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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직원회

보통의 직장에는 여직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많지 않은 인원의 여직원들끼리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애경사 때 부조를 하기도 한다.그런데 내가 다니던 회사는 여직원들이 대부분이어서오히려 남직원회라는 게 있었다.마찬가지로 이 남직원회 역시 친목을 다지기도 하고애경사 때 힘을 합쳐 서로 돕기도 한다.그런 남직원회는 매년 여름이면 단합대회 형식과 보신이라는 명목을 빌어1박 2일로 놀라가곤 하는데…….        *     *     *   그 해에도 여지없이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신입 사원들은 주로 보신탕 요리를 담당하는데 대단한 일은 아니고매년 하던 대로그저 주인 아주머니가 만들어준 요리를 담은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서너 시간 푹 끓이는 것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해는 어찌된 일인지 신입 사원이 아닌과장 ..

테트리스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인천 월미도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1박 2일은 아니었고 그저 바닷바람 맞으면서 횟집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는가벼운 의도로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월미도에 갔던 것이다.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주위는 아직도 훤한 시간이어서 벌써부터 술집에 앉아술을 마시기도 적장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러 명이 하릴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한두 명이 오락실을 찾아가고 있었고그러다보니 나머지 인원들도 하나 둘씩 그 오락실로 들어가전자오락을 하게 되었다.급기야 밖에서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을 찾아다니던 부장님도그 오락실에 오게 되었는데…….  부장님은 테트리스에 열중하던 직원 뒤에 선 채무척이나 재미있는 듯한 표정으로 테트리스라는 오락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더니 나중에는 신이 나는지 ‘왼쪽으로..

점심 식사

잘 알고 지내던 선배로부터 점심 식사나 함께 하자는 연락이 왔다.오랜만에 만나는 선배이기도 해서 점심 약속이 있으니 조금 늦겠다고미리 부장님께 말씀드리고 회사를 나서려는데 굵은 빗줄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어떻게 식사하러 가죠?”  전화로 선배에게 물어보니 그리 큰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비빔밥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는데 배달도 해준다며 사무실도 구경할 겸한 번 들르라는 것이었다.이제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무실인데 그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점이미안하기도 해서 찾아가기로 하고,지하철을 타고는 그리 멀지 않은 선배 회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선배 사무실 상황이 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분위기는 아니었다.몇 명 안 되는 직원들이지만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한 가운데에 있..

빠구리

내가 일하고 있던 부서에서 필요한 몇 가지 사무용품을 사기 위해근무중 잠시 외출한 적이 있었다.마침 경리부의 여직원 한 명과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 여직원은 아직상업고등학교를 채 졸업하지도 않은 신입 사원이었다. 이것저것 필요한 물품을 사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갈 무렵찌뿌드드하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아무데라도 비를 피하려고 하는데갑자기 그 여직원이 난데 없는 한 마디를 던졌다.  “저~ 우리 어디 가서 빠구리치다 갈래요?”“……!”  이런……. 끔찍한 일이…….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도대체 ‘빠구리’라는 이 무시무시한 단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남녀의 진한 애정 행위를 묘사하는아주 저급하기 그지 없는 상스런 은어 아닌가?예전의 ‘콩까기’로 시작한..

은행

샐러리맨 생활이야 늘 돈에 허덕이게 마련이지만그래도 그날처럼 돈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돈이 나올 만한 곳을 아무리 뒤져봐도100원짜리 동전 하나 보이지 않았다.정말 이럴 땐 1000원짜리 한 장이 아쉽다.일단 무엇보다도 담배 한 갑은 사야겠고, 또 집에 갈 때스포츠 신문이라도 하나 샀으면 소원이 없겠다는,평소의 사고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러면서도 머릿속엔 지난 주에 사두었던 복권만 맞으면태어나서 가장 멋진 폼으로 사표를 던지겠다는 뻔뻔한 생각 또한 그 틈에서도잊지 않고 있었다.  약 1시간의 궁리 끝에 돈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냈다.그곳은 바로 월급이 나오는 통장으로 100원 단위의 돈이 모아져 있었다.금액은 2000원이 조금 넘는 돈.이 상황에서는 너무도 소중한 금액이 ..

