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산보나 가자며
늦은 밤인데도 나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셨다. 물론 여름철이다.
그저 뒷산에 올라가 돗자리 대용으로 쓰이던 이불 또는 포대기를 가져와
아무렇게나 깔아두고 누워서 별을 보거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이 산보의 주요 일정이었다.
산보....
이 단어가 지금도 살아서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버지는 그런 것을 산보라 하셨다.
내려올 무렵이면 두 동생 중 한 놈은 이미 잠들어 아버지 등에 업혀 있었고
나는 언제나 내 발로 걸어서 산길을 내려오곤 했다.
이후 동생은 등에 무언가 닿으면 잠에 빠지는 특수체질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아버지 따라 산보가기 좋아하던 나는 군에 입대하여 경비중대에 근무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산보 아닌 산보를 하게 되었다.
아버지 또한 그 뒤로 지금까지 집에서 무언가 가지고 나가시기만 하면
어머니께 잔소리를 들으신다.
그런데 도대체 그때가 언제였을까?
내가 기억하는 오래전 일중에 몇 안되는 기억인 걸로 보아
그것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인지 아니면
그 이전인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산에 자리잡고 별을 보며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노래의 가사나 멜로디는 기억나지만
그 때 내 나이가 몇살이었는지는 아무리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막연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정도?
아니지, 나는 초등학교 입학 날도 기억나는 걸? 그럼 그 전인가?
그때가 언제인지는 정말 기억 나질 않는다.
다만 산이 있었고 돗자리를 빙자한 아류 돗자리가 있었고,
아버지가 불러주시는 노래, 그리고 옆에서 잠든 동생......
* * * *
가을이 온 것 같았는데 아직 더운 여름밤,
두 아들을 데리고 한강 고수부지에 갔다.
4만 6천원 주고 산 코오롱 매트를 돗자리 마냥 잔디 위에 까니 제법 폼이 난다.
작은 놈은 잔디밭을 처음 밟아 보는지 마냥 신기해서 정신없이 뛰어 다닌다.
큰 놈하고 드러누워 쳐다보니 하늘에 구름이 엷게 깔려있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별이 보인다.
후연아 별이 몇 개지? 음...하나 두울...두개! 아빠 별은 뭐 먹고 살어? 응 별?
별은 아무 것도 안 먹어도 씩씩해~
그 틈에 작은 녀석은 어딘가로 또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다.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의 흐릿한 기억과 지금의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나는 진한 추억의 세계로 잠긴다.
아직도 나는 가끔씩 내 옆에 누워 있는 두 아들이 내가 낳고 길렀다는 사실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나는 언제까지나 아버지의 아들, 어머니의 아들,
누나의 동생인줄만 알았는데 말이다.
녀석도 자라서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된다면 나와 마찬가지 생각을 할테지.....
TV프로그램인 <성공시대>의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아도 되니 내 나이가 되어
지금의 이 모습만 기억해주렴.
그렇다면 별 일 없이 잘살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 틈에도 둘째 녀석은 엉덩이를 뒤로 쑥 내민 채
잘 잡히지도 않는 중심을 잡으려고 뒤뚱거리며 또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