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인천 월미도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1박 2일은 아니었고 그저 바닷바람 맞으면서 횟집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는
가벼운 의도로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월미도에 갔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주위는 아직도 훤한 시간이어서 벌써부터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기도 적장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러 명이 하릴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한두 명이 오락실을 찾아가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나머지 인원들도 하나 둘씩 그 오락실로 들어가
전자오락을 하게 되었다.
급기야 밖에서 뿔뿔이 흩어진 직원들을 찾아다니던 부장님도
그 오락실에 오게 되었는데…….
부장님은 테트리스에 열중하던 직원 뒤에 선 채
무척이나 재미있는 듯한 표정으로 테트리스라는 오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신이 나는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길게 눕혀!’라고
주먹을 꼭 쥔 채 외치고 있었다.
잠시 후 그 직원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따라서 부장님은 아쉽게도 더 이상 게임을 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무척이나 재미있었는지 부장님은 오락실을 나와서도 계속 그 얘기를 하더니
급기야 아까 테트리스를 하던 친구를 보고 잘한다며
칭찬까지 하는 게 아닌가?
여기서 난 갑자기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우리 사무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도 테트리스 실력이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내가 아닌가?
오락실마다 내가 테트리스하는 곳이면 돈을 내고
오락실의 수입을 올려 주어야 하는
20여 명의 오락실 손님을 순식간에 관람객으로 만들며
주인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아가며 예술적인 기량을 보이는 내가 아니던가?
사무실에 있는 매킨토시용 테트리스에서도 남들은 ‘꿈의 10,000점’이라고 부르는
환상의 스코어를 나는 이미 2배로 뻥튀기시킨 20,000점을 달성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가 아니던가?
그런데 나는 이미 귀찮아서 하지도 않는 그 테트리스를
이제 경우 중급 수준인 직원이 하는 것을 보며
부장님이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다니 이 얼마나 약이 오르는 일인가?
이제 와서 다시 부장님을 오락실로 모시고 가서 그 실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렇다고 해서 세 판 끝날 때마다
서커스 복장을 한 이상한 놈이 나와서 흔들어 대는 그 춤을 똑같이 출 수 있다고
시범을 보일 수도 없는 일이고, 사무실에 가서 일은 하지 않고
컴퓨터로 테트리스 실력을 부장님께 보여줄 수도 없고…….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없어져 버림을 계속 아쉬워하며
남은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나의 뛰어난 테트리스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생각도 잊지 않고 있었다.
* * *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충 퇴근 준비를 하는데
부장님은 직원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 중에서 누가 테트리스를 제일 잘 하지?”
갑작스럽고 난데없는 질문에 모두들 잠시 당황했지만 직원들은 두말할 것 없이
나를 지목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 한 동료는 흥분한 나머지 입에 침을 튀어 가며
그 예술적인 실력을 설명하기도 했다.
부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나는 직접 보여주지는 못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변에서 이구동성으로
나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동료들의 말로나마
1주일 전에 발휘하지 못한 실력이 그나마 인정되는 것 같아
몹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역시 기회라는 것은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이고
또한 실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늘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남들도 인정하기 마련이다.
비록 테트리스지만 무엇 하나라도 남보다 잘하는 직원이라는 이미지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그 특성에 있어
무엇 하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미지보다 훨씬 바람직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 생각은 불과 한 순간 뒤에
무척이나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시 생각하던 부장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주문한 새 책상하고 책장이 내일 들어오니까 일요일이지만 나와서
사무실 가구 배치 좀 해줘~ 내가 누구한테 맡기겠나?”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