사우나

월요일 아침은 항상 컨디션이 좋지 않다.잠이 모자란 것은 물론이고 자꾸만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심리적인 부담까지 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더욱이 엊저녁은 집들이하는 친구 집에 갔다가 늦게까지 고스톱과 씨름하느라평소보다 잠이 모자랐던 것이다.하지만 그래도 믿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근무 시간 중에 잠시 틈을 내어 사우나에 다녀오면 퇴근 시간까지는충분히 버틸 수 있는 체력 유지가 가능하다는 뻔뻔하고도 얄미운 계산이었다.  근무 시간을 이용해 사우나에 간다는 사실은 몹시도 즐거운 일이다.피로를 잠시나마 푸는 것은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근무 시간에 일 안 하고 사우나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그 즐거움은 다른 어떤 것과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싸구려 저질..

피를 나눈 사람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한 어느 날 아침,일과에 들어가기 전 커피 한 잔 마시는 자리가 약간 소란스러웠다.무슨 일인가 했더니 전산과에 근무하는 한 여직원의 오빠가 백혈병에 걸렸다는안타까운 소식이었다. 모두들 이런저런 걱정 섞인 얘기로 안타까움을 주고 받다가 업무에 들어갔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오후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회사의 공식 협조 요청이전 부서에 내려왔다. 혈액형이 A형인 남자들의 도움을 바란다는,충분히 있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우선 A형인 사람들을 선별한 후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에서 몇몇 사람들이먼저 병원으로 갔고 얼마 뒤 나를 포함한 6명이 2차로 병원을 가게 되었다.병원에서는 피를 꽤 뽑았다.그때까지 단 한 번도 헌혈을 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참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는데…….  주사기로 약 ..

산보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산보나 가자며늦은 밤인데도 나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셨다. 물론 여름철이다.그저 뒷산에 올라가 돗자리 대용으로 쓰이던 이불 또는 포대기를 가져와아무렇게나 깔아두고 누워서 별을 보거나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이 산보의 주요 일정이었다.  산보....이 단어가 지금도 살아서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지는 모르겠지만아무튼 아버지는 그런 것을 산보라 하셨다.내려올 무렵이면 두 동생 중 한 놈은 이미 잠들어 아버지 등에 업혀 있었고나는 언제나 내 발로 걸어서 산길을 내려오곤 했다.이후 동생은 등에 무언가 닿으면 잠에 빠지는 특수체질로 변화하기 시작했고,아버지 따라 산보가기 좋아하던 나는 군에 입대하여 경비중대에 근무하며하루에도 몇번씩 산보 아닌 산보를 하게 되었다.아버지 또한 그 뒤로 지..

누룽지

왜 그랬는지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겠지만어린시절엔 누룽지에 물을 잔뜩 넣고 끓인,숭늉도 아니고 밥도 아닌 마치 죽처럼 생긴 밥을 자주 먹었다.요즘이야 전기밥솥으로 밥을 하면 누룽지도 안나온다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집에서 누룽지를 끓여서 먹은 기억이 전혀없다.하지만 당시 쌀이 부족해서 생긴 이 가슴 아픈 현실을 전혀 알 리가 없는 어린 나와더 어린 동생들은 그런 누룽지를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불평은커녕제법 맛있게 먹곤 했으며, 심지어 별식 삼아 가끔씩 밥솥 밑에 잔뜩 붙어 있는누룽지를 보며 우리들끼리 물을 붓고 끓여 먹기도 했었다.다만 그 모습을 보며 늘 가슴 아파하시던 분은 다름아닌 어머니셨는데그것이 왜 가슴이 아파야 하는 일인지 어린 우리들로서는 알 길이 없었고또한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

문제와 답

신세대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을 무렵이었다.신세대라는 용어는 당시 20세 전후한 젊은 사람을일부 기성 세대와 구분하기 위한 말로,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함은 뒤로 한 채예의없고 이기적인 뉘앙스를 짙게 풍긴 말이었다.하지만 그말은 매스컴의 영향으로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화제의 키워드가 되었고따라서 이에 대한 농담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 말이 중요한 단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어느날.학교에서 돌아온 대학생 막내 동생이이미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인구의 한사람으로자리잡고 있던 내게 말을 건넸다.  “형, 형은 ‘멀리~’로 시작하는 노래하면 무슨 노래가 생각나?”“......?”  질문을 던진 당사자인 막내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소 닭보듯 잠시 쳐다봤다.나중에 알게 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