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신세대라는 용어는 당시 20세 전후한 젊은 사람을
일부 기성 세대와 구분하기 위한 말로,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함은 뒤로 한 채
예의없고 이기적인 뉘앙스를 짙게 풍긴 말이었다.
하지만 그말은 매스컴의 영향으로
당시에는 가장 중요한 화제의 키워드가 되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농담들도 많이 생겨났다.
그 말이 중요한 단어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대학생 막내 동생이
이미 직장생활을 하며 경제인구의 한사람으로
자리잡고 있던 내게 말을 건넸다.
“형, 형은 ‘멀리~’로 시작하는 노래하면 무슨 노래가 생각나?”
“......?”
질문을 던진 당사자인 막내는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를
소 닭보듯 잠시 쳐다봤다.
나중에 알게 된 얘기지만 그 질문은 당시 유행하던 농담으로, 그 질문을 듣고
‘멀리 기적이 우네~’라는, 며느리의 대명사 이은하의 노래를 외치면 구세대고
‘멀리서 널 보았을 때~’로 시작하는 깜찍의 대명사
투투라는 그룹의 노래를 시작하면 신세대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거야 나중에 알게 된 일이고 그 말을 알 리 없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멀리서 밝아 오는 아~침이 나의 노래 천국의 노래...”
“......?”
이은하도 아니고 투투도 아닌, 잊혀진 계절의 가수 이용의 노래를 부르니
이 노래에 대해 평을 할 수 있는 보기도 사례도 알지 못하는 막내는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표정은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의 눈빛처럼 흥분으로 가득하기도 했고
때로는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다 다른 사람과 신발이 바뀐 경우처럼
매우 찜찜한 표정도 간혹 보였다.
잠시후에 그 농담의 전체적 분위기 및 모범답안을 알게 된 나는
신세대를 구별하는 건 좋으나
너무도 창의력 없는 단순 구성에 심한 실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실망에 비해 막내의 실망은 몹시 커서 자신이 나에 비해
몹시도 신세대적이며 또한
나는 이미 노쇠한 기성세대라는 사실을 이 질문과 답을 통해
확인하고 싶어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헤 매우 비통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그 노래가 먼저 생각난 걸.
* * *
며칠이 지나고 막내는 또 어디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집에 막 들어온 내게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형, 형은 ‘노랗고 긴 거’ 하면 뭐가 생각나?”
“노랗고 긴 거?”
막내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회심의 미소는 마치 고스톱을 칠 때 남이 흠뻑 싸둔 똥 석장을 바라보며
자신이 들고 있는 똥껍데기를 확인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며
또한 에이스 세장을 들고 시작하는 포커를 치는 표정과도 같았다.
이 녀석이 그 길로 빠지지 않아 다행이지
만약 그렇게 멍청하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포커나 고스톱을 쳤다면
아마 재산을 날리고도 모자라 내게 매일 돈 빌리러 왔을게다.
이 질문 또한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막내가 회심의 미소를 띠며 내게 던진
질문의 모법답안은 이러했다.
노랗고 긴 거라는 말에 생각나는 것을 ‘바나나’라고 대답하면 신세대요
‘단무지’라고 대답하면 ‘구세대’에 해당한다는 유머 섞인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 또한 알 리 없었던 나는 질문에 충실하여 언뜻 머리속에 떠오른 것을
답이라고 말해주었다.
어차피 정답도 없고 상품이 걸린 문제도 아닌데 내가 고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똥!”
“.....?”
막내는 경악했다.
길을 걷다가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의 치마가 저절로 올라간 것도 아니고
빌딩에서 돈다발이 떨어진 것도 아닌데도
막내는 턱을 길게 내밀고 경악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중에 질문에 대한 의도를 알게 된 나는 단무지와 바나나밖에 모르는
출제자의 다양성없는 발상을 욕하면서
언젠가는 짜임새있는 유머를 쓰는 유머작가로
이름을 날려야겠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었다.
* * *
그리고는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미 신세대란 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X세대라는 말이
그전의 신세대란 단어처럼 인구에 회자되던 때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직원으로부터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이 세상의 꽃에는 모든 색상이 다 있는데
단 한가지 색상은 꽃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색은 바로 초록색이었는데,
문제만 내었을 때는 도저히 못 맞출 것 같은 얘기가
답을 듣고 보니 모든 문제가 환하게 해결되었다.
