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이 된 큰 아들 후연이는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많이 컸다.
키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말을 잘하고 남의 말을 잘 알아듣게 됐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은 하루가 다르다고 하니
일년이나 지난 지금은 내가 상상한 이상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렇게 작년 이맘때와 지금을 비교할 수 있었던 것은
크리스마스 선물 때문이다.
작년만해도 크리스마스와 선물과의 관계,
그리고 선물이 가져다 주는 물질적 이익,
크리스마스에는 반드시 선물이 등장한다는 당위성 등 세상 물정을 몰랐다.
그러나 한해가 지나니 녀석은 선물의 중요성과
이것이 자신의 취미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선물은 내가 녀석에게 이용하는 중요한 협박 무기로
작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그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었다.
12월에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와 선물,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이 삼각관계는
녀석이 말을 안듣거나 밥을 안 먹으려 할 때,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안 하겠다고 버틸 때
매우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무기로 사용되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협박의 진부함에 이력을 느낄만도 했지만
작년과 달라진 녀석의 정신적 성장은 그러한 함수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
선물의 효과는 처음과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었다.
* * *
오늘은 문득 녀석에게 무엇을 선물해야 하는지 생각났다.
선물은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 산타 할아버지는 말을 안 들으면 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선물을 누가 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미 선물을 빌미로 온갖 잔심부름 및
기타 이에 해당하는 서비스를 시켜먹었으니 선물을 못 받는다면,
또는 양에 안 차는 선물을 받는다면 녀석은 매우 실망할 것이다.
실망한 나머지 아동보호기관에 아동 학대로 아버지인 나를 신고하거나
아니면 노동부에 일한 만큼의 댓가를 지급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그러니 녀석이 받고 싶은 선물을 잘 알아두어
적재적소에 제대로 된 선물을 주어야 한다.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알아두어야 하는 데는
설령 엄청나게 비싼 선물을 요구한다거나
또는 엄마가 한명 더 필요하다는,
구할 순 있으나 현실에서는 실현되기 힘든 선물을
요구한다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 전에 어르고 달래
적당한 선물을 선택하게끔 유도하고자 함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녀석을 불러 조용히 물었다.
"후연아, 이번 크리스마스에 무슨 선물 받고 싶어?"
어림잡아 예상할 수 있는 선물은 <탑블레이드> 팽이나 로봇 장난감,
그것도 아니면 게임 CD다.
대충 그 3가지 종목은 확실하고
다만 그것중에 어떤 브랜드와 모델을 원하는지가 문제였다.
이왕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이나 취향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녀석은 내 예상과는 다르게
손가락을 내 입에 가져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비밀...."
"......!"
헉! 큰일이다.
이거 잘못하면 크리스마스가 매우 험악한 날이 될 수 있다.
매우 간단할 줄 알았던 나의 계획은 녀석의 성장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를 어쩐담?
내일부터 어떻게 녀석의 희망선물 내역을 알아내야 하는지 눈앞이 깜깜해진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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