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무렵에는 이사가 잦아 전학가는 일이 많았다.
전학을 가려면 적어도 10일 이상은 학교에 못가고 집에서 놀아야 하기 때문에
그 재미에 그 귀찮은 몇 가지 일들이 제법 할 만한 일처럼 생각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4학년이 되면서 이사갈 일도 없어지니 딱히 학교를 가지 않을 이유도
덩달아 없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늘 숙제 안한 날이라던가 지각할 것 같은 날,
심지어 잠을 더 자고 싶은 날 아침이면 어머니께 학교가지 않겠다고
소주 2병을 나발분 옆집 선배처럼 꼬장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그럴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어머니는 한마디로 단호하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가지 마~”
학교 안 가겠다고 엄마에게 꼬장부리는 일은 내게 있어 너무도 쉬운 일이었고
그 꼬장이 엄마에게 먹혀들어가는 일은 더더욱 쉬운 일이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일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곤 했었다.
어머니는 혹시나 자식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까봐 하루 공부하지 않아도
걱정없다는 말씀으로 이를 정당화시켜주곤 하셨다.
그러면서 늘 ‘우리 아들은 하루 빠져도 공부 잘 해!’ 라고 말씀하셨으며,
나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그 최면에 걸려 내가 정말 공부를 잘하는 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정말 공부도 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어머님의 최면술이 그 기력을 잃어
내게 약발이 잘 먹히지 않게 되었지만 그건 그 훗날의 얘기고.....
아무튼 학교에 가기 싫으면 언제든지 어머니께 말씀드려 학교에 가지 않았으며
어머니는 친절하게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학교 선생님을 찾아 뵙거나
전화를 통해 결석 사실을 통보하시곤 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학교에 통보하시는 결석 사유란 대부분 몸이 아프다는 이유였기에
나는 친구들이 하교할 시간에도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아프다는 놈이 수업 끝난 친구들하고 공차며 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어린 나이지만 쉽게 용납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고,
이런 날이 몇번 반복되면서 나와 어머니 사이에는 아무런 문서없이 정해진
규정으로 되어버렸다.
즉, 학교에 안 가는 날은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날로
어느덧 인식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기 싫은 시간은 잠시지만 하루종일 놀고 싶은데도,
밖에 나가고 싶은데도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학교가기 싫은 증상에 비해
비교도 안되는 괴로움이었다.
그땐 비디오도 없었고 케이블TV도 없었다. 전자오락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은 막내 동생을 장난감 삼아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 녀석 마저 친구들과 나가 놀겠다고 집을 나서면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서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5학년이 되면서부터 나는 학교에 결석은커녕 지각을 한 번도 한 일이 없다.
배가 살살 아프거나 감기 기운이 조금 있을 때도 학교에 갔다.
평소 같으면 그 정도 증세라면 일주일은 안가도 될 것 같았지만
힘을 내서 학교로 향했다.
늘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던 어머니도 그럴 때는
학교까지 부축해서 데리고 가시기도 했다.
그땐 정말 어머니란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현상은 고등학교때까지 계속 되어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지각 한 번 한 일이 없었다.
* * *
어머니는 지금 칠순의 할머니가 되셨다.
아직도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그저 나만 기억하고 있는 일인지는
여쭤보지 않아 알 수가 없다.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아직 여쭤본 적도 없다.
다만 우리 아들 후연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내가 그랬던 그 이유로
학교가 가기 싫다고 할 때 나와 아내는 어떤 행동으로 이것을 바로 잡아 주어야할 지
걱정만 앞서고 있다.
이미 어머니께서 해답을 보여주셨는데도 말이다.
아하누가
그 어머니는 지금 팔순이 훨씬 넘으셨고 두 아들은 이미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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