꽃의 잎이 초록색이니 꽃의 색이 절대로 초록색일 수 없는 일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한 일이고,
그것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자마자 저절로 떠오르는 해설이었다.
그저 단순한 재미만을 위해서 내는 문제치고는
빠른 순발력과 이해력을 필요로 하는 아주 고급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막내를 불렀다.
“이 세상의 꽃에는 없는 색이 없어, 그런데 딱 하나 없는 색이 있대.
그게 무슨 색이게?”
예상대로 막내는 문제 자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문제에 대한 해설을 하며 답을 요구하니 막내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긴 주변 사람들도 쉬울 것 같은 이 문제를 맞춘 사람은 없었으니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다. 막내의 표정으로 보아 더 이상 힌트를 주어도
답이 나오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발랄한 목소리로 정답을 말해 주었다.
“초록색이야 초록색, 왜 그런지는 알지?”
그런 멋진 답을 말해주었으면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어번 때리면서 맞장구를 쳐야함이 당연한 순간인데도
막내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직도 이해가 안가? 그건 말이야....”
이미 다른 사람에게 몇번 설명한 적이 있어
매우 상세하고도 친절한 부연 설명을 하려는데 막내는 내 말을 가로 막는다.
“거기까진 생각했는데....”
“.....?”
대답을 거부한 막내의 얘기는 이랬다.
식물중에서도 잘 살펴보면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이 있다고 했다.
꽃의 색이 초록색은 아니지만 ‘끈끈이주걱’이나 ‘통발’ 같은 식물 이름은
들어봤을 거라며, 막내는 곤충을 잡아 먹는 식물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들 식물 중에는 화려한 꽃을 피워 곤충들을 유인하는 것도 있지만
일종의 위장술 개념으로 풀잎과 같은 색의 꽃을 피우는 것들도 있다고 했다.
그냥 웃고자 한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지나치게 많은 전문 용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며
저 녀석은 나중에 성공하면 크게 성공하고
망하게 되면 쫄딱 망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언뜻 했다.
막내는 남이 말하면 금방 고개를 끄덕이는 나와는 달리
보다 다각적이고 광범위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교를 하기 위해 대입하는 사례들도 매우 합리적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우리 집안 식구들 중에 가장 단순하고 본능 우선적인 것 같은데도
막내는 그런 일에 있어서 매우 예리했으며 또한 정확했다.
그리고 나서 더 오래전 일을 생각해보니 막내가 내게 물었던, 신세대를 구분한다던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에서도 내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 지
나름대로의 해석과 규정이 있었을 것만 같다.
차마 형이니까 말을 못 했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 걸 보니
그 당시 막내의 분석으로는
내가 그리 좋은 평가가 나왔던 것은 아닌가 보다.
아마 신세대와 구세대의 양자 구분이 아니라 그 사이에 ‘변태’라는 구분도
특별히 해두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막내는 미국에 살고 있고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유머작가도 아닌데
매일매일 게시판에 유머를 쓰며 지내고 있다.
녀석이 그때의 일을 기억한다면
지금쯤은 잘 생긴 사람과 못생긴 사람을 구분하는
질문을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아니면 세련된 것과 촌스러운 것을 구분하는 질문도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형은 예상 밖의 대답을 잘하니 질문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연구해 두었을 것이다.
* * *
4살 차이나는 아들 두 녀석을 키우고 있는 나는 늘 비슷한 차이가 나는
막내 동생을 생각한다.
내가 막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큰 아들은 작은 아들이
자기 장난감을 만지고 있으면 바로 주먹이 나간다.
얻어 맞은 동생은 그래도 형이 좋은지 또 형에게로 따라가고 그러다 또 맞고.......
얻어 맞은 작은 아들이 펑펑 우는데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설겆이 하다 말고 애 우는 소리에 달려온 아내가
애가 우는데 뭐가 그리 재밌냐고 예의 잔소리를 시작한다.
아내는 여자니까 모른다.
저 애들은 매우 자연스럽게 자라고 있고
또한 당연히 저렇게 커야 한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동정의 눈길을 보내며
우는 둘째 아들의 표정이 더없이 귀엽기만 했다.
아마 이 녀석들도 시간이 지나면
어디선가 알아온 퀴즈 문제들을 서로 주고 받으며
다정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리고 형제가 형제로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그들 또한 지난 시간들을 흐뭇하게 돌아 볼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막내가 또한 그랬던 것처럼.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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