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다닐 무렵에 수영장에 자주 갔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는 실내수영장이라는 단어 자체가
몹시 사치스러운 것일 수도 있었는데 어머니의 특이한 교육방식으로 인해
수영장 가는데는 어떠한 방해세력이나 외부의 압력 등
별다른 곤란함 없이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다른 어머니와 달리 나의 어머니는 남자가 살아가며 꼭 해야 하는 것을
두가지 지목하셨는데 다름 아닌 바둑과 수영이었다.
정신도 맑게 하고 몸도 튼튼해지라는 교육 목적인지 아니면
어디가서 머리 나쁘다는 소리 듣지 말라는 동시에
물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하시겠다는
생존 개념을 가르치려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영장엔 잘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가기 싫은 기원에 억지로 가야 했으나
중학생이 되어 수영장에 가니 재미도 있고 친구들 하고 어울리는 맛도 있어
매주, 아주, 재미있게 수영장을 찾았다.
그때 잘 다니던 수영장은 지금 내가 일하는 곳과 아주 가까운 충무로에 있는
오성수영장이라는 곳으로,
매우 작은 곳이지만 당시만 해도 제법 이름있는 곳이었다.
그 수영장에는 시간의 제한이 있어 입장한 뒤 2시간까지만 수영이 허락되었다.
물론 그 제재가 강력하진 않았고 또한 단속 같은 건 따로 없었으니
시간적 제약은 그저 입장객들의 양식과 선택에 맡긴다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수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쉽잖은 일이어서
대충 2시간 정도 지나면 우리도 짐을 꾸려 나오곤 했었다.
아주 평범한 일정을 마치고 수영장을 나서려던 어느날,
관리실에 있던 아저씨가 날 보더니 뭐라고 잔소리를 했다.
“허허, 그녀석... 손이 그렇게 퉁퉁 불을 때까지 놀았어?”
나는 이상하게도 물에 손을 조금만 담그고 있으면 손가락의 끝부분,
그러니까 손톱 주변이 하얗게 일어나고 또한 퉁퉁 불어 아주 흉한 모습이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신체적 반응이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관리아저씨의 말을 듣고 문득 친구들을 둘러보니
다들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리 별로 안 놀았단 말이에요”
입이 잔뜩 나온 채 억울함을 호소하는 친구의 목소리도 내게 나타난
명백한 물증 - 오해 받기 쉬운 - 때문에 그 강도가 낮아지고 있었고
관리 아저씨의 툴툴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져가면서
나는 나대로 신체적 특성 때문에
받게되는 오해가 너무나 답답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 시절에 실내수영장에서 수영을 한다면 상당히 인텔리하고 또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라고 생각해야 함이 마땅한데
마치 동네 부랑아 하나가 수영장에 나타나 하루종일 놀다가 샤워실에서
때까지 밀고 가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억울함은 더해 갔다.
친구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몹시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고
딱히 할 말이 없던 나는 답답함을 가슴에 안고
묵묵히 얼굴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답답한 일이었다.
그 뒤로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다.
수영장에 간다거나 또는 목욕탕에 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내가 설겆이 할 때라도
사람들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물이 적신 손이 어떻게 반응하며 또한 그 시간적 흐름에 따른 부피의 변화는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물이 적신 손의 색상은 물에 젖기 전과 얼마나 다른지 등에 대해
유심히 관찰했으나 이상하게도 나만큼 많이 변하는 사람은 볼 수가 없었다.
나는 남들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그 변화가 심하여
심지어 삼겹살 집에서 상추쌈만 먹어도 상추를 들고 있는 왼손이 퉁퉁 불게 된다.
그 경우는 한쪽 손만 퉁퉁 불게 되어 더 이상하게끔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체질적 특징은 살아가면서 커다란 불편은 없었고
남들 또한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은 신체적 변화인지라
거기에 대해서 더 이상의 많은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그런 상황이 생길때마다 슬쩍 생각하고 넘기며 살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몸에 이상도 없고 남보기에도 별로 대수롭지 않은
혼자만의 특이 체질일 뿐이다.
* * *
큰 아들 후연이가 제법 사람 같은 모습으로 자란 어느 겨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들과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을 처음 본 녀석은 제법 신기해 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때로는 잔뜩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녀석에게는 뜨거울 것 같은 목욕탕 물이었는데도
물이 좋은 어린 애들 답게
녀석은 욕조에 들어가 한동안 즐거워 했다.
다만 욕조안에서 고개를 잔뜩 집어 넣고 욕조물을 먹으려고 하는 걸 말리느라
고생했을 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아들 후연이는 매우 성공적인 목욕탕 데뷔를 마쳤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의 아버지께서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아버지가 하던대로 녀석을 머리 감기고 씻겨주고 얼르고 달래고....
세월이라는 무상함이 목욕탕 가득 밀려왔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늘 아버지 따라 목욕탕에 가서 아버지와 함께 목욕을 했는데
이제 아들 녀석을 목욕탕에 데려왔으니 말이다.
이런 훈훈하고도 야릇한 감상이 어느덧 현실로 돌아올 무렵 녀석의 손을 보았다.
내가 그런 것처럼 녀석도 손끝이 하얗게 변해 퉁퉁 불어있는 모습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손을 잡고 있는 나를 물끄러니 쳐다보고 있는 녀석을 꼬옥 안아 주었다.
이 세상에 나만 그런 것으로 알았던 특이 체질을 가진 사람을
또 한사람 찾는 순간이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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