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 후연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내겐 한 가지 기대가 생겼다.
이제 녀석도 한글을 쓰고 읽을 줄 알며 인터넷을 할 줄 알게 되니
아빠인 나와 사이좋게 이메일을 교환하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몹시도 간단할 것만 같은 그 일은
초등학교에 갓들어간 녀석에게는 상당히 고난도의 미션이었고,
나 역시 당시 상황으로는 만만치 않은
개인적인 요구라는 생각에 아쉬움만 가득차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고맙게도 녀석은 남들이 자라는 만큼 쑥쑥 자라주어
어느덧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싶다고 제발로 찾아오기에 이르렀다.
아빠와 이메일을 교환하며 감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앙증맞은 발상은 아닐테고,
자신이 자주 가는 게임사이트에 드디어 이메일이 필요한 상황에 온 것이다.
"이제 이메일 만들었으니 아빠와 매일 편지 주고 받아야 한다."
"네."
정말 그럴 건지 아닌지 자신도 모르면서 씩씩한 대답을 하는 후연이에게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주며 아빠인 나와 이메일 주고 받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며칠간 이메일이 오고 갔다.
그 내용이야 너무도 간단 명료하여 문안인사와 용건 및 마무리로 구성되는
서간문의 기본 골격도 갖추지 못한 평소 대화의 문자판이었다.
그나마 후연이는 그러한 메일의 주고받음도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는지
점차 메일의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는 나대로 아이들이 가진 인내력의 한계를 원망했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아들에게 바라는 것은 많은 대화일 테고
그것이 이메일로 오간다면
말로 주고 받는 것보다 더 감성적이며 교육적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아들의 노력과 성의의 부족으로 계속 이어지지 못함에
상당히 실망스럽고 안타까웠다.
부모가 원하는 것을 자식들이 해주는 것을 바라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듯
이미 부모가 된 나는 그러한 아들 후연이가 때론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이메일 주고 받는 것보다 더 재미있고
더 흥미를 끄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아버지의 바람은 말그대로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이제 후연이는 더 이상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쯤은 아빠의 이메일 주소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쉽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 * *
얼마전 미국에 계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팔순을 앞두신 아버지께서 요즘 인터넷을 배우신다고 한다.
이젠 제법 여러가지를 할 줄 알고 이메일도 보낼줄 안다 하신다.
그리고는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셨다.
이메일 주소를 불러 드리고 나니 다음날 아침 아버지께로부터 메일이 왔다.
이제 이메일을 할 줄 아니 이메일로 대화를 나누자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썼지만 별로 할말이 없다.
그냥 잘 지내냅니다. 걱정마시고 건강하세요가 여러 표현법으로 달리 표현되었을 뿐
그 내용은 그저 그말이 그말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아들 후연이가 아버지인 내게 메일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터넷 메일은 일반 편지와 달라 오가는 시간적 간격이 너무 좁다.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형식이므로
지구 반대편에서 사는 두 사람의 각기 다른 환경을
요목조목 전달하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더욱이 남자와 남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란
그 주재와 소재의 선택이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다.
그걸 나는 이제야 알게 된 셈이니
무턱대고 아들 후연이의 이메일이 오지 않는다고 섭섭해할 일이 아닌 셈이다.
이제 아들 후연이에게 한달에 한번 보내는 것으로
이메일이 가진 적당한 간격을 찾아야 겠다.
아버지의 메일 때문에 아들의 메일에 대한 정답을 찾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 메일을 열심히 써야 한다.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을 받아본 일이 없을테니 말이다.
아하누가
아버지에게 메일 보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없다. 이러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