레이로 바퀴벌레를 잡고 계시는지
아니면 헤어스프레이로 바퀴벌레를 잡는 방법을 개발하셨는지 알 수가 없다.
언제나 우리 식구들이 한날 한시에 다 모일 수 있을까?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