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아빠와 아버지

아하누가 2024. 6. 24. 01:37



휴일이었지만 아내가 직장 체육대회에 가는 바람에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아들 두 녀석과 하루종일 집에 있어본 아빠라면 그 고충을 알 것이다.
돈이나 많이 주고 나갔으면 파출부 아줌마나 불러 수다라도 떨며 보냈을 텐데
만원짜리 3장만 남겨두고 새벽에 나가버렸으니 하루종일 얼마나 고생했으랴.

 


아이들 뒤치닥거리에 지쳐갈 오후 무렵.
이왕 아이들과 보내는 이 시간을

뭔가 교육적인 것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후연아, 너 이제부터 아빠라 하지말고 아버지라 불러. 알았지?"
"왜 아빠를 아버지라 불러?"

 

 

아빠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것은
호칭이 바뀌면 어리광도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는게 뭐가 나쁘겠냐만
어리광은 아무리 못하게 해도 하게 마련인게 어린 아이들의 생리다.
그러니 어리광을 줄인다기 보다는

조금 의젓한 면도 보일 줄 알아야 한다는 목적으로
아버지란 호칭을 시킨 것이다.
게다가 지난번 유치원 노래자랑 때 가사에 어머니가 나오는 노래를 불렀으니
아버지란 단어도 이에 상응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교육적 의도가 다양한 시도였다.

 


녀석은 새로운 호칭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불러오던 아빠 소리 대신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하게 되니
의도한 대로 그 다음 말은 '응' 대신 '예'가 나왔고

'했어' 대신에 '했어요'가 나왔다.
어감의 차이에서 오는 문장의 운율은

저절로 존대어와 평상어의 구분이 가능하게 된다.
나중에 누군가

어감과 운율이 가지는 존대어와 평상어의 상관관계에 관한 논문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 짧은 틈에서 했다.
이런 훌륭한 교육방법을 아무런 교육없이 터득한 스스로에 감동했고
앞으로 이 아이가 자랄 때 남보다 개성있게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흐뭇했다.
그리고 보람찬 휴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는가 싶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교육효과가 탁월했던 것만큼

녀석에게는 커다란 혼란도 동반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한가지의 효과를 보려면

한가지의 피해도 감수해야 하는 모양이다.

 

 


저녁 식사를 마칠 무렵부터 후연이는 할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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